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다. 수능과 대학 입학 사이 3개월 동안 무얼했는지 기억하는가. 에디터는 그 시기 청소년 문학에 푹 빠졌다. 이제 곧 어른이 된다는 설렘과 앞으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막막함 속에 찾은 문장들은 입시가 끝난 후 허전해진 나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청소년 문학은 ‘영어덜트’라는 말로 분류되기도 한다. Young Adult, 어린 성인이라니. 때로는 타국의 언어가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해준다. 수능 이후 관심을 가졌던 영어덜트 문학은 새내기 대학생 시절까지 나와 함께 했다.
스무 살, 얼마나 상징적인 나이인가.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거듭나는 나이, 그러나 그 발걸음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한 나이.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히지만 얼굴과 목소리에서 앳됨이 감춰지지 않는 나이가 스물 아닌가.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서툶 속에서 나를 지탱해준 것은 영어덜트 소설이었다.
영어덜트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10대이다. 그들이 감정을 다루는 서툰 방식이 나와 너무 닮아서 더욱 책에 손이 갔다. 책장을 펼치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감정 과잉과 불안을 설명해주는 탁월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소년 문학을 탐독하기 시작한지 몇 해가 지난 지금, 여러 청소년 소설들이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이구나. 청소년 문학이라고 꼭 청소년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책을 읽으며 인물에 공감하면 된다. 당신의 서툰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발견하길 바라며, 나의 애정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아몬드>, 손원평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난 사랑이 실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무슨 대단하고 영원한 것처럼 말하는 게 꼴같잖아. 난 그런 물렁한 거 말고 강한 게 좋다./강한 거?/그래. 강한 거. 센 거. 상처받고 아파하는 거 말고 차라리 내가 상처 주는 쪽을 택하는 거.”]
아마 많은 이들이 영어덜트 문학이라고 하면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아몬드>는 선천적으로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선재’가 문제아 ‘곤이’를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선재와 다르게 곤이는 화가 많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아파하고 상처 받는다.
그런 곤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는 선재가 곤이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 선재보다 곤이에게 눈길이 간다. 얼핏 보면 곤이라는 캐릭터는 충동적이고 반항적인 캐릭터로 해석될 수 있지만, 깊게 관찰하다 보면 곤이는 누구보다 여린 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곤이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분노를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삼는다. 우리는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고 배출하고 있는가. 때로는 곤이처럼 서툴게 배출하면서 그런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는가.
<내 이름은 망고>, 추정경
[“저들이 던져 준 건 호의를 가장한 냉소일 뿐이다. 약간의 선의와 동정심에 무례함이 섞이면 결과적으로 악의로 변한다는 걸, 사탕을 던져 주는 입장에선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이곳에 와서 살지 않았더라면 그들과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유리창에 비친 우울한 내 얼굴이 보였다. 우격다짐으로 씩씩한 척, 그런데 울고 있는 듯한 내 표정이.”]
<내 이름은 망고>는 우리가 타인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지, 때로는 잔혹한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갑자기 엄마와 함께 낯선 캄보디아에서 살게 된 수아는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대신해 관광 가이드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난관에 처한다.
비슷한 또래인 캄보디아인 쩜빠와 같이 가이드를 맡으며 티격태격하지만 이내 친해진다. 수아는 관광 가이드 일을 통해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는 동시에, 한국인 관광객이 베푸는 호의 뒤에 숨겨진 모순들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청소년 문학이 국내에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반해 <내 이름은 망고>는 국내라는 공간을 초월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여러분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다름’을 어떻게 규정짓고 있는가.
<피그말리온 아이들>, 구병모
[“아이는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성이 없으며 제멋대로다. 그게 아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건 말 그대로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어째서 아이한테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솜사탕을 빼앗는 거야?”]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의 갈라테이아일까, 어떤 형태의 지배 또는 착취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을까.”]
에디터가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 구병모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를 모티프로 가져와,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시스템 속에서 길러지는 어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생이 불우한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길러낸다는 미명 아래 온갖 억압과 폭력을 자행하는 ‘로젠탈 스쿨’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작가는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억압과 교육이라는 이름의 통제, 그리고 개인의 자율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나의 선택이 누구에 의해 영향을 받고, 내가 꿈꾸는 자유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 책을 단순히 ‘청소년 문학’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어린 존재들의 자율성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대한민국 학교의 뼈아픈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욕망을 곱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