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스터리의 본질, 인간을 담다 [드라마/예능]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공통점
글 입력 2024.11.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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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청자들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할까?

 

OTT 시장이 급격히 발달하고 콘텐츠 시장의 경쟁이 가속화되며 국내 드라마의 형태도 크게 바뀌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 주 2회, 16부작 편성이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스토리는 짧아지고 전개는 빨라지며 장면들은 더욱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연출된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범죄자에게 응징하며 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는 시청자에게 통쾌감을 선사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가장 재미있게 시청한 두 편의 드라마는 이러한 트렌드와는 조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다.

 

이 기고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두 작품 역시 기본적으로 범죄 수사 및 미스터리 장르라는 점에서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전형적인 드라마 트렌드와는 분명히 다른 차별점이 존재한다. 그런 독특한 부분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도록 도왔고, 두 작품의 매력을 깊게 탐구하고자 이 기고를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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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인간의 탐욕은 어떻게 악행으로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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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천 마을’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두 개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고정우’는 이 사건들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서 10년간 복역한 후 출소한다. 출소 후 ‘고정우’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살해된 두 친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진실을 좇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무천 마을’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마을 주민들은 겉으로 호형호제하고 ‘고정우’를 친 자식처럼 아끼는 듯 보였으나 그 이면에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었다.


지상파 드라마가 낮은 시청률로 출발한 상태에서 그 수치가 중간부터 반등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초기 시청률보다 약 3배 이상 반등한 수치로 막을 내렸다. 대체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시청자를 끌어당긴 것일까?

 

우선 이 드라마는 동명의 원작 소설이 가진 유럽식 문화를 익숙한 한국적 정서로 치환했다. 작은 마을에서 서로 친밀한 사이로 지내는 이웃의 모습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친근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긍정적인 정서로 보이는 이웃들의 관계가 사실은 거대한 범죄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고 무고한 피해자를 줄줄이 양산했다는 사실은 큰 공포와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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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 또한 안정적이었다. 미스터리 장르의 콘텐츠일수록 극의 사건과 관련된 여러 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청자가 극의 분위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무천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나는 어느새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구성원이 되어있었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기존 미스터리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도한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콘텐츠는 촘촘하게 짜인 스토리로 "누가 범인일까?"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흑막의 정체를 명확히 드러내며,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줄인다.

 

그럼에도 시청자가 계속해서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악랄해졌는가?"라는 심리적 동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이는 캐릭터 내면의 심리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탐구하며, 사건 자체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데서 매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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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미스터리 수사극의 경우 캐릭터 개개인의 심리보다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다르다.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 부모의 심리, 권력을 가진 자리에서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진실을 묻어버리는 심리, 단순한 복수가 아닌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의 심리 등 캐릭터 개개인의 심리를 중심으로 그들의 행동을 그린다.

 

특히 자신과 죽은 친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고정우’라는 선(善)을 대표하는 인물과, 그 진실을 덮고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마을 주민들이라는 악(惡)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작가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선악의 대립을 명확히 보여주고, 결국 선한 마음이 진실을 밝히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분명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스토리라는 점에서 최근 유행하는 일련의 복수극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결말에서 악인은 명확한 처벌을 받는 동시에 주인공은 일련의 사건들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애도하고, 자신 역시 또 다른 삶의 새출발을 준비한다. 이러한 결말은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피해자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며, 드라마의 주제 의식을 더욱 깊이 숙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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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인간을 어디까지 악랄한 존재로 만드는가? 그러한 악랄한 존재들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할까? 그들을 응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선한 마음을 잃지 않은 채 매일을 살아가는 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2.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딸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아버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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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가 살인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딸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부녀 스릴러 이야기이다. ‘장태수’의 딸 ‘장하빈’은 ‘장태수’가 수사하는 두 개의 살인사건과 모두 관련이 있는 인물로 드러나게 된다. 어딘가 서늘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느껴지는 딸을 아빠는 의심할 수도,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갈등한다.


이 드라마에서 한석규 배우는 냉철한 프로파일러 장태수 역할로 기대를 모았고, 역시나 그 기대에 부응하는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딸 역할의 채원빈, ‘최영민’ 역할의 김정진, ‘김성희’ 역할의 최유화 배우 등 조연 배우들 또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연까지 각자의 역할에 몰입해 빛을 발하는 점에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Black Out’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조연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육각형 드라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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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제 의식 측면에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 선과 악의 명확한 대립을 보여준다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한 인간이 신뢰와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적 딜레마에 초점을 맞춘다. 선과 악은 인간 내부에 모두 존재하며 우리는 늘 그 사이에서 휘둘린다.

 

특히 등장인물의 특징과 가족 간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딜레마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독특하다. 주인공 ‘장태수’는 딸인 ‘장하빈’을 살인 용의자로 의심한다. 반대로 학교 선생님 ‘박준태’의 아빠 ‘정두철’은 아들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신뢰한다. 두 인물은 모두 자녀를 둔 아버지이지만 한쪽은 자녀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한쪽은 자식을 완전히 믿어버린다.


‘장태수’의 후임으로 일하고 있는 이 경장과 구 경장 역시 이성과 감성이라는 딜레마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이 경장은 모든 것을 매 순간 의심하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반대로 구 경장은 피해자에 대한 감정적 공감과 위로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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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점은 결국 모두가 각자의 시선으로 사건과 인물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심하고 판단하며, 신뢰하고 공감한다. 작가는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가족 관계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도록 한다.

 

게다가 연출에 대한 호평이 상당하다. ‘장태수’와 딸 ‘장하빈’이 살고 있는 집은 모든 가구의 색이 어둡고 각이 진 형태로, 드라마의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배우의 표정을 잡기 위한 클로즈업 장면들은 인물의 가진 복잡한 심리를 시청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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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가족을 어디까지 의심하고 또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판단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존재일수록 더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늘 그들을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결국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는 천천히 깊어진다


 

두 작품은 분명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두 작품 모두 전개가 다소 느려 답답한 부분도 있으며 등장이 불필요한 캐릭터도 있어 보인다. 또 일반적인 미스터리 작품에 필수적으로 있는 극한의 두뇌 싸움이 비교적 덜해서 그런지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 자체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지점이 이 두 드라마의 독특한 차별성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전개나 잔인한 살인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을 구성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방점을 두었다. 명쾌한 사건 해결이나 통쾌한 복수보다 찝찝하고 으슥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탐구했다. 이러한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드라마의 전개가 비교적 느리게 진행됨으로써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여러 드라마는 대부분 극의 전개가 빠르다. 초 단위의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시청자는 갈수록 강렬하고 빠른 전개에 중독된다. 드라마의 초반 부분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등장시키고 그에 맞는 자극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필수이다. 게다가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드라마 홍보 자료가 만들어진다. 전체 스토리보다 강렬한 몇 개의 장면이 드라마의 화제성을 끌어오고 전개는 빠르게 흘러 시청자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위의 두 드라마는 빠르고 강렬한 전개보다는 느리고 섬세한 감성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이들은 충격적인 장면만을 위한 범죄가 아닌, 인간의 깊은 내면과 선악의 딜레마, 나아가 철학적 담론을 담아내며 차별화를 이뤘다.

 

두 작품 모두 매 주 챙겨보던 시청자로써 스토리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작품의 주제 의식을 고민하고 연출적 요소를 음미하며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위의 두 작품은 인간의 고유한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게 탐구하며, 오락으로서의 미스터리를 넘어 그 본질적인 가치를 깊이 있게 드러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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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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