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복되는 하루가 알려준 것 - 영화 '세이 예스 어게인'

글 입력 2023.10.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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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드라마 <상견니>의 대성공 이후 대만의 청춘 로맨스 장르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듯하다. <세이 예스 어게인>은 그런 바람을 타고 들어온 영화다. 채범희가 남자주인공 '루크'를, 곽서요가 루크의 연인 '샤오차이'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설레는 얼굴로 마주보는 포스터를 보며, 어렵지 않게 한 편의 로맨스 판타지 영화를 상상할 수 있었다.


로맨스, 특히 청춘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로맨스는 '선의의 기만'으로 완성된다. 관객은 로맨스에서까지 현실의 갈등이나 어려움을 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낭만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현실적이다. 죽음 같은 비장한 역경을 겪거나 감정적인 문제로 헤어질지언정 결혼을 위해 각자 얼마씩 부담할지 싸우거나 외적인 조건을 두고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인 로맨스란 아름다운 남녀가 아름답게 사랑하거나 이별하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세이 예스 어게인>은 충실하게 로맨스의 길을 걸어가는 영화다.


주인공인 루크는 훤칠한 외모의 수상스키 강사다. 어느날 일면식도 없는 샤오차이와 우연히 입술을 맞대는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사건으로 그녀와 연인이 된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소소하면서도 낭만적인 장면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만난 지 6년째가 되었을 무렵, 이들에게는 로맨스의 주인공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연스러운 미션이 주어진다. 바로 결혼이다.


루크도 이제 남은 건 결혼뿐임을 잘 알고 있기에,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큰 스케일의 깜짝 프로포즈를 준비한다. 이것은 별탈없이 6년을 사귄 커플이 자연스레 맞이하는 일종의 정해진 각본이다. 하지만 프로포즈 시간이 다가오고, 루크가 설레는 마음으로 건넨 반지케이스를 샤오차이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닫아버린다. 그 순간 루크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눈을 뜨자 프로포즈를 하는 날 아침으로 돌아가 있다. 이때부터 루크의 끝나지 않는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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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법을 쓰든 반복되는 하루의 끝은 프로포즈 거절이다. 심지어 프로포즈를 아예 하지 않자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다. 루크는 당황스럽다. 큰 문제 없이 지나온 것 같은 지난 6년이 왜 이런 식으로 끝나야 하는가. 그래서 원인이 될 법한 것들을 찾아 헤맨다. 샤오차이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닌지, 큰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하지만 거절의 이유를 찾다가 발견한 건 샤오차이가 아닌 루크 자신의 마음이다.


앞서 봤던 루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는 분명 샤오차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루크에게 이 결혼은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숙제같은 것이었다. 프로포즈 당일에도 게으름을 피우고 매사에 장난스레 임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분명 형식적으로는 완벽한 프로포즈였지만, 거기에 왜 샤오차이여야만 하는지, 왜 이 결혼을 해야 하는지 루크의 진실된 마음은 빠져 있었다. 샤오차이가 임신을 했고, 자신을 믿음직스러운 남편/아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는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본다.


이제부터 루크는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프로포즈 승낙을 받는 데 급급해하는 대신, 결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제 반복되는 하루는 축복이다. 이 하루를 이용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던 반복되는 하루가 드디어 그 의미를 찾는다. 루크는 남들이 다 해서 하는 결혼, 때가 되어서 하는 프로포즈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프로포즈를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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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루크의 노력이 뭉클하고 귀엽게 느껴지는 건 이 영화가 앞서 말한 '선의의 기만'에 충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관객은 임신을 한 샤오차이의 입장은 전혀 알 수 없다. 임신 사실조차 샤오차이의 친구로부터 전해진다. 루크는 영화 내내 샤오차이와 터놓고 임신 이야기를 하는 대신 좋은 아빠와 남편이 되기 위한 '혼자만의 수련'에 집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의문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루크가 샤오차이와 깊은 대화를 시작했다면 영화의 장르가 바뀌었을 것이다. 샤오차이가 루크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엄마도 아내도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영화는 어디로 흘러갈까?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었을 뿐, 영화는 로맨스의 길을 착실히 걸어간다. 반복되는 하루가 쌓여갈수록 루크는 몰라보게 달라진다. 친구의 전화에 잠을 깨는 대신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 정리부터 하고, 엄마에게도 더 다정한 아들이 된다. 임신과 육아에 관해 공부하고 기타 연습도 한다. 루크는 달라진 모습으로 마지막 프로포즈를 하고, 샤오차이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가 끝난다.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잠이 든다.


이대로 해피엔딩은 어딘가 찜찜하고 허전하다고 생각할 즈음, 영화는 다시 한번 반전을 선보인다.반전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분명한 사실은 현실에서 반복되는 하루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변하고 싶다면 오늘부터 시작해야 하고, 할 말이 있다면 오늘 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우리에겐 오늘 하루뿐이라는 이야기를 영화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래도 로맨스로 시작한 영화는 로맨스로 마무리된다. 행복한 결말이 로맨스의 필수 조건은 아니므로.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모든 걸 밝히고 나서도 두 사람을 슬프게 할지언정 추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관객은 절절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와, 현실에서 하나뿐인 우리의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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