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 왼쪽 얼굴이 예쁜데 [미술/전시]

오형근, 《왼쪽 얼굴(Left Face)》
글 입력 2023.01.23 08: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난 왼쪽 얼굴이 더 예쁜데’ 전시 제목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밀면 저절로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니 무의식 중에서도 내 왼쪽 얼굴이 조금 더 낫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셈이다. 아마 왼쪽 눈이 더 마음에 드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왼쪽 얼굴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왼쪽 얼굴은 우뇌의 영향을 받아 더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게 되는데, 표정 근육이 잘 자리잡으면서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오형근의 ‘왼쪽 얼굴’은 다르다. 어딘가 마냥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지나치게 솔직한, 그런 모습이다. 오형근은 지난 20여년동안 아줌마, 여고생, 군인 등 한국 사회 특정 인물군의 모습을 초상화하며 그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불안감과 정서적 흔들림에 주목했다. 나이, 직업, 젠더에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사회적 정서가 ‘불안’임을 포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불안의 최전선에 있는 청춘들을 이번 전시 《왼쪽 얼굴(Left Face)》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는 그가 2006년부터 진행해온 ‘불안초상(不安肖像 Portraying Anxiety)’ 시리즈를 중간 결산하고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전시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30122_233808399_02.jpg

 

 

‘불안초상’ 연작 중 하나인 ‘왼쪽 얼굴’에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이 있던 이태원에서 길거리 캐스팅한 젊은이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드라마 ‘파친코’의 배우 김민하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사진 초상의 제목도 피사체의 예명이나 인터넷 아이디 등으로 붙어있다.

 

‘젊은이’라는 단어로 묶어서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이들을 한 가지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KakaoTalk_20230122_234200722.jpg

 

 

사실 전시장의 인물들이 모두 왼쪽 얼굴만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일부분만 찍은 사진도 있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도 있다. 이를 통해 왼쪽은 일종의 은유임을 알 수 있다.

 

오형근은 “찍은 사진을 살펴봤더니 유난히 왼쪽 얼굴이 많더라”면서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 하지 않나. 왼쪽은 열등한 것, 낮은 것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드는 마음으로 ‘왼쪽’이라는 용어를 썼다. 왼쪽 얼굴은 말하자면 외진 얼굴, 경계진 얼굴”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왼쪽(left) 얼굴’의 왼쪽(left)은 오른쪽의 반대 방향으로써 왼쪽(left)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으로부터 남겨진 흔적으로써 ‘left’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권태현이 작가의 이 점에 주목했다. 전시장 벽 한쪽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세상 보든 것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낱말을 만들어도 의미의 영역 바깥에 남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루의 가장 밝은 시간부터 가장 어두운 시간까지 낮, 밤, 새벽, 저녁 등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 사이에는 어떤 말로도 부르기 어려운 어슴푸레한 구간이 있다.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의 분절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것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것들. 넘쳐흐르는 것들.

그러니까 구조 바깥에 남은 것들. 오형근의 연작 《왼쪽 얼굴》은 그렇게 남은(left) 것들의 초상이다.

 

 

KakaoTalk_20230122_233808399_03.jpg

 

 

오른, 또는 옳은(right) 쪽이 아닌 부분들은 어느 한 구석에 남겨진다. 그렇게 남겨진(left) 부분들은 우리의 왼쪽이기도 하다.

 

전시를 보고 있는데 문득 연락 온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왼쪽 얼굴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는 지나친 낙관, 마음이 힘들 땐 몸을 더 힘들게 만들어 그냥 침대에 뻗어버리고 마는 회피성 태도, 어려운 주제가 나오면 침묵해버리는 모습, 술.

 

 

KakaoTalk_20230122_233808399.jpg

 

 

사실 우리는 제각기 얼마나 다양한 왼쪽 얼굴을 가졌을까.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할 것이다.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면서. 그러나 꽁꽁 숨긴 뒷모습에서도 너의 왼쪽 얼굴은 어렴풋이 보인다.

 

조금은 작고 못생긴 귀, 여드름 흉터, 주름, 정돈되지 않은 눈썹, 잔머리. 그 말끔하지 않은 구석들까지 사랑하겠다고, 아니 사실은 너의 왼쪽 얼굴이 너를 더 사랑하게 하는 이유라고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싶다.


난 여전히 왼쪽 얼굴을 예뻐한다.

 

 

[신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2768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3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