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던가.
특히 정치와 관련한 역사를 살펴보면 철저히 승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문헌들이 많이 등장하였고, 이로 인해 우리가 왜곡된 역사를 배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승자는 영웅시되고, 패자는 악마화된다. 그 공식이 예술이라고 다를 것인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인문학 도서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읽었던 동화에 아주 작은 궁금증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매우 방대한 역사가 순식간에 이 책 속에 펼쳐진다.
물론 명칭 하나하나조차도 익숙하지 않은 서양 국가들의 역사를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것 자체가 짧은 기간으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페이지씩 느릿하게 넘기다가도, ‘그게 뭐였더라? 그게 누구였더라?’라고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닌, 그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왜곡되었거나 잊힌 자들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 패자들, 평범함에서 벗어난 소수자들,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 영웅들까지.
비록 그 형태는 변화무쌍해도,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지겨운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동화에서까지도 드러나 있다는 관점은 나에게 꽤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동화 속에서 항상 악역으로 등장하는 깊은 숲속 늑대인간과 마녀. 알고 보니 남들보다 조금 더 털이 많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더 영특하다는 이유로 변방으로 쫓겨난 이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었다. 공주들을 괴롭히는 늙은 왕비들은 생산 능력이 저하되어 이전만큼의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나에게 더욱 어이없는 충격을 주었던 대목은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였다. 고작 머리가 빨갛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니!
심지어 빨간 머리가 대다수인 지역에서는 반대로 금발이 차별을 받았다니! 차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일관적이지 못한 행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차별’이라는 단어의 실체는 결국 대다수에서 벗어난 비범한 소수자들을 향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도구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잔 다르크’의 에피소드 속 한 문장도 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살아 있는 영웅은 위험한 존재이지만 죽인 후 되살려낸 영웅은 다루기 쉽고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므로.”] (127p)
기존 체제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고, 더 나은 시스템으로 전복하고자 하는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눈초리와 고난을 겪었던가. 갈등과 고난은 마치 영웅담의 필수 요소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것이 정녕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었나? 또 영웅의 희생 후에 비로소 사회가 안정에 접어들자 그제야 그가 영웅임을 깨닫는 우리는 왜 그토록 어리석은 것인가?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단순한 인문학적 궁금증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밟아온 역사를 성찰할 기회를 던져준다. 그리고 역사를 성찰하다 보면,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낼 우리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는, 과연 어떤 문학으로 기록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