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루마니아 문학 현대사의 일부가 되었네."
도서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는 '루마니아어'라는 희소한 언어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언어 오타쿠의 에세이다. 저자 사이토 뎃초는 일본인 출신 루마니아 소설가로, 에세이는 그가 어떻게 루마니아어에 빠지고 심지어 직업으로 삼게 되었는지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사이토 뎃초는 자신을 '히키코모리'로 칭했듯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취업에 실패한 후에는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지냈다. 간단한 외출 외에는 집 밖을 나오지 않았던 그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영화에 몰두하며 수많은 비평을 써 내렸다. 그렇게 전 세계의 다양한 인디 영화까지 섭렵한 덕분에 <경찰, 형용사>라는 루마니아 영화를 만나 운명이 바뀌는 기적을 경험한다.
마이너하고 힙한 것들에 이끌렸던 사이토 뎃초는 제대로 된 자료를 찾기 힘든 (특별한) 루마니아어에 매료되었다. 홀로 독학을 시작하면서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썼고, 단지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 친구가 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잘 모르는 단어나 유행하는 단어 등 실제 루마니아인이 사용하는 생활어를 물어보는 등 굉장히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루마니아 메타버스'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일본인 최초 루마니아어 소설가로 우뚝 선다.
사이토 뎃초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취향'을 갖는 것을 넘어, 이를 꾸준히 애호하고 개발한 덕분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방구석에서 개척해 냈다는 점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혼자 지내던 사람이 연고도 없는 3,000명의 루마니아인에게 페이스북 신청을 보냈다는 건 정말 용감한 도전이지 않은가.
그의 에세이를 보면서 '히키코모리'에 대한 선입견이 부서졌고, 어찌 보면 누구보다 넓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제목을 보고 기대한 바와 달리 도서 내용은 90% 이상이 루마니아 아니면 루마니아어로 이루어져 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될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소제목인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에 더 가깝다.
애초에 루마니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잘 모르다 보니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흥미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그가 서술하는 방식과 섬세하게 덧붙인 부연설명을 보면서 루마니아어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온도가 종이를 넘어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할 때 주변 사람은 이러한 감정이었겠거니 짐작했다. 그런 면에서 일본에 사는 루마니아어 작가가 아니라 어쩌다 알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해서 더욱 친근했다.
앞에서 말했듯 내가 이 에세이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된다는 답이었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p.93)나 "그래도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p.252)와 같은 말들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특히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네 인생을 살아, 온 힘을 다해서"(p.260)라는 마무리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어쨌든 태어났기 때문에 살면서 힘들고 아플 수밖에 없다. 인생이 매 순간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문제가 될까?
지금부터 남은 삶에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다. 비록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많고, 그러면서 좌절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앞으로의 삶을 버티는 구심점이 되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가 쏟아부은 사랑과 열정의 흔적인 '부록 : 후대의 루마니아 오타쿠를 위한 자료'를 차마 읽을 자신이 없어서 넘긴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 운 좋은 또 다른 루마니아 오타쿠에게 차례를 넘기며, 이 에세이를 읽은 모두가 제목에 대한 답을 찾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