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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 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

by 박수진 에디터
2024.11.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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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를 보게 된 것은 어느 저명한 인물의 추천에서였다. 꼭 보라는 말에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고, 작품이 완결해 갈 쯤 나는 그것을 보기 시작했다. 완결하고 얼마 지난 후 작품은 유료 전환이 되었는데, 나는 그걸 아직 다 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품을 '어느 정도만' 본 상태에서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도 책을 읽는 데 손색이 없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을 왜 연재할 때 함께 따라가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작가가 설치해 놓은 함정이나 독자들이 흔히 가지는 착각, 그리고 그것을 깨주는 전개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게 나로서는 굉장히 아쉬웠다.

 

<집이 없어>의 제목을 보고 있자면 사전적으로 '집'이 없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집에 대해서 제도상으로든 범죄의 의미로든 여러 문제가 많지 않은가. 그런 문제들에 가려진 게 있다면 '집'은 단순히 일을 마치면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쉬고 안정을 취하고 이 집에 머물고 있는 내가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으로 장난하는 사람들에 더 분노하게 되기도 했다. 작품 속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일어난 분노다.)

 

 

집은, 힘들고 지칠 때 빨리 오고 싶어져야 집이다.

 

 

작품에서 주인공 중에서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은영과 해준은 말 그대로 집이 없다. 집이 없어서 떠밀려 온 공간은 안정을 취하기에는 흠이 많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안 좋은 시작이 있던 인물 둘이 지내는 것이 웹툰 <집이 없어>의 시작이다.

 

<매거진 조이 Vol.1 - 집이 없어>가 웹툰을 꼭 보고 싶게 만들면서도, 연재 과정에 독자로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데에는 책에 실린 리뷰가 한 몫한다.

 

 

하여 정말로 <집이 없어>에 대해 쓰기 어려운 건, 비평에 필요한 고정점을 찾기 어려워서다. 글쓴이의 관점이란 언제나 글쓴이가 서 있는 고정된 자리를 전제한다. 문제는 <집이 없어>를 읽는 과정 자체가 이러한 고정점을 흔든다는 것이다. 언젠가 다른 지면을 통해 백은영에 대한 독자의 비호감과 고해준의 통쾌한 복수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해 있던 18화의 베스트댓글이 '은영이 참교육 가자'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어떻게 이 작품이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했으며 어떻게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는지 비평한 적이 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해준의 통쾌한 한 방을 바라던 독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작품을 따라가며 은영을 비롯해 어떤 대상에 대한 나의 첫인상과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지 깨닫고 조심스러워진 수많은 독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장이란 고난에 대한 극복이나, 아픈 과거와의 화해, 자기개발 같은 선형적인 발전 서사로 환원될 수 없다. 해준과 외삼촌의 관계에 대한 은영의 의심은 틀렸지만, 해준을 찾아온 생부에 대한 의심은 그것이 어느 정도는 불순한 의도였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옳았다. 사람에 대한 해준의 믿음이 은영에게 성장의 계기가 되듯, 은영의 의심도 때론 해준이 미처 모르던 세계를 가르쳐준다. 믿음이 옳고 불신이 틀린 것도, 불신이 옳고 믿음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던지며 어제의 답이 오늘의 오답이 된다.

 

 

<매거진 조이 Vol.1 - 집이 없어>에 실린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리뷰다.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바로 '은영에 대한 참교육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초반 등장부터 은영은 독자가 보기에 반가운 인물은 아니다. 도둑질에, 거짓말에, 피해를 주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해준이 통쾌하게 해결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집이 없어>는 그에 대한 대답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집이 없어>를 보면서 그게 두려웠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부터 만연하게 퍼져 있는 '참교육'이라는 것에 녹아 들어 있었다는 것. 잘못이 있고 없고와는 무관하게 무엇이든 되갚아줘야 한다는 복수심, 다르게 말하면 그 이상으로 너도 당해봐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집이 없어>는 단순히 작품 속 주인공들의 변화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작품을 보는 '나'를 또 한번 마주하게 만든다.

 

'어제의 답이 오늘의 오답이 된다'는 말도 그렇다. 누군가를 향해 갖는 시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사람에 대한 게 아닌) 어떤 판단조차도 매일 변할 수 있다. 그런 변화가 틀린 것이 아니며 어떻게는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고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한편 <매거진 조이 Vol.1 - 집이 없어>는 리뷰에서 언급되는 컷을 함께 보여주어 작품에 대해 잊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이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집이 없어 관련 액티비티를 실어 일반 단행본보다는 보다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집이 없어>의 원작보다 리뷰와 작품 후기를 먼저 접한 입장에서 책을 얼마나 더 풍성하게 접할 수 있을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이미 작품을 다 본 후 <매거진 조이 Vol.1 - 집이 없어>를 보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새로운 사고를 열어주고,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기대를 일으키고, 작품을 보면서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집이 없어>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이 책 속 작가의 인터뷰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남겨본다.

 

 

여타 작품과는 달리 <집이 없어>는 구태여 악인에게 참교육을 시전하지도, 독자들을 위해 사이다를 날려주지도 않는데요. 이런 전개 방식을 취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일 큰 이유는 제가 그냥 사이다물을 못 그립니다.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네요. 또 다른 이유는 장르와 맞지 않아서고요.(그런데 이건 애초에 제가 사이다를 못 그리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이다가 맞지 않는 장르를 그리게 되는 거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집이 없어>는 현실에 있을 법한 아픈 경험을 주로 그린 만화인데, 장르상 이 문제를 사이다로 해결해버리면 좀 무책임하게 느껴질 거 같아요. 기만적일 것도 같고. 아마 사이다 없이도 서로 아픔을 알아채 주고, 멀리서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각자 성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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