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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처치 시즌 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범죄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한 사건이 풀리는 과정을 본다는 뜻일 테다. 많은 범죄드라마는 저마다 다른 주인공을 가지고 있다. <덱스터>의 경우에는 범인이었고, <크리미널 마인드>의 경우에는 형사팀이었고, <빅 리틀 라이즈>의 경우에는 피해자들이었다. <브로드처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브로드처치>의 주인공은 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영화배우로 더 잘 알려진 올리비아 콜먼과 <닥터후>로 유명세를 얻은 데이비드 테넌트가 만난 이 드라마는 2013년 최고의 드라마로 뽑히기도 했다. 옴니버스식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두고 진득하게 8시간을 끌고 가는 이 드라마는 언뜻 보면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한번 몰입하는 순간 그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올리비아 콜먼(엘리 밀러 역)과 데이비드 테넌트(알렉 하디 역)라는 두 형사의 조합은 극을 힘있게 끌고 간다.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십 대 소년 대니 라티머가 죽었다. 명백한 살인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평화롭기로 유명한 관광지이자 소도시에서 발생한 이 살인사건은 마을을 혼란에 빠뜨린다. 누가 이 소년을 죽였나? 아무도 의심스럽지 않다. 이 마을 안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조용한 마을 안에 사는 모두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가지고 있다. 작은 마을이기에 오히려 더 복잡다단한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대니의 아버지는 사건이 발생한 그 저녁에 무엇을 했는지 숨기고, 딸의 방에서는 대마초가 발견된다. 목사는 밤마다 수상한 저녁 외출을 하고, 대니와 가장 친했다는 친구는 사건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친구와의 채팅 기록을 삭제한다. 대니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나이젤은 그날 밤의 행적이 묘연하다. 대니가 살해된 밤 잃어버린 스케이트보드는 어쩐지 수상해 보이는 건물 관리인 수잔의 집에 있고, 대니가 고용되어 일했던 신문가맹점 주인의 과거 행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확실한 것은 모두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많은 진실이 나타난다. 대니의 아버지는 마을의 다른 주민과 내연관계에 있었고, 딸은 나이 많은 남자친구에게서 마약을 입수했다. 목사는 사실 알코올중독 자조 모임에 다니고 있었고, 나이젤은 밤마다 다른 집의 가축을 훔쳐 정육점에 팔고 있었다. 수잔은 대니의 시체를 유기한 범인을 보았지만 신고하지 않았고, 신문가맹점의 주인은 과거 미성년자 성추행 전과가 있었다.
특히 수잔이 시체 유기 장면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과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거에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단란해 보였던 그녀의 가정은 남편 때문에 파괴된 상태였다. 그녀의 남편은 딸에게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 때문에 딸이 자살하면서 그 사실이 언론과 경찰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그 모든 사실을 몰랐다고 말한다. 자신은 남편이 그런 사람인 것을, 그런 행동을 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지만 언론도 경찰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이유다. 경찰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를 의심하기, 의심당하기
그러나, 이렇게 많은 미심쩍은 인물들을 뒤로하고 밝혀진 범인은 바로 형사 엘리의 남편이다. 가장 의심스럽지 않았던 인물이 범인이었다. 가정적이고, 직장에서 일하는 엘리를 대신해 가사 일을 맡아 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 같았던 남편 조는 사실 소아성애자였으며 대니를 추행하고 있었다. 대니가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말하자 우발적으로 대니를 살해한 것이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죽은 아이의 부모는 올리비아에게 묻는다. 그것을 정말 몰랐느냐고. 너의 남편이 나의 아들을 추행하고, 살인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형사이기까지 한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모를 수 있었느냐고.
이 장면은 엘리가 수잔에게 했던 질문과 겹쳐진다. 수잔의 경찰 조사를 끝내고 수잔의 모든 과거를 알게 된 엘리는 수잔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남편이 딸들에게 그런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느냐고. 모를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이제 그 질문은 엘리에게 되돌아온다. 내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이제 안다. 엘리가 그것을 모를 수 있었다는 것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 달 동안 달려온 엘리를 본다면, 그녀가 몰랐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드라마의 하나의 줄기가 살인사건이라면, 두 번째 줄기는 엘릭 하디의 과거다. ‘샌드브룩 사건’. 엘릭은 샌드브룩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아니 형사의 실수로 사건을 망쳐버렸다는 오명을 쓰고 브로드처치로 좌천된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에 그 또한 밝혀진다. 중요한 단서를 분실한 것은 엘릭의 아내였고, 그녀가 내연관계의 다른 형사와 시간을 보내다가 분실한 것이었기에 모든 것을 묻어두고, 딸을 위해 자신이 모든 누명을 뒤집어썼다는 사실이.

여전히 불가해한 타인 앞에서
8시간 동안 이 다양한 인물들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브로드처치는 그 모든 관계를 경유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타인이 우리를 속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캉은 실재(The Real)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실재는 상징계(언어, 사회적 규범, 문화적 상징)에 의해 구성된 우리 경험과 달리,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무의미와 불확정성의 세계를 뜻한다. 우리는 실재를 접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경험이 우리의 일상을 깨뜨릴 때만 아주 잠시 실재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현실의 틈을 인식하고, 기존의 질서와 개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만 말이다.
아마도 <브로드처치>의 사건이 그 예시가 아닐까. <브로드처치>의 사건에서 어떤 명징한 사실이 하나 끌어올려진다. 우리는 사람들을 모른다는 것. 아마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 우리가 모르는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브로드처치>의 인물들은 그것이 극대화된 것 같아 보이지만,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잔혹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는 타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는 배신이나 갈등이 있을 때에도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신뢰를 쌓으려는 시도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타인이 배신했더라도, 우리는 계속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슬프고, 분하고,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하여 타인을 믿을 수 있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늘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감당하기로 결심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늘 타인으로 만들어진 관계망 속에서 직조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브로드처치, 하나의 마을인 이유다. 한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의 실재가 아주 잠깐 드러났을 때, 공동체가 내가 생각하던 그 안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이 마을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이 드라마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죽은 이후에도 새로운 아이는 태어날 것이고, 가족은 유지될 것이고, 어떤 잘못들은 아주 느리지만 용서될 가능성이 보이고, 마을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본 <브로드처치>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