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사냥하는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헌트(hunt)는 '사냥'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헌트>의 두 주요 인물인 김정도와 박평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베드로 사냥"과 "불꽃 작전" 그리고 "1호 제거" 모두 대통령을 사살(사냥)하는 작전을 의미함으로써 헌트란 제목은 영화의 첫인상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소재를 나타낸다.
또한 헌트는 '수색, 추적'이란 의미도 있기에 스파이 동림의 정체를 수색하고 추적하는 <헌트>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김정도와 박평호가 모두 외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을 생각한다면 결국 사냥을 당하는 것은 김정도와 박평호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헌트>의 첫 사건은 1983년의 워싱턴에서 시작된다. 이때 대통령의 암살 작전이 어떠한 조직에 의해 시도되는데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용의자 또한 사살당한다. 이 용의자를 사살한 사람은 김정도인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 다시 이 부분을 상기해 보면 퍼즐 조각처럼 비어있던 부분이 맞춰진다.
김정도가 왜 용의자를 무작정 사살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앞부분을 복기해보며 스크린에서 즉각적으로 보였던 인물의 행동을 다시 한번 인물의 감정의 부분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의 연장에서 김정도 뿐 아닌 박평호의 행동 이유 또한 복기 가능하다. 또한 액션씬이 적재적소에 쓰였다는 것이 인지 가능하게 되는데 김정도와 박평호의 감정이 불안이나 혼란 등으로 고조될 때마다 액션씬이 등장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헌트>의 액션씬은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그것을 표현하는 가시적인 방법으로 아주 잘 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983년 워싱턴에서 벌어진 암살 사건을 첫 사건으로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후에 펼쳐질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함과 동시에 영화의 후반부 혹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헌트>라는 영화를 다시 한번 복기시켜 주는 장치로서 작동된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도 영화의 첫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헌트>는 영리하다.
차이점보다 더 큰 공통점
먼저, 박평호라는 인물은 안기부 1팀(해외팀) 차장이지만 실은 안기부 내 잠입한 북한 간첩, 일명 '동림'이라 불리는 스파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최종적 목표이자 지키고 싶은 가치, 신념은 평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북의 평화 통일이라 할 수 있겠다.
박평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큰 가치인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아가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평화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평호라는 인물의 이름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중반까진 노련한 안기부 차장처럼 보였던 박평호는 후반부로 달려가며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새롭게 보이는 인물이 된다. 평화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 행해져야 하는 각종 폭력과 살인 그리고 고문은 박평호에게 어떤 내적 갈등과 혼란을 짊어지게 했는가.
이러한 점에서 박평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선 폭력을 거부하고 지양하지만, 폭력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위해선 본인의 손으로 폭력을 자행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처럼 보인다. 또한 폭력이 사라진 세상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꽤 이상주의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박평호는 수단으로써 행하는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본인의 손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죽여왔다.
또한 박평호의 유사 가족(딸)처럼 등장하는 유정의 대사 중 "독재자의 하수인"이라는 말은 박평호를 한순간에 가치를 위해 싸우는 인물이 아닌 그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을 세워두고 본인의 폭력을 정당화하며 살아가는 인물로 만든다.
이 대사는 중의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남한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두환의 하수인, 북한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김일성의 하수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아무리 평화를 첫 번째 가치로 두고 살아간다 해도 독재자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지는 임무와 임무 수행 속에서 짓밟히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과 자유는 그 과정에서 사라진다.
박평호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사 가족 유정은 <헌트>의 스토리 자체를 굴러가게 하는 중요 인물로 작동한다. 하지만 유정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박평호를 감시하기 위해 온 북한 스파이었다는 점) 박평호와 비슷한 공통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자 전 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유정을 박평호의 감정을 위해서만 작동하고 버려지는 인물이 아닌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 여대생을 연출하는 특유의 클리셰가 딱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유정이란 인물에 더욱 숨을 불어넣어 주는 부분 이었으며, 또한 유정이 박평호와 김정도 사이의 밸런스를 잘 잡아주는 인물이라 느꼈기에 더욱 빛나 보였다.
먼저 유정은 박평호의 감정선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인물로서 작동하지만, 반전과 주제 의식의 키를 쥐고 있다. 유정은 박평호를 감시하기 위해 북한에서 보낸 첩자라는 점이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지며 박평호의 죽음까지 끌어낸다.
또한 박평호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선택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인물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박평호는 지키고 싶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상황 자체를 바꾸어 자신의 가치를 위해 직접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본의 아니게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유정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상황 자체를 타파한다. 자신을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살도록 압박하는 상황 자체를 스스로 깨부수는데, 총성은 희망의 시작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유정의 새 시작임과 동시에 전 세대가 이루어내지 못한 가치를 새로운 방향과 시각으로 현명하게 현세대가 이루어낼 것이라는 관객에게 기대하는 희망의 의미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유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이기도 한 것이다.
김정도는 안기부에 오기 전, 군인이었던 인물이다. 또한 1980년 5.18 민주항쟁을 직접 목도하고 현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각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5.18 민주항쟁은 김정도에게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을 준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영화에서 김정도의 모든 행동이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김정도의 가치관이 잘 나타난 부분은 CIA 지부장과 나누는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베드로 사냥"을 언급하며 모든 것을 그만두고 떠나라는 CIA 지부장의 제안에 김정도는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불쾌해한다.
이 대목에서 김정도가 내뱉는 대사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드러낸다. 어린아이가 총에 맞아 죽고, 국민들을 짓밟는 독재자를 두고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 살라는 게 말이 되냐는 김정도의 대사처럼 그는 그 무엇보다 민주화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죄책감 또한 상당했을 것이다.
김정도가 광주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각성하기 전, 독재자의 명령대로 행한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하나둘 모여 국민들의 학살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김정도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정도는 박평호가 동림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박평호에게 먼저 일시적인 협동을 제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지점에서 김정도가 박평호보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낮고 사람을 신뢰하는 인물이라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박평호와 김정도가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둘은 폭력을 지양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직속 부하인 주경을 직접 죽이고 눈물을 보이는 박평호와 광주에서의 현장을 목도하고 눈물을 흘리는 김정도는 큰 틀에서 놓고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박평호와 김정도 모두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며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그 폭력으로 인해 2차, 3차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또한 공통적 아이러니다.
잿더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헌트>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를 꼽으라면 방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콕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암살 사건과 박평호와 김정도가 나누는 대화, 그들의 행동 그리고 결국 폭발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모두 잿더미를 뒤집어쓰게 되는 상황 모두 장소가 이동되지 않고 쭉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이 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중요도가 나타난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대통령 암살을 수행하지만, 박평호는 암살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김정도는 암살이 성공하길 바란다. 박평호는 이미 북한 측에서 버림당한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즉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암살을 막으려 한다.
암살이 성공하는 순간 전쟁은 시작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김정도는 박평호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며 그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박평호와 김정도는 분명 다르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대통령을 향한 총격이 시작되고 결국 건물 폭발로 인해 모두가 잿더미에 뒤덮인 뒤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잿더미 속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시각적으로 모두 동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폭력으로 범벅진 박평호와 김정도가 추구하는 평화와 명분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헌트>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역사로 기록될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시각으로 과거가 될 현재를 바라보고 있는가 또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헌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 해답을 찾는 것 또한 남겨진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