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타투에 관한 농담

해영 님, 저 타투 할까요?
글 입력 2024.02.0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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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가 가장 하고 싶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확고한 나만의 삶의 의미를 찾았을 때?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을 때? 마음이 허전할 때?


아니다. 나에게 타투 욕구가 가장 심해지는 때는 ‘나의 것이 아닌 근사한 타투를 봤을 때’이다.

  

정해영 에디터 님을 알게 된 건 지난 11월 열렸던 아트인사이트 10주년 기념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아주 조용히 자리의 한 곳에 존재하며 이따금 수줍은 웃음을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그날 서로 주고받은 SNS를 통해 보게 된 그의 모습은 훨씬 자유로웠다. 세상에 이렇게나 본체와 인터넷 자아가 다른 사람이라니. 그렇게 쭉쭉 피드를 보던 중 발견한 알록달록한 색채.

 

어, 타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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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디의 색채와 어우러지는 화사한 색감. 귀여운 초식 동물과 꽃들의 이미지가 아른거렸다. 이렇게 멋진 타투라니. 이렇게 사람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니 나는 그런 그림을 발견한 적이 없었는데.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나에겐 타투가 없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한 6년 전쯤 몸 어딘가에 제멋대로 갈긴 타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였는지, 마음에 드는 그림을 못 찾아서인지, 돈이 없어서였는지, 의미를 찾지 못해서였는지. (아마 전부 해당했겠지만) 이젠 그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 잊고 있었던 약속이 생각난 것 같아 괜히 타투 계정들을 뒤적거리며 뒤척이다가 결심했다.

 

이 타투의 주인을 만나봐야겠다고.

 

●  ●  ●  ●  ●


새해의 들뜬 기운이 사라져가는 1월 말. 아기자기한 예술인 동네로 알려진 문래에서 해영 님을 다시 뵈었다. 다시 수줍은 모습으로 마주한 그와 대화를 시작했다. 카페에 점점 들어차는 사람들과 덕분에 고조되는 분위기에 무아지경으로 나눈 대화의 일부를 공유하려 한다.

 

 

1.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막학기를 앞두고 있는 대학생 정해영입니다. 아트인사이트는 2년 전쯤 처음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컬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하반기부터는 신촌 기반의 문화예술 잡지를 만드는 동아리 ‘잔치’에서 인터뷰어로도 활동하며 글을 쓰고 있어요.


 

Q. 타투라는 행위 자체가 머리에 직접적으로 각인 된 경험이 있을까요?

 

기억을 해보면 제가 사실 스무 살 전까지는 타투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몰랐거든요. 제가 강원도 평창 출신인데 워낙 시골에서 살기도 해서 (타투를) 잘 접하지 못했고. 거의 저랑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죠. 대학에 가고 나서 친해진 누나가 어느 날 작은 레터링 타투를 하나 받고 왔는데 그게 너무 예쁘게 보이고 마음에 큰 인상으로 남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은연중에 ‘나 언젠가 타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첫 타투는 언제일까요?

 

일 년 반 정도 전에 군대 전역을 하고 한 학기 휴학하고 있으면서 처음으로 타투를 하게 됐어요. 사실 타투가 하고 싶은 사람들은 타투를 할지 말지 계속 고민하다가 일상이 바쁘다 보면 그냥 무마돼 버리고 포기하게 되잖아요. 저는 그때 너무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너무 많아서 한 번 이렇게 ‘뽐뿌’가 올라오면 그걸 주체 못하고 할까말까할까말까할까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그냥 지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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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님의 타투.

 

 

2.


Q. 웹진 ‘잔치’에서 다른 타투 소유인과 인터뷰한 글을 읽었어요. 거기서 타투를 실행에 옮기게 된 일을 이야기하며 “우연히 본 타투이스트의 인터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라고 말씀하셨죠. 타투의 비거니즘적인 특성에서 큰 매력을 느끼셨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뭔가 결정적인 계기였다기보다는, 생각지도 못하게 알게 된 매력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타투가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것을 사실 체감하지 못하고 그냥 단순하게 몸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분 인터뷰를 보며 좀 알게 된 거죠. ‘타투라는 것에 내 나름대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구나’, ‘(타투가) 어떻게 보면 내 라이프 스타일까지 녹여낼 수 있는 효과적인 자기 표현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고.

 

그래서 안심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타투가 어쨌든 생각이 좀 많아지는 장르잖아요. 그런데 이런 거라면 나, 해도 될지도…? (웃음) 스스로 합리화를 한 거죠, 그걸 보면서.

 

 

Q. 처음 타투를 받은 타투이스트 분께 계속 작업을 받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파과’ 님인데, 이 분이 동물이나 식물을 위주로 해서 자연의 이미지를 (제 생각에는) 따뜻하게 그리시는 분이에요.

 

파과 님께 작업을 받기로 한 건 역시 앞서 언급한 인터뷰가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제일 편안하게 느끼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자연의 이미지였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부터는 비거니즘을 접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분의 인터뷰에 그런 모든 게 녹아 있는 거예요. 이분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며 타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그분의 도안이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들을 되게 잘 구현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게 확실히 제일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Q. 지금 가지고 계신 타투가 몇 개인가요?

