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으로 좋은 예술 작품은 나이가 듦에 따라 또 다른 감상,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책 속에 등장하기도 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나는 ‘이 책’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펼쳐보았을 때 그대에게 매번 뜻밖의 위로를 건네는 책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여기, 우리의 삶과 동행할 또 한 권의 책, 16명의 화가들, 그리고 54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은 예술을 빌려 삶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 윤현희 심리학자는 미술과 심리 분야의 스테디셀러 <미술관에 간 심리학>으로 이미 무수한 독자들에게 미술과 심리의 즐거운 만남을 선사한 바 있다. <미술관에 간 심리학>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애독자로서, 책의 개정 증보판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출간은 아주 즐거운 소식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이 떠오르기도 하는 책은 보다 가깝고 따스하게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마흔. 내게는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또 한 번 충실히 살아내야 주어지는 값진 숫자이다. 저자는 책에서 소개하는 화가 대부분이 마흔이라는 “어두운 골짜기”에서 주옥 같은 작품들을 창작한 점, 40대가 현대인들이 많은 지점에서 변화의 국면을 맞는 시기라는 점을 짚어낸다.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은 작품 너머 예술가들의 삶과 심리, 그리고 이와 결코 다르지 않은 고통을 겪는 현재의 우리들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누군가에겐 다가올 생의 전환점을 기쁘게 맞이하도록 하는 격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나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을 위한 따스한 위로로 다가올 책이다. 나와 그대의 마흔, 그 이후까지 함께 할 책 한 권, 차 한 잔과 함께 시작하는 건 어떨까.

“고통과 결핍 속에서 불후의 예술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고통을 만드는 것일까, 고통이 예술을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순환하는 물음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거나, 이를 이겨내기 위한 일환으로 예술을 하고는 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붓질에서 그들의 애환과 노력을 보고, 순간을 담아낸 화면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책에서 소개된 16명의 작가들 중 오늘날 나를 위로했던 이는 베르트 모리조였다. 모리조는 당대의 뛰어난 인상주의 여성 화가였다. 그는 그 시절 부르주아의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닌, 인상주의 예술가로서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붓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작품을 그리고 발표하며 당대 여성의 삶과 화가의 삶을 오롯이 살아냈다. 그의 “조용한 열정”은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실내>(1872), 베르트 모리조,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다만 그는 공적인 서류에서 자신이 화가라고 밝히지 않았고, 화가로서의 자서전이나 비망록 등을 남기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새로운 심리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그녀가 자기 의심, 즉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불안과 완벽주의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지 않았을까?’
높은 위치에 올라간 여성 (그리고 사회인) 대부분이 겪고 있다는 가면 증후군. 자신의 실력과 능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라 절하하고, 타인의 성취와 자신의 약점을 비교하게 하는 이 “어두운 골짜기”와 같은 가면 증후군은 종국엔 스스로를 심각한 심리적 불안정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자연스레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나의 기쁨에 혹독하게도 찬물을 끼얹어왔던 나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세상은 사실상 적으로 가득하다. 간단한 업무 회의에서 조차 내가 실수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누구 하나 제대로 편드는 사람 없는 이 일상 속 전투에서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고 응원해줄 것인가. (중략) 나도 당신도 스스로에게 최고의 지지를 보내는 후원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다이닝룸에서>(1886), 베르트 모리조,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
나는 책을 통해 몇 백 년 전의 이 화가 여성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나와 그가 겪고 있고 겪었을 심리적 아픔에 공감하며 스스로를 조금 보듬어 주자고, 내가 나의 “최고의 후원자”가 되어주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나와 닮아 있는 앞선 여성의 삶, 그리고 그의 그림만큼 내게 위로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모리조를 찾았듯, 이 책을 읽는 모든 그대들이 아마 우리와 닮아 있는 모리조, 피카소, 쉴레, 클림트를 찾아낼 것을 확신한다. 오늘날 나를 위로했던 이는 모리조였지만 이듬 해 나를 위로하는 이는 세잔일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삶의 굴곡에 따라 매 해 다른 예술가를 발굴해 내리라.
지금 그대와 가장 닮아 있는 예술가를 찾길 바라며,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