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탐욕의 그늘과 복수의 역설, 몰타의 유대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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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혐오, 복수와 탐욕, 난무하는 배신과 배덕을 매력적으로 연기한 연극이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연극 <몰타의 유대인>은, 16세기의 몰타와 주변국을 배경으로 욕심에서 파생된 전쟁과 파멸을 그린다.
작품의 주인공 바라바스는 유대인 상인으로, 엄청난 부를 소유한 인물이다. 몰타의 지도층은 그녀가 가진 막대한 재산에 눈독을 들여, 몰타가 튀르키예(오스만 제국)에 조공금을 바치게 하기 위해 그녀의 전 재산을 몰수하기로 한다. 이에 분노한 바라바스는 몰타의 지배층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끝없는 복수를 결심한다.
자신의 딸 아비게일을 이용해 몰수된 재산을 되찾아 영원한 복수와 행복을 꿈꿨지만, 아비게일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또한 도모한 그녀의 야욕으로 그들의 관계는 틀어졌고,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고 느낀 바라바스는 아비게일과 그녀가 머물고 있던 수녀원의 모든 사람들까지 독살시키고 만다. 결국 그녀는 치열한 정치적 공방을 펼치고 있던 몰타의 지도층과 튀르키예 군대 사이에서 음모를 벌이며 마지막 계획을 세운다.
“가려진 위선보다 당당한 거짓말이 낫잖아?”
극 중 바라바스는 이렇게 말한다. 대사를 들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숨겨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대놓고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불쑥 머리를 스쳤다.
흐려지는 가치 판단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점은 바라바스를 비난해야 마땅하다고 느끼면서도, 문득 그를 은근히 동정하고, 응원하는 나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인간의 탐욕이 이끄는 파멸의 길을 지켜보면서도, 그 길이 우리 모두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누군가 "남의 돈을 빼앗는 건 옳지 않다."라고 외치는 동안에도, ‘돈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새 자본주의의 둔탁한 둔기에 맞아 인간의 존엄성이 내팽개쳐지는 모습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몰타의 유대인> 속 바라바스가 르네상스 시기 그토록 인기 있었던 이유는,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당시 기독교적인 이념에 맞춘 헌신과 성인, 겸손의 미덕과는 반대로 탐욕과 물질, 일렁이는 혐오와 차별로 이끌어지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야기와 도서가 만들어지고 연극과 공연이 세워진 이유는 이상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해당 인물을 마음껏 미워하고, 곱씹으며 비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과연 현대인들은 바라바스를 비난할 수 있는가? 이들의 이상은 바라바스의 반대에 서 있는가? 그녀가 목 놓아 그리워하고 애탄 ’나의 보물, 나의 평화, 나의 기쁨‘은 무엇으로 반짝이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력을 학습한 채로, 심화한 자본주의의 무게에 더욱 짓눌리고 있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가장 어두운 측면만을 계속 답습하고 있다"는 탄식이 공공연히 들릴 정도로, 부의 불균형과 사회적 양극화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만, 부를 향한 욕망 때문에 우리의 가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상실되는 것이 무엇일지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우리는 떠오르는 것들의 무서움을 본다
신분 제도는 서서히 사라져가지만, 자본을 통해 새롭게 떠오르는 사회적 계층, 즉 ‘신흥 귀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바라바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만, 그가 가진 재산 덕에 이중적 대우를 받았고, 이는 오늘날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도덕적 결함은 감춰지고, 세상은 다시금 그를 필요한 도구로서 취급한다.
결국 모든 것이 언젠간 무너지고, 또 다른 것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우리를 겨냥하는 황금빛 유혹은 마치 풍선같이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고, 그 위에 서 있는 우리 또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운명을 지닌 채 살고 있다. 돈이 인간의 관계를 재단하고, 사회의 구조를 뒤틀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력한 방관자가 되어간다. 자본은 더 이상 성취의 상징이 아니며, 마치 우리가 서 있는 세상의 기초를 무너뜨리려 드는 지진 같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문제들이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담론이 현시대에 절실히 필요하지 않은가.
부자와 부자 연습생,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
우리 세계에는 부자와 부자 연습생이 존재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부는 세습되어야 하고 부를 얻는 방법은 공유되어야 한다. 부는 학습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나도 부를 원하고, 당신도 부를 원하고, 모두가 부를 원하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해당 전제를 바탕으로, 피곤하고 지겨운 사이클에서 모두가 한 발짝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아 쳇바퀴를 달리고 있다.
부는 그 자체로 매력적일 수 있지만, 세상은 부유함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는 돈 그 자체가 아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른 요소들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밝힐 힘이 되어주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 번쯤은 쳇바퀴 속을 벗어나 눈을 돌려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부를 쫓아 이를 얻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웃고, 나누고, 사랑하는 그 과정에서 행복과 성공을 경험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돈을 얻기 위한 여정이 당신에게 일종의 싸움이라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존엄성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마음껏 할퀴어진 서로를 보듬어 위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일 테다.
[김하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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