  

지금 타투가 세 개 있어요. 세 개 다 팔에 있고, 팔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제일 만만한 부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쉽게 제 타투를 볼 수 있어야 해서였어요. 저는 (타투를 하는 이유가) 자기 만족 측면이 많아서 어디에다 할까 고민했는데 그게 팔이었던 거죠. 내가 일단 계속 볼 수 있어야지 내가 타투를 했다는 걸 계속 확인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오른쪽 팔에만 타투가 있고 전부 컬러 타투인데, 만약 다른 쪽 팔에 새긴다면 흑백으로, 그리고 (채색이 아닌) 라인 타투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만 레터링 타투는 나중에 저한테 부담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팔에 새긴 것들은)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좋은 이미지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그걸 눈에 보이게 구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미지 타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은 이미지를 새긴다는 것이 저에겐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3.

 

Q. 잔치 인터뷰에서 “그래서 타투 만큼은 의미 바깥에 내버려두고 싶었죠”라 말씀하셨는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에 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원래 의미를 부여하는 거에 굉장히 집착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면이 많은데, 어떤 대상이 있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대상이 존재하는 의미가 강해지고 명료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제가 과거에 써왔던 글과 연결이 되는 것 같은데, 제 글을 조금 돌이켜 보면 소위 ‘비주류’라고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썼거든요. ‘비주류라고 해서 쉽게 무시되고 쉽게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방향으로 글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일종의 호명을 한 거죠. 누군가는 글로 쓰지 않고도 무시할 수 있는, 예를 들어 퀴어 같은 소재로 글을 쓰며 ‘이건 사실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시선을 자꾸 부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새 생각을 해보니까 그 의미라는 게 어떻게 보면 덧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겐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세상에서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무가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제 컨디션이나 경험에 따라서도 그 의미들을 제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의미가 있어서 보다는 "오히려 두루뭉술하고 의미가 없이 존재하는 것이 제일 강한 존재 방식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 의미 없이 그냥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타투도 한국에서는 비주류에 속하니까 주변 시선에 영향을 많이 받을 거라고 느꼈거든요. (제가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 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뭔가 의미의 바깥에 두고 ‘나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했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딴지를 걸 수 없잖아요. ‘그냥 했어, 그래서 뭐 어떡해’ 이런 느낌.

 

 

Q. 타투를 지우는 것을 염두에 둔 적도 있나요?

 

저는 제 자의로 둬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오로지 제 자의로만 반영이 된다면 절대 타투를 지울 생각은 없어요.

 

 

Q. 타투를 또 받으실 생각은?

 

11월에 타투를 하나 더 받았거든요. 제가 팔을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최근에 받고 나니 그 욕심이 어느 정도 채워졌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계획이) 없는데 확신은 못해가지고…근데 아마 하게 될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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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소감과 함께 타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을 위한 말을 요청했다. 가벼운 마무리로 생각하며 한 질문이었는데 오래 고민했다는 게 아닌가. 사소한 데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는 것은 생각의 레이어 수가 많다는 것. 그의 세심한 성격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Q. 타투를 고민하는 저에게 해줄 말씀 있으신가요?

 

생각을 많이 해봤거든요. 제가 무슨 말을 해야지 했는데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제가 뭐라고 또 이렇게 말하겠냐마는. 가볍게 말하려고 했다가 생각이 많아져서…

 

일단 저의 경우에는 타투 때문에 문제를 겪은 일이 아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주변에서는 ‘잘 어울린다, 예쁘다,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반응만 있어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만약에 그리고 계신 미래가 확고하게 있고, 그 미래에서 타투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포기해야겠지만, (그런 미래가) 너무 확고한 것도 아니고, 타투가 정말 받고 싶다면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타투는 받아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정말 별 게 아닙니다.

 

그리고 타투가 뭔가 미래에 장애물이 될 수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제가 타투를 문제시하지 않는,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 자체로 존중할 가능성이 높은 문화나 조직으로 갈 수 있게도 만들어줄 수 있거든요. (앞으로의 길은) 제가 소거해 나가는 거니까. 그게 오히려 또 내 인생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줄 지도 모르는 거죠.

 

이어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제가 ‘마이너하다’고 하는 것들에 관해 글을 쓴다고 했죠.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명 아닌 사명을 가지면서도 글을 썼어요. 사실 아트인사이트도 그렇고 저희들은 자기가 쓴 글이 누구한테 읽히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저에게 인터뷰 요청을 주셨던 것을 보니 제 글이 누군가에게는 읽혔구나, 신기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한동안 글을 쓰는 활력이 좀 줄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재밌어요. 이런 소재에 관해 저는 글 말고 대화로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글과 말은 맛이 좀 다르잖아요. 겪어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  ●  ●  ●  ●


해영 님과의 인터뷰 이후 타투를 결심하게 되었나? 그건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겁이 많고, 여전히 타투에는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도안을 찾는 건 막막하고, 지갑은 여전히 종잇조각만큼 얇고…

 

그러나 해영 님과의 대화를 통해 느낀 건 꼭 많은 것을 주어진 틀 안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선택에 따라 방향을 수정하며 나아가는 것도 좋은 미래로 나를 이끌어줄 수 있다는 것.

  

그건 꼭 타투에 한해서가 아니어도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이야기할 때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말고, 오히려 의미를 놓는 것. ‘그냥’ 하면 딴지를 걸 수 없다는 사실. 생각을 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을 조금 풀어 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나도 나의 타투를 보며 농담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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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느 정도 채워진(?) 해영 님의 팔.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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