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용한 행복 속에서,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

글 입력 2023.12.2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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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날까요? 그런데 이름도 모르네요.” “다음에 알려줄게요”


 

2024년의 어느 날, 헬싱키의 외로운 두 영혼 '안사'와 '홀라파'는 우연히 만나 눈길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홀라파는 유일하게 받아 적은 안사의 전화번호마저 잃어버린다.

 

짓궂은 운명이 이들을 갈라놓으려 할 때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이란 걸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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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을 적실 오아시스 같은 사랑


 

버석버석한 사랑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목에서부터 사랑을 낙엽으로 비유하고 있지 않은가.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실업자, 난민, 하층민 등의 삶을 그리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지독하게 현실적인 삶, 그것이 종합된 정세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삶에서도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는 관찰자이기도 하다. 그만의 포장되지 않은 투박한 어투가 영화 전반에 잘 녹아 있다.

 

마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안사는 유통기한이 만료된 음식을 허가 없이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해고당한다.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홀라파는 고된 업무에 매일 술을 마시고, 일을 하다 다친 어느 날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후 음주 근무로 해고되고 만다.

 

또한 감독의 시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명이 죽어 나가는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를 비춘다. 피로함이 극대화된 일상과 되는 것 하나 없는 현실은 이들의 척박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역시 우리는 사랑을 찾아볼 수 있다. 안사는 비록 해고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그녀를 지켜주려던 마트 직원들 간의 연대를 느꼈다. 알콜 중독자인 홀라파 역시, 무기력한 일상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게 해주려 하는 자기애 넘치는 직장 동료가 데려간 바에서 안사를 만나게 된다.

 

커피 한 잔 사 마시기 힘든 이들의 일상에도 희망은 언제나 불시에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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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투쟁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과거의 어느 한때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점점 사랑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온다. 경제는 침체되고, 삶은 팍팍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사치가 된다. 슬픔, 노여움, 기쁨, 행복을 최소화해야 더 적은 에너지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을 점점 포기하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마 더 텁텁해지면 텁텁해졌지, 과거의 영광과 기억 속의 낭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신과 내가 밟고 서 있는 대지가 사막화되고 대기가 텁텁해져도,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 상대를 쫒는 눈빛은, 끊임없이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은, 둘이서 계속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욕구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말랑말랑하고 군침 돌게 만드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어떤 과학 기술도 복제 못 할 인간의 고유 가치이다.

 

안사와 홀라파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무력하게 운명을 맞닥뜨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피력하고 계속해서 삶을 되찾으려 시도했다. 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날아가도, 내 고용주가 마약 거래로 잡혀 가도, 커피 한 잔 마실 돈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감히 제안하건데, 우리도 누군가에게 뒤지지 않을 우리만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최소한의 투쟁을 해보자. 사랑을 하자는 말이다. 인생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순간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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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


 

해당 영화는 시사회를 진행할 때 주한 핀란드 대사관의 대사님이 직접 오셔서 영화를 홍보하셨다. 각별한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축사 중, 핀란드가 가지고 있는 ‘조용한 행복’이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다.

 

그는 덧붙여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지루한 일상도 사랑하는 것을 느껴보라고 말했다. 많은 걸 가지고도 자살율 1위인 국가와, 많은 걸 비웠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간의 차이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영화를 감상한 지금부터는 메말라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도 촉촉한 사랑이 내리길, 끊어지지 않는 질긴 인연이 찾아오길 바란다. 말해주고 싶은 것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려면 아무도 없는 순간을 지나야 하니, 포기하지 말라.

 

떨어지는 이파리가 서로 손잡고 춤추며 땅으로 내려올 때의 그 고요한 침묵과 생생한 행복은, 모두에게나 언제든 열려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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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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