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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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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을 걷다>는 SF 장르의 순정 만화인 권교정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재해석한 중장편 소설이다. 고대 그리스 여성 ‘디오티마’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달의 뒷면을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환생한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가 존 H.서얼이라는 남성으로 두 번째 환생하며 마침내 달의 뒤편에 발자국을 남기는데, 그때 달의 뒷면에 공장을 세우며 가장 오래된 달 거주자가 된 아서를 만난다. 그때 아서는 존 H.서얼이 디오티마의 환생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며 그(이자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 영혼’임을 느낀다. 그 강렬한 느낌을 갖고 아서는 제 첫째 손녀를 ‘디오티마’라 이름 붙인다.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라난 다이(디오티마)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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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지구의 쓰레기장이 아니다


 

디오티마 우코는 달에서 태어난 ‘월인’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아니 살아남은 월인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앞서 달에서 태어나 지구로 돌아가던 월인들은 지구에 비해 1/6밖에 안 되는 달의 중력으로 몸이 표준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세계 우주 국제기구에 의해 월인들은 달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법령에 제정된다. 이는 미성년자인 월인들을 위한 보호조치로 시행된 것이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지구인 중심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특정한 중력을 가진 곳에 머물러야 한다’가 아닌 ‘달을 벗어나선 안 된다’라는 말이 제한적일뿐더러 차별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의 방사성 폐기물을 달의 뒷면에 묻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지구에 사는 처지에서 이는 꽤 합리적인 일일 수 있다. 이미 도시화/산업화된 지구는 더 이상 쓰레기를 파묻을 정도로 값싼, 버려진 땅이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었다. 또한 달은 대기가 없어서 한 번 파묻어 버린 쓰레기가 다시 지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작다. 그런 이유로 지구에서 잘 보이는 달의 앞면은 관광 지구로 개발되었고, 뒷면엔 공장 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런 결과가 도출되는 데까지 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니 월인이 미성년자이기에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다이 하나다. 대체 달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을 빼놓고 누구와 합의를 마쳤다는 말인가. 아무리 건의를 해보아도 전례가 없는 상황에 다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어른은 많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결심했다. 세계 우주 국제기구 앞에서 시위를 하기로. 현수막을 크게 걸고 이 사태의 부당함에 대해 외친다. 그러나 뾰족하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루나 로드에서의 대화


 

성년으로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면허를 딴 다이. 물론 달 내에서 면허를 딸 수 있게 된 것도 다이의 적극적인 건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물 자동차를 끌고 달 기지가 있는 달의 앞면에서 달의 뒷면으로 차를 끈다. 달의 뒷면 공장에서는 다이의 할아버지인 아서가 고문이자 상담가로 일하고 있기에 그를 데리러 간다는 핑계가 마침 적절했다. 공장을 들르기 이전에 달의 뒷면에 최초로 발을 디뎠던 존 H.서얼과 천재 공학자 쌍둥이의 이름이 보존된 곳에 들른다. 존 H.서얼의 별칭은 ‘디오티마’라고 한다. 해석하면 달의 뒷면, 할아버지인 아서의 말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영혼’이라고 한다.


어째서 자신의 이름이 그에게서 온 건지 늘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5명 밖에 없는 소수의 월인으로 남은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주위의 어른들은 다이가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며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꿔도 어차피 달을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다 어디 쓰냐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무책임하고 무심한 말이다. 달리 뾰족한 수를 제안하지 못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더 나은 앞날을 꿈꾸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며 입을 막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고민조차 없다는 것이 이 일의 문제점이다.


마침내 달의 뒷편 공장에 도착한 다이는 할아버지 아서를 만나 고물차를 몰고 집이 있는 달 기지 방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아서는 그녀를 만류하며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어떠냐고 회유한다. 막 면허를 따고, 고물차를 몰고 온 그녀가 아직 미덥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달에 아무도 없다. 아서와 다이는 그렇게 달의 뒤편을 뒤로 하고 루나 로드로 가는 차에 몸을 싣는다. 잠깐 단잠에 빠진 아서는 눈물을 흘리며 끙끙거린다. 다이는 아서에게 무슨 꿈을 꾸었기에 눈물까지 흘리며 깨어나냐며 물었다. 그는 손녀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지구에서 마지막 인연으로 남아 있던 사람의 임종을 다시 회상하는 것이었다.


다이는 아서에게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질문한다. 80을 넘긴 나이에 달에서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이 사실 물리적이나 정신적이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서는 달에 끝까지 남고 싶다며 대답한다. 지구에 돌아가도 가족, 친척, 친구 모두 남아 있지 않아 반기는 이가 없고, 달에 장기간 거주하다가 지구의 중력을 맞닥뜨리면 몸이 약해져 천천히 생을 마감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속에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마침내 다이의 월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왜 자신에게 ‘디오티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냐 운을 띄우며, 자기가 그 사람이길 바라느냐는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진다. 이에 아서는 그녀가 디오티마의 환생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 아닌,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삶을 시작한 아이에 대한 나아감과 축복을 담은 이름임을 설명한다. 다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멸종 위기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라는 것. 이기적인 지구인의 사고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태동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인간이 그리고 이 세상이 ‘모던’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모든 것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퇴보라는 선택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발전하고 성장하여 눈부신 내일을 맞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유하고 행동하는 선구자가 다수의 눈총을 받으며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고통을 겪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진보적인 결과물의 이점은 보통의 다수들이 수혜 받는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한 번의 오차 없이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알을 깨는 이에게는 고통이 수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다이, 즉 디오티마는 알을 깨고 나오고자 하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일에 소홀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지구’라는 고향이자 구심점이 없어 방황하지만, 결국엔 그 낡은 관습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남들과 같지 않아서 저중력의 달에 ‘갇혔다’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명분이자 이유가 되었다. 코끼리에게도 어릴 때 얇은 철사를 감아 놓으면 그 이상 크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철사 따위가 몸을 가둘 수 없는 힘을 가진 어른 코끼리가 되더라도 그 철사를 쉽사리 벗어 던지지 못한다. 얇은 철사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에겐 어떤 철사가 감겨 있었을까? 스스로 앞날을 선택하는 디오티마는 정상의 중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무수한 선택지를 가진, 철사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유로운 코끼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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