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떻게 저런 걸 찍지?" 싶을 때가 많다. 다큐의 대명사 동물의 왕국을 보면 맹수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데, 야생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찍어 우리에게 보여주니 말이다. 다큐는 짜여진 극본(무엇을 찍을 지는 정해져 있겠지만) 없이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에 그 생생함이 드라마나 예능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을 주제로 한 독립 영화는 그럼 어떨까? 영화답게 재미있을까, 아니면 다큐멘터리 찍듯이 잔잔할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다우렌의 결혼> 영화를 관람했다.
입봉을 꿈꾸며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조연출 ‘승주’.
하지만 현지의 고려인 감독 ‘유라’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예정된 결혼식을 놓치게 되며 다큐멘터리 촬영에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연출을 해서라도 다큐를 완성해 오라는 압박을 가하는데…
이때 ‘승주’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던 ‘유라’ 감독의 삼촌 ‘게오르기’는 가짜 신랑, 신부를 구해서 결혼식을 찍자고 하며 ‘승주’가 신랑 ‘다우렌’이 된다.
“지금부터 가짜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다큐 찍는 게 맞나…?
영화는 주인공 승주가 다큐멘터리의 자막을 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심히 고민을 하다 그냥 축구 선수 이름으로 적어버린다. 하지만 이후 방송사 담당자한테 허위로 작성한 사실을 들켜버리고, 다큐는 팩트가 생명이라는 말과 함께 지인 앞에서 볼썽 사납게 혼나고 만다.
그러고 나서 예정되어 있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결혼식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갔지만 담당 현지인 연출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진짜 고려인 결혼식은 찍지 못 하고 가짜 결혼식을 기획, 가짜 신랑으로 영상에 출연하게 된다.
고려인도 아니면서 고려인 행사를 하고, 이 연극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가짜 신부 '아디나', 가짜 신랑이 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이 모든 상황이 승주에게는 영 탐탁지가 않다.
사실 독립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의 특징 답게 제작비가 일반 상업 영화에 비해 적어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나는 등의 CG들이 난무하는 경우가 적다. 그래서 스토리가 좋더라도 영상미가 떨어지다보니 다소 재미 없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 영화 역시 독립 영화이기에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조금은 이질적이었던 맷돼지 그래픽이나, 소위 말하는 '돈 좀 썼다'라고 보여지는 화려함이 부족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 간 것만 해도 제작비가 꽤 많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들지만.
하지만 이것 역시 독립 영화의 매력이지 않는가. 무겁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영화 말이다. 그리고 영화 내 중간중간 섞인 유머가, 몸개그보다 말개그를 더 선호하는 나에겐 특히 더 잘 맞았다. 간만에 정말 재미있는 독립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본다.
아디나가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지만 간단한 말 뿐이지, 승주의 모든 말을 이해하고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다. 승주는 말 할 것도 없다. 번역기를 쓰면 되긴 하겠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일일이 번역기를 돌리는 건 대화의 흐름만 망치게 될 뿐이다.
둘은 (가짜) 웨딩 사진을 찍기 위해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향한다. 어색하지만 그럭저럭 예쁜 사진을 남기고 떠나려는 찰나, 승주는 아디나의 눈빛을 보더니 꿈을 펼치라고 오지랖을 부리며 말한다. 옆에서 통역을 진행해주던 게오르기가 본인이 단어를 잘못 선택해서 둘의 화를 부추기곤(..) 알아서 해결하라며 자리를 피한다. 그러고 둘은 통역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분명 자신들의 모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대화'가 됐다.
아디나는 한때 국가대표 선수가 될 정도로 양궁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심장병을 가진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승주는 아디나의 방에서 서울의 풍경이 담긴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드넓은 세상을 보며 더 멀리 나아가기를 꿈꾸고 싶어하는 모습을 캐치한 승주, 그리고 마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아디나.
싸움으로 번질 뻔한 둘의 대화는 어영부영 끝나고 말았지만, 서로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승주에게는 꿈이란 건 장소가 어디든 상관 없이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아디나에게는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반드시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둘의 가짜 결혼식은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제 승주는 돌아갈 일만 남았다. 마지막에 아디다는 한국으로 잘 가라며 승주에게 악수를 청했고, 승주도 이를 받아들였다. 서로에게 고마웠고, 미안했음을 알리는 뜻이었을 것이다.
승주의 가명 '다우렌'은 카자흐스탄에서 '행복한 시간'을 뜻한다. 비록 다큐를 찍기 위한 결혼식은 가짜였지만, 그 여정에서 느꼈던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마을 주민들의 웃음과 기쁨은 가짜가 아닌 진심이었으며, 다우렌-승주에게도 아마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떠나기 전 승주의 미소에서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내용에 100% 몰입해서 보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들은 [결혼식은 가짜지만 마을 주민들은 진짜로 알게 해서 모두가 즐거워하면 된다]를 목표로 삼았지만, 결혼식을 올린 두 남녀가 다시 미혼처럼 사는 걸 마을 주민들이 과연 의아하게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후 아디나가 한국으로 올라오면서-그로 인해 주민들이 그런 의혹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테니-사실은 아디나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것에 대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소소하게 웃기면서 가슴 따뜻한 독립 영화 한 편을 보고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의 위안을 받은 날이었다. 두 사람은 가짜 결혼식에서 진짜 꿈을 찾았다. 서로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을 보니 나 역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용기가 생기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