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지는 입김은 무엇을 남겼는가 [음악]

글 입력 2023.12.31 10: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체감 온도 영하 20도를 웃돌던 요즘 날들에, 추위를 우습게 봤다가 된통 혼났다. 손은 빨간색, 아니, 거의 보라색으로 변해갔고, 발은 꽁꽁 얼어서 감각이 없어졌다. 발을 동동 구르며 숨을 연신 몰아쉬니 뿌옇게 무언가 일어나 잠깐 우리의 눈에 보였다가 없어진다. 입김이 나오는구나, 이 노래를 들을 때가 왔다.

 

10cm 권정열은 순식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입김을 사람의 관계에 비유해 ‘입김’이란 노래에 담았다. 노래 속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느끼며 할 일도 제쳐놓고 우울해한다. 눈부시게 다가온 상대방의 사랑이 닿았을 때 그 사랑을 버텨내지 못할 만큼, 버터처럼 녹아내릴 만큼 과분하고 행복했는데, 이제 그런 사랑은 남아있지 않다.

 

손이 차가울 때 손을 잡아주고 입김을 불어 녹여주던 상대방을 떠올리지만, 입김도 상대방도 희미하게 날아가 버렸다. 뜨거웠던 입김이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던 화자는 텅 빈 마음을 뱉어낸다. 대중음악에서 매우 흔한 ‘사랑과 이별’이란 주제를 사용했지만, 권정열만의 방식으로 입김이란 소재를 활용해 풀어나간 점이 인상 깊다.

 

 

사랑은 꽤나 눈부시게

날아와 내게 닿았을 때

난 버터처럼 녹아내려 달콤했었는데

 네가 다가와 따뜻하게

 잡은 내 손이 차가울 때

 녹여주던 입김이 되게 예뻐 보였는데

 but, 사라지고 말았네 입김도, 작은 입술, 짧았던 입맞춤도

 가질 수 없었지 넌 입김처럼 희미하게 날아가 버렸네

 

- 입김, 10cm

 

 

나는 무언가를 가졌다가 잃었을 때의 충격과 슬픔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된 삶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선물 받았지만, 그 종착지로 가는 여정도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삶에 대한 회의감도 크게 느꼈었다.

 

사람 간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을 겪었을 때 나는 애초에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입김이 사라지는 듯한 아픔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생각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입김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와 내 피부에 닿았을 때 형체는 곧 사라지지만, 따뜻함은 더 오래 지속된다. 차가운 바람으로 그 온기가 식는다 해도, 나를 따뜻하게 해줬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나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 따뜻함의 잔상은 다시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중심을 지탱해 준다. 서로 맞지 않아 더 이상의 만남을 중단하기로 한 연인은 처음에는 '애초에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어도 될 텐데'라는 죄책감을 가지지만, 시간이 흐르고, 당시 나눴던 마음의 진심만을 의의로 둔 채, 다음 사람을 기다린다.

 

반면, 죽음과같이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이별을 겪었다면, 우리는 상대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슬픔을 버텨낸다 '기쁨은 더하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처럼 같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과 따뜻했던 순간을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첫 숨에 뱉어낸 입김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내뱉을 새로운 숨은 계속해서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자. 바람이 불고 손발이 얼어붙어도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세상엔 언제나 새로운 따뜻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원정민 에디터.jpg

 

 

[원정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