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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있는 이상한 물건들을 부숴주세요”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오늘의 주인공.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사무실의 전경이 펼쳐지기만 할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몽둥이를 이용해 사무실 내부의 물건들을 파괴하던 주인공은 부서짐과 동시에 피를 뿜어내는 의자를 발견한다. 플라스틱 파편이 아닌 인간의 살점과도 같은 파편들 속에서 주인공은 사무실을 성공적으로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그와 동시에 나오는 한 명의 앵커. 앵커는 이 건물의 모든 층에 숨어있는 이상한 물건들을 부숴달라며 요청을 하지만, 층과 방을 옮기면 옮길수록 더욱더 기괴한 사무실을 마주하게 된다. 수없이 많은 방들, 피가 나는 물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망가져 가는 앵커의 모습… 대체 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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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모습을 한 앵커는 주인공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말해준다. 건물을 헤집으며 물건을 부순 주인공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항암치료제’. 아무리 이동해도 끝이 없는 건물은 암에 걸린 앵커의 몸 속이었으며, 피를 쏟아내는 의자와 모니터들은 바로 암세포였다. 스테이지를 통과하면 할수록 많아지는 이상한 물체들과 망가져가는 앵커는 사실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암 환자였던 것이다.


2020년 출시된 캐나다산 인디게임 < Perfect Vermin >은 기괴하게 변하는 건물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부수는 액션 어드벤처이자 호러게임이다. 반복되는 게임 시스템 속, 단순히 물건을 무작정 부수는 스트레스 해소 게임이라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암, 그리고 금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약 1시간 가량의 짧은 플레이타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게임 구성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게임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플레이어이자 주인공이 ‘항암치료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상한 물체를 찾기 위해 사무실의 문을 비롯한 여러 물체 역시 부숴버리게 된다. 즉, 암세포를 치료하기 위해 몸 속의 다른 물체들 역시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의 항암 치료와 같이, 암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독한 약품들이 멀쩡한 몸까지 파괴한다는 사실을 현실적이지만 자연스러운 게임의 요소로 녹여냈는 점 역시 꽤나 인상적이다. 한계가 있는 게임이라는 하나의 매체 속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 ‘금연’을 강렬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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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게 지령을 내리는 앵커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옆에 놓인 재떨이에는 담배가 쌓여간다. 앵커가 암에 걸린 원인은 바로 지속적인 흡연 때문이었던 것.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앵커와 건물 속의 모습처럼 이 게임을 관통하는 주제는 ‘금연’이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숨어있다. 게임의 엔딩에서는 의사와 앵커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암의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치료를 받길 권하는 의사와, 언론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릴 수 없는 앵커의 대화가 시작된다. 앵커는 검사 결과를 하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앵커는 검사 결과 대신 자신의 커리어와 인생을 빛내줄 대학살 사건을 취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 치료를 뒤로하고 나가는 앵커는 이런 말을 남긴다.

 

 

No one will care about my death if I don't prove to them that I lived.


내가 살아있었음을 알리지 못한다면 내가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거예요.

 

 

금연이라는 메시지 뒤에 숨어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 어쩌면 암을 형상화한 건물과 게임보다도 인상적인 존재에 대한 앵커의 필사적인 집착은 게임을 접하는 이들에게 고뇌의 시간을 선사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죽음을 뒤로하고 다시 삶의 전선으로 뛰어드는 앵커에 삶에 대한 회의감과 동시에 동질감이 들었다.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몸을 뒤로하고, 어쩌면 죽음보다 가치 있을 존재의 증명을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앵커의 모습이 어딘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매일 밤을 지새우고, 불안한 도전을 결심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단 나의 이야기뿐만이 아닌,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취직을, 합격을,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혹사하는 수많은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게임의 엔딩에서는 앵커의 죽음이나 결말을 다루지 않는다.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간 앵커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냈을까. 인생이라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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