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티팝과 함께 도시를 여행하는 법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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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건 싫은데 은은하게 신나고 싶다'
아직 시티팝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당신을 위해.
시티팝(City Pop)이란?
명확히 구분되는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신스팝, 드림팝 등과 같이 음악적 스타일을 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장르가 아닌 스타일로서 시티팝이 구분되는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west coast AOR(Adult Oriented Rock)과 요트록의 영향을 받아 재즈, 보사노바,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어 그 범주에 포함되는 노래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으로 일렉트릭 기타, 신디사이저, 트럼펫 등 전자악기를 기반으로 하여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특징적이다.
일반적으로 넓은 범주 중에서도 ‘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도회적인 분위기’ 등의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되는 음악을 시티팝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러한 시티팝의 이미지는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와 관련이 있다. 무역 수출로 ‘버블’이라는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다. 다시 말해 고도성장기의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일상에서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이 분위기는 대중문화의 흐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풍부한 자본에서 비롯되는 높은 퀄리티의 음악들은 대부분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희망찬 내일의 도시를 그려내지만 동시에 멜랑꼴리(melancholy) 혹은 풍요 속의 공허함을 함께 맛보게 한다. 공존하는 모순된 감정은 그 시절을 살아가지 않은 요즘 세대들에게도 뉴트로(New+Retro)라는 이름으로 겪어보지 못한 노스탤지어를 찾게 하고 있다.
시티팝의 매력, 감감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낭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시티팝은 작은 선물처럼 다가온다. 왜 그들은 시티팝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게 되었을까?
감각적인 앨범 커버 - 음악을 귀로만 즐기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음원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재생되기 이전에 시선을 잡아끄는 건 바로 앨범 커버다.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도 마음에 드는 앨범 커버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생 버튼에 손가락을 뻗는다. 그리곤 노래까지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다면 마치 예상치 못 한 장소에서 보석을 발굴해낸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 이처럼 리스너들에게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곡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풀어낸 아트워크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시티팝의 앨범 커버는 곡의 고유한 이미지를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시티팝 앨범 커버는 비슷한 결을 가진 것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레트로 애니메이션풍의 커버와 필름으로 찍은 듯 낮은 화질의 커버가 있다. 먼저 전자인 레트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커버는 다채로운 색감과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이 익숙한 세대에게는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촉매제로, 요즘 세대들에게는 접해보지 못해 더욱 신선한 유행처럼 돌아오며 다양한 연령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특히 특유의 밝고 청량함 또는 센치한 몽환적임은 레트로 마니아층을 생성하며 반짝 유행에서 스테디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컨대 유튜브에서 애니메이션 영상에 음악과 가사를 입힌 비주얼 리릭 비디오(Visual Lyric Video)나 레트로 애니메이션 디자인의 팬시 문구가 어느 시점부터 꾸준히 유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름 사진을 사용한 커버는 어딘가 문질러진 듯한 저화질의 흑백 혹은 높은 채도가 특징적이다. 찬란한 순간을 담아낸 필름 사진은 다신 돌아갈 수도,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지만 언젠간 끝이 날 도시의 순간들을 예찬하는 시티팝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각적 시너지는 우리가 시티팝의 길로 발을 들이는데 초석이 된다.
감칠맛 나는 멜로디 - 사람들마다 입맛이 가지각색이듯 음악적 취향은 개개인에 따라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던 밍숭맹숭 간이 덜 된 건강한 맛의 음식을 좋아하던 이상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시티팝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입맛을 가진 사람일까.
