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게임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새벽에 엄마 몰래 메이플스토리를 하거나 친구들과 컴퓨터실에서 플래시 게임을 한 기억은 있지만 내가 게임에 쓴 시간은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래도 삶에서 몇 번씩 게임을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는데 돌아보면 전부 주변에 누군가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대학 때는 오버워치와 배틀 그라운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나는 보통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게임을 켰다.
나의 관심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에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에서 한동안 게임 기획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보다도 게임 개발을 업으로 삼을 만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더 컸던 것 같다.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보드게임을 실물로 제작하면서도 그랬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시간을 삭제시키듯 게임에 몰입하곤 하지 않나. 밤을 세워 게임을 즐기고,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은 곁에서 지켜보기만해도 가슴이 뛴다. 그 모습에 나는 매료됐던 거다. 그러니 내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라는 장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게임 제작을 꿈이나 직업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그래도 한때 마음을 주었던 분야다보니 꾸준히 게임계의 주요 소식을 찾아보거나 가벼운 플레이 정도를 하는 편이다. 유튜브에서 예리한 솜씨로 게임의 구조나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독자적 생태계를 분석하는 영상들은 내가 좋아하고 자주 보는 콘텐츠다.
그러던 중 이번 오프라인 모임을 만나게 됐다. 오프라인 모임은 아트인사이트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되는데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서 신청하면 내부 기준에 따라 매칭되고 4달간 1달에 1번씩 만나 해당 분야의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게 되는 방식이다. 게임은 이번에 새로 신설된 항목이었다. 최근 바빠진 일정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신청을 눌렀다.
게임은 얼핏 생각하기에 가볍고 쉬워보이지만 실상 그렇지만은 않다. 게임 내에 진입장벽이나 고유의 독자적 생태계도 있어 이해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게임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최근의 게임들은 시간과 돈을 꽤 써야하기도 해서 열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아트인사이트에서는 다른 콘텐츠에 비해 활성화된 항목이 아니라 가끔 게임 관련 글이 올라오면 더 애정과 관심이 갔다. 한때 게임을 공부하고 게임업계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했던 터라 글 너머의 사람들을 한번쯤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번이 바로 그런 기회였다.
모임에 초대된 건 나를 포함한 총 세명이었다. 한 분은 처음 뵙는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반갑게도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꽤 오래전에 오타쿠 문화와 서브컬쳐 소비 형태를 다룬 나의 글을 보고 인터뷰를 제안해주신 분이었다. 반가웠고 기대되는 모임이었다.
우리는 첫 만남에 함께 보드게임 카페에 갔다. 유명 보드게임카페에서 단독 출시했다는 보드게임-라이헌트를 골라들었다. 게임의 진행방식은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나머지 사람들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베팅해서 점수를 따는 식이다.
첫만남의 긴장으로 조금은 상기된 우리는 어색해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미묘한 구라’들을 늘어놓았다. 유쾌한 기억이었다. 우리는 합법적 거짓말과 합법적 TMI를 남발하며 만남을 시작한 것이다. 게임에는 이런 힘이 있었지, 참.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게임의 규칙들을 빌려 마음껏 떠들었다.
바쁘게 시간이 흐르고 다음 만남이 돌아왔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느라 간만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보드게임을 또 할지 방탈출 카페에 갈지 여러 방법은 의논하다 피시방에 가기로 했다. 먹을만한 음식이 있고 수많은 게임이 있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곳!
누구는 직장에서 왔고 누구는 학교에서 왔다. 누구는 면접을 보고 난 뒤라 정장 차림이었는데 한 눈에 봐도 꽤나 다른 셋이 피시방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났다. 직장인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는 얼박사(얼음+박카스+사이다)를 하나씩 장전하고 집어먹을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간식거리를 입에 물고선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이 날 롤토체스를 처음 배웠다. 유명한 게임이지만 룰을 익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혼자 하려니 영 마음이 안 가서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던 게임이었는데 덕분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당시에도 즐거웠지만 만났던 날들을 떠올려보니 더 좋은 기분이다.
가볍게 이 게임으로 시작해서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자던 누군가의 제안과는 다르게 우리는 막차 시간이 거의 임박할 때까지 게임에 푹 빠져들었다. 롤토체스의 매력에 함께 빠져버린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다. 게임은 함께 할 때 더 재밌으니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또 만나서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길! 우리가 또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