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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생기 없는 눈동자의 뷔페 [미술/전시]

by 정서영 에디터
2024.10.02 15:13

 

 

한국에 MBTI가 유행하기 이전에 친구들과 심리 테스트를 하며 즐거워한 기억이 있다. 몇 해 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한 수업을 들으며 집-나무-사람 검사(HTP)를 알게 되었다. 종이와 필기구만 있으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 방식이다. 종이에 세 소재를 모두 그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소재들을 그리며 우리의 무의식이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너무 단순한 검사 방식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의 그림은 상이하게 나타난다. 누구는 집의 크기가 종이 전체 면적에서 구석의 작은 영역만 차지하고, 또 누구는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갔다 나올 것 같은 굴뚝까지 있는 큰 집을 그린다. 나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것은 사람 그림이었다. 어떤 사람은 웃고 있다. 다른 사람은 그냥 무표정이다.


웃고 있는 사람의 그림이 더 익숙하게 보였다. 스마일 표시를 일상에서 사용해서일까? 자연스레 스스로를 자주 웃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의 전시를 가고 나서부터 내가 언제 웃는지, 언제 무표정인지 파악해보게 됐다. 일상 중에 무표정으로 지내는 시간이 평소에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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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사람의 얼굴을 볼까. 이야기를 전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얼굴, 이 닦으며 보는 나의 얼굴. 길을 걸을 때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목적지만 바라보는 나에게 얼굴은 '상대'가 존재할 때 보는 것이다. 이를 닦고 있는 거울 속 인물은 나지만 마치 낯선 사람의 눈과 마주치는 것 같은 경험이기에 나 또한 상대처럼 느껴진다. 거울 속 나는 눈을 마주치면 웃는다. 그래서 보통 때 내 얼굴 표정을 웃음이라고 착각했다.


올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된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는 유독 거울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시를 보는 중 갑작스레 나의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낯선 경험이었다. 예상하지 못하게 마주한 나의 얼굴은 보통 표정이 없었다. 베르나르 뷔페가 마른 몸에 공허하도록 무표정한 사람의 그림을 그렸을 당시 몇몇 관객들은 그의 그림이 무섭게 느껴진다고 했다.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그는 데뷔와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첫 전시회를 마친 후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20세기의 증인'이었다. 뷔페의 인물화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 만연했던 긴장감과 피폐함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자신들의 초상화 같다고 말하며 환호했다.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거울들은 그 그림들이 21세기의 우리의 모습과 과연 다른지 물어보는 듯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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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척박하게 느껴지는 베르나르 뷔페 그림들 중 따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 있다면 많은 경우 아나벨과 관련 있는 것이다. 그의 인물화는 거의 모두 텅 빈 눈과 깊게 패인 주름과 마른 몸을 지녔는데 한 인물만 다른 그림체인 듯 생기가 있고 아름답다. 뷔페가 유일하게 미화한 인물, 그의 아내 아나벨이다. 가수이자 소설가이며, 배우와 모델로도 활동했던 그녀와 뷔페는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뷔페는 아나벨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만큼 그녀를 많은 작품에 담았고, 결혼 5년 후에 그림으로 남긴 자신의 유언장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나벨에게 남긴다고 쓸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그 작품이 베르나르 뷔페의 1963년작 <유언장 정물화>이다. 그림 속 유언장 종이 밑쪽을 보면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가 직접 지장을 찍은 흔적을 볼 수 있다. 화가의 직업으로 이보다 더 낭만적인 예술작품이 있을지 생각이 든다.

 

인물화, 광대 그림으로 유명한 뷔페는 풍경화도 다수 남겼다. 그가 그린 1970년대 이후 풍경화들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시 아나벨과 함께한 여행지 풍경으로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가 맞는지 잠시 헷갈릴 만큼 생기 가득하다. 꼭 언급하고 싶은 그림은 그의 1974년작 <샤노나, 호수, 오베르뉴 지방>과 1972년작 <라로셸, 시계탑 앞 부두의 배들>이다. 각각 뷔페의 서명이 없었다면 그의 것이라 믿기 힘든 작품과 그림의 모든 부분이 그의 시그니처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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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상을 보는 현실적인 안목과 로맨틱한 감성을 가진 그의 그림을 감상하며 완전히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목적이다. 베르나르 뷔페는 당시 그의 이름과 작품들만큼 잘생긴 외모와 성공 후 마련한 어마어마한 집과 재산이 유명한 화가였다. 그림 재능도 뛰어나서 15살의 나이에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조기 입학한 천재이다.

 

탄탄대로에서 신나게 작품 활동만 할 것 같은 그는 놀랍게도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한다. 올해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서 그의 붓질은 내쉬고 들이켜는 호흡과도 같았다고 표현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고 그것을 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그는 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 그리는 활동을 '일'로 여겼을까.

 

일과 직업은 최근 몇 년 동안 나와 주변 친구들이 끝없이 고민하는 주제이다. 우리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살 수 있을까. 외국에서는 "What are you do for living?'이라고 직업에 관해 묻는데 과연 앞으로 살기 위해 어떤 노동을 할지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보통은 내가 재능이 없는데 이 분야로 가는 게 맞을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다. 뷔페는 재능도 있고 성공했다. 우리가 꿈꾸는 삶이 아닐까.

 

 

 

 

노년이 되어서도 뷔페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일했다. 1990년대 후반 그는 몸에 이상을 발견한다. 증상은 심해졌고 몸이 서서히 굳어지는 파킨슨병을 진단받는다. 화가의 생명을 위협받는 몸 상태에도 베르나르 뷔페는 해골을 모티브로 스물네 점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중 유작 <죽음> 속 존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왕관을 쓰고 활짝 웃고 있으며 배에는 놀랍게도 아기가 있다. 아나벨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리며 크게 기뻐했다고 전한다.

 

죽음과 생명, 불행과 행복이 모두 담긴 그림을 남기고 그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 하루 일과를 아내와 보낸 뒤 그는 마지막 서명을 검정 비닐봉지에 남기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먼저 떠난다. 전시장에는 그가 죽기 1년 전 그림 그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의 아들 니콜라스가 촬영한 것이다. 뷔페는 아들에게 찍어달라고만 말할 뿐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그림 때문에 살았던 그는 수많은 그림을 세상에 선물하고 갔다. 세상이 그를 뛰어난 화가로 인정할 때도 다양한 이유로 비난할 때도 그는 언제나 성실하게 그렸다. 그의 인생과 죽음은 누군가의 시선보다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또, 멀티버스처럼 베르나르 뷔페가 죽음 시리즈 이후 가족들과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선택을 했다면 삶이 어떻게 마무리되었을지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평생 무표정한 인물들, 광대 분장을 하고도 웃지 않는 눈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더라도 생계 걱정 없이 남은 여생을 살 수 있음에도 붓과 함께 인생을 내려놓아야 했던 것일까. 모두 이제는 베르나르 뷔페에게 들을 수 없는 허공에 머무르는 물음일 뿐이다. 단지 하나 추측하는 것은 그리는 일이 그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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