사운드가 너무 큰 록 음악은 힘들고, 깊게 감정이입을 하면 다운되는 발라드가 지칠 때가 있다. 지친 일상에서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시끄럽진 않지만 적당히 텐션을 올려줄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시티팝의 펑키하고 단순한 멜로디를 찾게 된다. 전자음의 세련된 16비트 리듬 반복은 안정감과 함께 절제된 흥분 상태를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날들 속에서 감정의 높낮이 기복이 작아야 할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티팝은 보컬의 가사보다 배경음을 더 크게 키워 놓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꿈결 같은 분위기를 위해 에코를 넣어 공간 안에서 울리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표현한다. 현실에서 멀어져 나만의 유토피아에 와있는 듯한 이질적인 분위기는 항상 어딘가 갇힌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도시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가사 - 시티팝 하면 떠오르는 많은 키워드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자유로움’이 아닐까. 도시는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지만, ‘단지’ 나이기 때문에 때로는 외롭고 공허하다. 이렇게 복합적이고도 세심한 감정을 그려낸 시티팝의 가사는 순수하면서 지극히 인간적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It feels like a dream
Walking in the rain, I just wanna fly
Come together dancing with me in this city
City girl, City boy Everyday enjoy the world
귀찮은 일들은 던져버려
서교동의 밤 – City Girl, City.Boy
문득 돌아보면 이제까지 어거지로 대충 살아온 것 같아
지내다 보면 다 괜찮아지겠지 뭐 그럴지도 몰라
오, 모든 게 멀어질 때 그럴 땐
It's all right 하나둘씩 들어오는 색색깔의 불빛
Street lights 이럴 때면 어디론가 마냥 떠나고파
Sunset 그리워진 너를 따라서 오 지는 노을 사이로
드리워진 우리 함께 하던 곳으로, 오 drive
김현철 – Drive
항상 모든 책임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방목적 삶은 지양해야 하지만,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 벗어날 수 있는 용기는 자유를 위한 첫걸음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붙잡고만 있다고 풀리지 않는다는 인생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시티팝과 함께 도시를 여행하는 법
디지털 음원이 발매되자 LP 앨범은 턴테이블이 있는 특별한 장소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전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레트로 감성이 유행하면서 잘 꾸며진 LP 카페 혹은 바가 힙한 감성의 골목마다 곳곳에 생겨났다. 타인과 함께 공유된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하나의 감정적 경험을 함께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의 대화 소리, 창밖의 자동차 경적과 같은 소음 그리고 LP 위에 쌓인 먼지까지 어우러지며 모든 것이 음악이 된다. 턴테이블의 바늘에 긁혀 플레이되는 음악은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과 닮았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집 안에 플레이 기기를 들여놓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일명 ‘방구석 리스너’, 내가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적절한 시간에 원하는 트랙을 켤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가장 최적의 장소와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시티팝 LP를 틀어보자. 낯설고 무미건조하던 공간에 은은하게 신나는 배경음악이 깔릴 것이다. 다른 일을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그저 그 상태 자체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턴테이블이 없다고 실망할 것은 없다. 헤드폰, 줄 이어폰, 에어팟 혹은 버즈. 무엇이든 다 좋다. 시티팝 속 겪어보지도 못한 과거의 노스탤지어를 그리워하는 또는 뻥 뚫린 새벽의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주인공이 되어 하는 산책은 발걸음부터 다르다. 그런 나날들이 하루 이틀 계속되다 보면 산책하기 위해 노래가 필요해지는 게 아니라, 노래가 듣고 싶어서 산책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다.
그러고는 익숙한 가사 속 풍경들을 찾아 카메라 속에 담아보자. 매일 똑같은 풍경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보일 것이다. 한낮의 햇살이 가득한 오후, 노을이 저물어가며 건물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저녁 그리고 달빛과 가로등 빛이 아스팔트 바닥에 반사되는 밤까지. 엑스트라의 역할로 지나치는 도시는 회색빛이지만, 주인공인 내가 만들어가는 도시는 작은 모퉁이까지 사랑스럽다.
이리저리 치이며 반복되는 하루하루,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는 도시인들에게 작은 낭만을 가져다주는 시티팝. 낮에는 무료한 오후의 비타민이 되어주고, 밤에는 공허한 영혼을 달래는 위로로 다가온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도시를 200% 느끼고 싶다면 귓가에 시티팝이라는 BGM을 깔아보자.
[김영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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