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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가끔은 살려고 노력하느라 진짜 살 시간이 없는 것 같아.
 

 

흥청망청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다가 갑자기 30일만이 남았다고 하면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평소대로 살 것 같다고 매번 답하지만 절대 그렇게 태연히 굴지 못하리라. 모든 순간이 촉박해진 일상은 전처럼 여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독주와 마약, 쾌락과 흥분에 잠식된 삶을 살던 그가 에이즈를 공부하고자 도서관에서 수 시간을 보내고 인증되지 않은 치료제라도 달라며 의사에게 간청한다. 방탕하게만 살아온 전기기술자가 약을 처방 받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고 국가와 대립하는 이야기. 예상치 못한 면모를 자꾸만 보여주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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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에이즈가 동성애자 간의 전염병으로만 여겨지던 때, HIV 보균자는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던 때 론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 여색이 심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추파를 던지는 그로서는 에이즈란 살면서 절대 걸릴 일이 없는 병이라, 의사더러 돌팔이라며 역정을 낸다. 나는 호모가 아니야. 폭력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판단을 부정하고 불신한다. 믿기 싫은 거다. 하지만 급격히 악화되는 건강 상태와 도서관에서 공부한 내용은 애석하게도 론이 양성임을 자명하게 증명한다. 면역력이 박살 나 자꾸만 피를 토하는 몸을 어떻게 두고만 보겠는가. 죽어가는 몸을 어떻게 태연하게 취급하겠는가.


론은 병원에 달려가 최근 개발되었다는 AZT를 처방받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사는 반대한다. 검증되지 않은 약을 환자에게 처방할 수 없다는 게 의사 이브(제니퍼 가너)의 의견이다. 너무나도 옳은 선택이지만 론에게는 그저 답답할 뿐이라 그는 제 발로 직접 뛰기 시작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대로 ‘목마른 사람이 제 우물을 파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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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그렇게 론은 멕시코까지 넘어가 한 의사를 찾는다. 모종의 사유로 면허가 정지된 의사는 론에게 기본적인 영양소부터 챙겨준다. 딱히 믿음은 가지 않지만 30일도 남지 않은 판국에 믿고 자시고 할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는가. 미심쩍지만 건강이 호전되는 것을 느끼며 론은 그런 표정을 짓는다. 어쩌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더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내가 찾던 치료제다,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 그리고 론은 이 약물들로 사업을 구상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마당에 돈을 벌어서 무엇할까 싶지만, 론은 목사 행세까지 하며 약을 챙겨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레이언(자레드 레토)과 함께 사무실을 차린다. 전문 변호사까지 고용해 가며 세금 문제와 같은 수많은 방해물을 헤쳐 나간다. 달에 400불이면 약을 마음껏 챙겨갈 수 있는 멤버십 제도는 암암리에 유명해지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론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에이즈 환자들에게 구세주가 된 셈이다. 정부가 승인해 주지 않는 약을 구할 수 있는 곳. 효과가 좋다는 치료제를 구할 수 있는 곳.


생각보다 사업 수완이 좋은 론은 떼돈을 벌게 된다. 생각도 못 한 전개라 흥미로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뼛속까지 장사치인 그는 꼭 ‘400불’을 가져와야만 약을 줬는데, 갈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본인의 차를 파는 등 부담까지 해가며 사람들에게 약을 주는 모습은 자선 사업의 양태와도 겹쳐 보인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무얼 위해 운영되는가. 본인이 살 수 있는 치료제만 찾으면 되는 것 아니었나.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면서 돈을 벌어 무엇하는가. 그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론의 목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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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이브는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굴러가는 제약-의료업계의 굴레 속에서 진정으로 환자를 살리고 싶어 한다.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하는 그녀는 본인 환자가 아니었음에도 론을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한다. 그런 이브에게 어느 하루, 론은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근사한 곳에서 밥 한 끼 하자며 능글맞게 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브는 웃는다. 전보다 훨씬 사람다워진 론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 굴러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저렇게 건강해지고 있는데 왜 론이 먹는 약은 미국에서 허가되지 않고 있는가. 약효가 증빙되지 않은 AZT는 어떻게 승인되었나. 비싼 시계로 허세만 부리는 사람이 개발한 약은 과연 믿을 게 되는가. 돈에 눈이 어두운 자들이 개발한 약은 어떻게 허가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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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디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가 그려줬다는 꽃 그림을 이브에게 건네며 론은 웃는다. 영화에서 론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웃는 첫 장면이다. 평범한 듯한 일상. 근사한 저녁 식사와 와인, 따뜻한 사람과의 다정한 자리. 그리고 이브는 그 그림을 거실 벽에 걸어둔다. 잠시 마주쳤던 환자와 의사에 그칠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잇속이 아닌 사명감으로 의사가 된 사람과 삶의 끝에서 사회의 부조리함과 본인의 무지를 깨달은 사람은 서로를 걱정하고 의지하고 아낀다.


유독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잦았던 론은 레이언과 같이 지내며 말이 없어진다. 본인의 선입견이 잘못되었으며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된 거다. 따뜻하기만 한 레이언과 함께하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해심과 감정들을 느낀다. 여전히 말투와 행동거지는 난폭하지만, 발언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서서히 바뀌어 간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서 그들을 무시하는 자들로, 국가로.


FDA와 론의 싸움은 국가와 개인 간의 대립, 그리고 국가를 이길 수 없는 개인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이미 유통되고 있는 약이 승인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공중보건과 경제성의 대립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이렇게 사망자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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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수많은 제지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론의 모습은 투병 중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주체적이고 강하다. 실제로 론은 처음 받았던 의사의 사형선고에 비해 7년을 더 살았다. 걸림돌은 많은 데에 비해 디딤돌은 하나도 없던 그들의 삶은 얼마나 무참했을까. 배경과 대중의 인식이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와 오늘날의 것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점도 이 영화가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이다.


힘과 돈이 전부였던 그의 세계가 핍박과 사랑, 연약하고 굳센 마음들이 가득한 세계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성적 지향의 전환, 극적 장치는 들어가 있지 않아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억지로 짜낸 서사가 아니라 영웅적 인물의 삶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패소하고 돌아온 집에서 수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는 론은 다시 한번 더 웃는다. 비록 무의미했던 그의 삶이 유의미해지는 계기는 좌절스럽지만 굴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


나였다면 30일 내내 유서와 편지만 쓰다가 결국 하고 싶은 말도 건네고 싶은 감정도 오롯이 드러내지도 못해 억울하게 눈을 감았을 거다. 겨우 30일, 한 달 동안 나라가 승인해 주지도 않는 치료제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론이 실제 인물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연장한 그의 위대한 삶은 본인도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갔을 테다. 손도 쓰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있지만 제 품을 팔아 죽도록 노력해 보는 방법을 선택한 그를 보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한정된 시간만이 남았을 때 과연 무엇을 할까. 지나온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까. 어떤 날들이, 어떤 꿈이 먼저 떠오를까.


끝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으니 매 순간을 진심을 다해 살기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곁을 내어주며 살기로. 치열하고 값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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