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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도를 따라 처음 가보는 독립서점을 간다.

 

망원동은 시장에서 조금 더 주택가 쪽으로 깊게 들어가면, 무지 따스하고 고요하다.

 

안쪽 동네의 느낌은 대개 따뜻하게 옷을 다린 수증기향과 함께 세탁소 안에서 들려오는 옛날 라디오 소리, 동네 작은 슈퍼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아이스크림을 고르며 나누는 개구진 대화들. 가을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사락 거리는 소리, 무리 지어 노래하는 참새들, 미장원은 꽃집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잘 가꿔져 있었다. 작은 가게들 안에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대화들. 안 쓰는 천으로 만든 인형들이 빌라 벽에 붙어져 있었고, 하늘을 바라보니 얼굴에는 따뜻한 빛이 닿았고, 커다란 감들이 나무 가득 달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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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독립서점에는 나밖에 없었다. 책이 정말 많았는데, 진짜 내 취향의 책들이 많은 것 같아 여기도 보물 상자에 차곡히 넣어둬야겠다. 사람을 또 마주하는 법에는 책이 있다. 독립서점에서 출간한 책들 중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책들이 많은데 책을 구경하다 보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삶을 살아가며 어떤 감정이었는지 드러나있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내가 가장 진심일 때 써내려 가진다고 생각하기에, 솔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책은 두께도 인쇄된 글씨체도 문체도 표지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도 다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 같다.

책을 사는 일은 친구를 사귀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읽다 보면 뭔가 잘 안 읽히는 책도 있고, 내가 선호하지 않는 내용이나, 문체를 가진 책도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책은 아주 두꺼운 책인데, 주변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푹 빠져 단숨에 읽어 버릴 때도 있고, 같은 책과 또 만나 계속 읽기도 하며, 내게 닿은 말 중 너무 좋았던 말은 따로 써두기도 한다. 누군가의 소개로 정말 내 취향의 책을 소개받기도 하고, 그런 취향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조용한 인디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다 보면, 우연히 이끌린 책에서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 대한 세상이 좋았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책의 연대는 끈끈했다. 그들은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였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삶을 살아가는 중에 한번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천까지는 현실적으로 내가 조금 더 안정이 되면, 낼 수 있겠지만. 언젠가 내 책과 친구가 되어 여러 가지 감정을 나눌 누군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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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이 카페의 재밌는 점은 방명록이다.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누구랑 왔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 적혀있다. 천천히 구경했다. 글씨체도 문체도 다 다르지만 행복한 감정을 가득 담아 쓴 마음은 똑같겠지. 누군가는 세 달 동안 잡고 있던 행복한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이야기를 했고, 어느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언니를 동경해 닮고 싶었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연스레 언니를 닮아 있었다고 언니가 참 좋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방명록을 볼 누군가를 생각해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행운을 빌어 주는 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면도 일면식도 없지만, 나와 마주친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고민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기에, 어떤 이유로 이곳을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펼쳐 본 방명록에서 나의 기록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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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오래 삶을 살았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사실 연도마다 계획을 세워두고 살았는데, 이렇게 세세한 계획을 세워두면 약간의 힘든 점이 그 계획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틀은 세워두되, 현재 다가오는 것들에게 도전하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내 계획이다. 그러니 인생이 너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너무 상실하진 말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도 잘한 것이니, 하루에 있었던 작은 감사함이라도 생각해 보자.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가진 고민은 잘 접어 타오르는 노을에 던져 보내버리고, 우리는 내일 다시 힘차게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자. 삶은 굳게 잘 버티며 서있다가도 연약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니, 그러한 순간에 우리는 삶이 잠깐 앉았다 갈 수 있도록, 쉼터가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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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안면을 나누었을 수도 있고, 따로 일면식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항상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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