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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피해자는 누구이며 가해자는 누구인가 - 몰타의 유대인

르네상스 시대 최고작 '몰타의 유대인'으로 21세기 현대사회를 풍자하다

by 윤채원 에디터
2024.10.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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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적의 '몰타의 유대인'이 상연됐다. 이번 공연이 크리스토퍼 말로의 그로테스크 코미디인 이 작품의 국내 초연인 만큼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커졌다.

 

부유한 유대인 바라바스를 여성 인물로 설정한 것은 이번 연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원작과의 차별성을 확실하게 획득할 수 있는 현명한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속도감 있는 전개와 혼을 쏙 빼놓는 뮤지컬적인 연출은 어지러운 몰타의 상황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 주었다.

 

튀르키예에 밀린 조공금을 바친다는 명목으로 몰타의 총리 페르네즈에게 전 재산을 부당하게 몰수당한 바라바스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복수다. 그런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도 자신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는 빼앗긴 집에 숨겨둔 돈과 재물을 되찾기 위해 아비게일을 수녀원으로 보내고, 자기 재산을 빼앗은 몰타의 지배층에 복수하기 위해 아비게일이 사랑하는 남자까지 싸움에 휘말려 죽게 한다. 큰 상실을 느낀 아비게일은 자발적으로 수녀가 되지만, 바라바스는 수녀원에 독이 든 죽을 보내 자신을 배신한 아비게일을 다른 수녀들과 함께 죽인다.

 

아비게일이 죽고 나자, 복수심으로 몰타에 피바람을 일으킨 바라바스의 곁에는 그의 노예인 이싸모어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자 곁에는 역시 그 돈을 탐하는 자가 있을 수밖에. 이싸모어마저 바라바스를 배신하고 몰타 사람들과 함께 그의 돈을 뜯어내려 하면서 바라바스는 완벽히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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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군사들과 몰타의 사람들이 한 데 뒤섞여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는 극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폭발적이다.

 

반짝거리며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컨페티는 서로 죽고 죽이는 성안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과 대비되며, 숨이 멎은 시체들을 고요하게 뒤덮는 검붉은 조명은 몰타에서 일어난 비극을 더욱 극대화한다. 복수의 주체였던 바라바스마저 이 자리에서 죽게 되면서 그의 복수는 결국 돈에 대한 집착이 부른 자폭이라는 결말을 낳는다.

 

그러나 바라바스는 무지막지한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부자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몰타의 눈엣가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바라바스는 세속적인 그를 경멸하면서도 그의 재산은 호시탐탐 노리는 몰타 사람들의 이중성이 만들어낸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몰타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결국 돈에 발목이 묶인 채 살아가는 게 바로 우리 현대인들 아닌가.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는 지금도 자본의 논리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튼튼한 톱니바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죽으며 마무리되는 이 극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돈과 차별이라는 개념 아래 인간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닌 양면적인 존재로서 끝없이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를 대척점에 놓고 서로 뾰족한 칼날을 세우게 하는 부조리한 세상의 틀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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