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추리 소설에 대해서는 많이 읽어보지 않았던 지라,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을 때에도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추리 소설에 대해 많이 접하지 않았던 이유는 필자의 전공이 철학이다보니, 소설 장르를 읽을 때마다 유려한 문체가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히려 중세시대의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그런데 좋은 기회로 우연히 접하게 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게 되면서, 평소에 접하고 있었던 소설, 그 중에서도 추리 소설 장르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게 되었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죽은 자의 몸값'이었다. 책 이름에서 오는 직관적인 느낌이 '죽은 자', '몸값'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몸값'에서 다뤄지고 있는 시기는 1141년 잉글랜드로, 왕권을 둘러싼 내전이 극으로 치닫으면서 스티븐 국왕 측과 모드 황후 측이 맞붙게 된다. 이로 인해 각 측에 포로들이 잡히게 되면서 휴 베링어는 양측의 포로 교환을 도모하고,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캐드펠 수사도 그를 돕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은, 평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요소이기도 한 것인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추리를 위한 추리'의 전개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주제를 여러 극중 인물들 간의 관계 속에서 녹아내는 방식이 내용 전개의 주 골자를 이룬다는 것이다.
사랑, 복수, 증오 등의 여러 감정들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포로 교환의 현장에서 캐드펠 수사는 침착하게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관계를 섬세하고도 침착하게 풀어낸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과 주제들이지만, 다뤄지고 있는 중세인 만큼 그리고 캐드펠 수사가 수사인만큼 그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신에게 기도하고 간구한다.
시리즈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캐드펠 수사가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을 접하면서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구하는 그 사고의 과정들이 나에게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불안함이 극도에 다르면, 본성과 다르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라는 등의 문장들이 예사롭지 않게 내게 다가왔다.
인문적인 것을 다룬 전공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게 된지 어언 2년이 다되 가는 지금, 그래서 전공 공부를 할 때완 다르게 '인간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할 틈이 없는 지금, 이 시리즈들은 나에게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살아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인간적인 것'을 학문적으로만 배워보다가,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간들의 생생한 인간다움'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문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인간은, 특히나 이성 중심적 인간은 대부분 '일관적'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캐드펠 시리즈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이 실제의 인간들은 캐드펠의 고찰처럼 '극적인 상황'에 다다르면 본래의 가치관과는 생판 상관 없는 일을 벌이기도 하는 그런 예측불가한 존재이다.
20대 초반 시절 필자는 인간에 대한 일종의 전형적인 학문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일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인간에 대해 꽤나 빡빡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느덧 20대 후반을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캐드펠 수사가 말한 저 구절이 필자에게는 꽤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의미 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나를 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그 높은 잣대가 결국 남으로도 이어지면서 결국에는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요즘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잣대를 낮추면 뭔가 큰 일이 날 것 같은 강박이 필자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먼저 남들에게, 그리고 결국엔 나에게 다시 돌아온 그 잣대를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라는 것을 캐드펠 수사의 저 말 속에서 필자는 깨닫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인간적 고뇌들로 고통 속에 사로 잡혀 있는 인간들에게 따스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눈길로 그들을 이해하고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