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방을 탈출하는 나의 이야기 [게임]

이야기를 안은 방탈출
글 입력 2023.08.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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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떠나는 용사, 우주를 탐험하며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우주비행사, 수상한 마을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형사...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일 법한 설정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제법 비현실적이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이미 너무 많은 매체에서 이들을 다뤘고, 수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또 변형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 이 순간부터 모든 설정에는 다시 한번 생기가 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소설 속으로 들어갈 수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


간단하다. 지금 바로 강남이나 홍대로 발길을 옮겨 '방탈출'을 하러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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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출'은 말 그대로 어떠한 공간에 들어간 후 그 공간을 탈출하는 일종의 게임이다. 주어진 문제를 풀어 자물쇠를 하나하나 열어 가며 시간 내에 공간에서 탈출하면 '성공', 시간 내에 나오지 못하면 '실패'로 그 룰도 단순하다.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게임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고, 인기 있는 방탈출 테마는 치열한 예약 경쟁을 뚫어야만 해서 '방켓팅'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단순한 미니 게임일 수도 있는 방탈출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야기'의 존재다. 직원의 손에 이끌려 눈을 감고 방 안으로 들어가면, 직원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OOO가 되어 OOO를 진행하시게 됩니다." 그 순간,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문제 하나하나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단서가 되고, 문제를 풀어나가다 보면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며, 탈출과 함께 이야기의 결말을 보게 된다.


영화, 소설 속의 이야기는 '객체'로서 나와 한 발짝, 아니 더 멀리 떨어진 상황을 감상하는 것이라면, 방탈출에서는 게이머가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 직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우주비행사는 이제 여상스러운 설정이지만, 내가 우주비행사가 된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우주선에 들어가서 문제를 풀며 장치를 작동시키고, 또 다른 행성(방)에 내려 모험을 진행한다. 이런 환경에서, 다양한 미디어에서 이미 다루어졌던 설정들은 다시금 특별해진다.


게다가 테마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지가 그 테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제작자들은 정교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소품 등을 통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리고 현장의 직원은 게임을 끝낸 게이머에게 이야기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이야기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방탈출의 메인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 지점에서 방탈출의 각 테마는 개별적인 '작품'이 된다. 물론 여러 문제를 풀면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인 목적이겠지만,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게이머들이 원하게 되면서, 그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야기가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일부 방탈출 테마는 '이야기'의 퀄리티를 가장 중점적으로 홍보하며, 그것이 게이머들에게 어필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완벽한 멀티 엔터테인먼트의 탄생이다.


신선한 연출, 신기한 장치 모두 방탈출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게이머들을 방탈출에 몰입시키는 것은 이야기 자체의 힘일 것이다. 매니아 층이 두터워지면서 더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요소로서도 이야기만한 것이 없다. 연출과 장치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야기에는 한계가 없음이 그 이유다.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런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기회는 더욱 희귀하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방탈출에 매료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아직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방탈출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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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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