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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기세를 몰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 -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by 이주연 에디터
2024.11.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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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를 몰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에세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우선, 제목의 초월 번역이 실로 대단하다. 일본어판 제목 <지바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인 내가 한 번도 외국에 가보지 않고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된 이야기>를 그대로 썼다면 이렇게 경쾌한 이미지의 에세이로 다가오지 않았으리라. 내용이 하나의 밈처럼 느껴짐은 물론 동시대 젊은 작가의 이야기라는 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즘 말’을 활용해 너무나도 잘 번역된 이 제목 아래, 번역 같은 집필을 하는 작가의 삶이 소개된다.

 

 

나는 외국어로는 물론이고 모국어로도 이런 회화가 고역이다. 귀로 정보 처리하는 것이 느린 탓인지 도무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일대일로 나누는 대화면 그나마 나아도 세 명 이상이면 포기다.

 

내 성격에 맞는 소통 수단은 채팅처럼 인터넷에서 손으로 쳐서 보내는 메시지였다. 수신해도 곧바로 대답할 필요가 없다. 특히 외국어면 아무리 간단한 말이라도 사전을 찾으며 답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P.43)

 

 

사실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건 언어 때문이었다. 나는 내 전공어를 정말 좋아했지만 짝사랑에 그쳤기에. 루마니아에 가 본 적도 없는 일본인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쓴다니, 언어에 천재적 재능이 있거나 루마니아 혼혈이라든지 하는 배경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만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루마니아에 가본 적도 없는, 심지어 살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거의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작가라니. 말이 되나. 그래서 선택했다. 분명 어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언어에 집착광공이길래 집필까지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을까. 저자가 짝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을 알고 싶었다.


저자 역시 어학 공부를 가시밭길이라고 표현한다. 성별에 따른 관사 변화에 좌절해 버린 나로서는 이보다 더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 사이토 뎃초는 새로운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하는 데에 흥미를 붙였고, 페이스북에서 냅다 루마니아 사람들을 친구로 추가하는 엄청난 기세를 보여준다. 원어민과의 대화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학습법이지만 학습자의 용기에 실행 가능 여부가 전적으로 달려있기 때문에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걸 너무나도 쉽게 해냈고, 나는 여기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된다고?

 

 

자,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고 루마니아 사람과 교류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배운 것을 말하겠다. 바로 ‘기세로 밀고 나가기’다.

 

물론 ‘내일 루마니아에 갈게!’ 같은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랄루카 나지 씨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건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걸 나중으로 미루면 쌓이고 쌓이다가 평생 안 하게 된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P.93)

 

 

어학 공부 필승법을 알고 있는 것도 맞지만 좋아하는 일에 대해 멈추지 않는 법도 아는 사람이라 읽는 사람마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즐겁다. 자기애가 넘치지만 겸손하고, 자랑할 때는 또 한마디씩 얹을 줄 아는 저자는 ‘완전 힙해...’라는 발언을 자주 뱉는다. 원어로도 똑같이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힙’에 미친 지금의 세대로서 저 말을 읽을 때마다 웃음이 샜다. 동년배가 쓴 느낌이 물씬 나서.

 


그러니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P.58)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기세를 몰지 못하는 나로서는 저자가 그저 부러웠다. 이 사람, 말로는 히키코모리라지만 해내는 게 너무 많다. 방 한 칸에서 이런 일들을 이뤄내다니. 꿈이란 건 원래 이루기 힘든 법인데. 가 닿기도 힘든 게 꿈인데 이 사람은 결국 루마니아 문단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루마니아 문학사의 일부로 짧게나마 기록되기까지 한다. 기세는 어떻게 모는 걸까. 뭐든 저지르고 후회하는 게 백번 낫다는 건 알지만, 기세로 목표에 돌진할 깡은 없는 편이다. 이걸 파고들면 자존감은 높은 데에 비해 자신감은 턱없이 낮다는 아주 수치스러운 사실이 들통난다.

 

 

우리 히키코모리는 자기 긍정감이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보다도 더 깊이 가라앉아 있다. 이 완벽하게 절망적인 상황을 견뎌야 하니까 반면에 자존심은 하늘보다 높은 곳에 있다. 콧대가 어찌나 높은지 지구를 뚫고 나갈 정도다. 그러지 않으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니까. 이것이 강력한 에고이즘이나 나르시시즘으로 이어진다. (중략)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라는 뜻이다. 보통 나쁜 의미로 쓰이는데, 뜻을 잘 보면 ‘자기를 사랑한다’다. 그게 뭐 그렇게 나쁜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굴 사랑할 건가? (P.248)

 

 

내가 만든 것도 사랑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사이토 뎃초에게 신나게 혼이 났다. 나는 여전히 ‘정말 고생했어’ 보다 ‘역시 네가 최고야’가 좋은걸요. 인정을 받지 못하면 순식간에 주눅이 들어버리고, 고생한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지도 않고. 하지만 정말 내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나. 잠시간 잊고 살아서 머릿속에 가라앉아있던 교훈이 다시 정수리 부근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나는 내가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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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달력을 넘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올해 나는 뭘 ‘하고 봤’을까. 나물을 다듬고, 가끔 뛰고, 읽고 쓰고 듣기, 이것저것 섞어 입맛에 맞는 양념을 만들어보고, 곁을 내어주고, 입지 않은 옷은 미련 없이 버리기, 떠나보내기, 꾸준한 청소와 빨래, 쟁여두지 않는 습관 만들기, 건전지 떨어지면 바로 교체하기, 화분을 갈고,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찍고. 뭘 하긴 한 것 같은데 안 한 것도 같고 조금 애매하다. 원래 해야 하는 일이지만 기어코 안 한 채 버티곤 했던 일들도 섞여 있어서 더 그렇다. 하지만 건전지 교체하는 게 제일 귀찮은걸요. 그래도 이런 일들을 해내서 지금 적당히 깨끗한 방에서 탈 없이 하루끝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땐 독서실 책상에 ‘뭐든 하면 된다’를 붙이고 살았는데, 어느새 ‘뭐든 하다 보면 된다’를 읊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막막하고 불투명한 좌우명이 된 듯한데.. 뭐 별 수 있나. 뭐든 해보자. 해보고, 안 되면... 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흉내라도 내면 되겠지. 뭐라도 하다 보니 뭐가 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불쑥 힘이 나는 것도 같고.

 

 

... 좋게 말하면 생존 투쟁, 나쁘게 말하면 현재 상태에 대한 변명이었던 셈이다. 나도 뭔가 하고 있다고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어필이었다. (중략) 이렇게 매일 영화 비평가 흉내를 내며 하잘것없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그래도 이런 흉내 내기가 사실 중요하다.

 

비평이든 창작이든, 스포츠든 어학이든, 나아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부 모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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