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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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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이 14년 만에 극장에서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다. <그을린 사랑>은 <듄> 시리즈와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캐나다 대표 감독 드니 빌뇌브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초기 걸작이다. 이에 더불어 1980년대 레바논 전쟁을 배경으로 끔찍한 폭력의 시대 속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만 했던 거대한 고통과 비극적인 운명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플롯으로 균형 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을린 사랑>은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을 각색해 만든 영화로,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 나왈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형제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왈이 작성한 편지 두 통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왈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잔느와 시몽의 여정 끝에는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비밀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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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무슬림 난민 와합과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밴 나왈은 형제들에 의해 남자 친구를 잃었다. 집안의 수치라는 손가락질을 견디며 힘겹게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도 발뒤꿈치에 점 세 개를 찍어 표식을 남겨둔 후 보육원에 맡기고 떠났다. 이후 삼촌 집에 머물며 대학에 다니던 중에 무슬림이 남부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되찾으러 다시 고향으로 떠나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 민병대가 자행한 참혹한 버스 테러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이에 이슬람 테러단체에 가입한 나왈은 과외 선생님으로 위장해 기독교 민병대에 잠입한 후 지도자를 총으로 암살한다. 결국 이 일로 감옥에 갇혀 온갖 혹독한 고문을 겪다가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에게 강간을 당해 두 아이를 낳게 된다. 15년 간의 고통스러운 수감 생활을 마친 뒤에는 캐나다로 떠나 공증인 사무소에서 비서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다. 그러나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수영장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발뒤꿈치에 점이 세 개 찍힌 남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가 실은 자신을 강간했던 아부 타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1+1=1, 즉 나왈의 소중한 첫째 아들이자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이며 잔느와 시몽의 형제이자 아버지인 니하드의 존재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그러나 나왈은 니하드가 고문관으로서는 자신의 인간성을 무참히 짓밟았지만, 아들로서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낸다. 평범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종교라는 명분 하에 끔찍한 폭력이 용인되었던 모순의 시대에서 고통받으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진실을 사랑으로 품는 위대한 한 여성의 선택은 마치 신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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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신화를 원형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영화를 보다 보면 어머니인 나왈이 꼭 잔느와 시몽에게 그들이 강간으로 인해 탄생했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의 형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꼭 알려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기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했다는 진실을 알게 되어 결국 두 눈을 뽑았다. 잔느와 시몽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어 충격에 휩싸인 두 사람은 과연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체적으로 찾아나가는 과정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평생의 과제다. 분명 독이 될 수도 있는 진실 앞에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왈은 그 진실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편지에 담았고, 잔느와 시몽은 나왈의 유언에 따라 그 진실을 파헤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니하드는 나왈의 편지로 진실을 알게 된 후 나왈의 묘지를 찾았다.

 

진실을 마주할 것. 그것이 우리를 비극적인 운명에서 완전히 꺼내주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운명이란 폭풍에 이리저리 휩쓸릴 뿐인 꼭두각시 같은 삶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 있기에. 그 누구도 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교훈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신화의 현대적 변형을 통해 인간의 운명과 진실의 무게를 이야기한 영화 <그을린 사랑>은 6월 25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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