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 콘텐츠, 이제는 홀로서기에 도전할 때 [문화 전반]

‘망한 대작’을 만들지 않으려면
글 입력 2023.05.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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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K-콘텐츠의 시대다. 글로벌 공룡 OTT인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서 가능성을 봤다며 3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고, 세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가 최고급 상을 받는 일도 이제는 놀랍지 않다. 넷플릭스의 역대 콘텐츠 시청시간 1위는 아직도 <오징어 게임>이며, 리메이크를 위해 한국의 원작 IP를 사가는 나라들도 많아졌다. 콘텐츠에 있어 이만큼의 국제적 위상을 가진 다른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부자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그 정도로 완벽해 마지않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화려한 타이틀이 국가에 가져다주는 이득만을 생각한다면 K-콘텐츠는 더없이 값진 자산일 테지만, 콘텐츠로서의 완성도가 그 타이틀과 비례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의구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성과 뒤에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한국 방송영화 콘텐츠 산업의 암(暗)을 살펴본다.

 

 

 

수백억을 들여놓고 고작 이런 결말이라니


 

2020년대로 들어서면서, ‘결말 논란’이라는 단어는 한국 드라마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됐다. 이슈몰이를 한 한국 드라마들 중,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결말을 내놓은 드라마가 그렇지 못한 드라마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당장 2022년 이후의 드라마로만 한정하더라도 <빅마우스>, <일타스캔들>, <재벌집 막내아들>, <카지노> 등에서 원성이 터져나왔다. 심지어 이들 대부분의 초반부에 대한 평가가 호평 일색이었다는 점은, 더욱 아쉬움을 더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클립 댓글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이 보이곤 한다. “제발 결말 좀 제대로 내달라”고. ‘과몰입’해서 본 콘텐츠의 결말에 남는 게 허망함뿐이라면,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한국 드라마에 열광해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말이 이상하게 날까 봐 콘텐츠에 애착을 붙이기도 어려워진 상황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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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엔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투입됨을 알기에, 이 모든 게 누구 한 명의 책임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실패로부터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 한국 드라마는 투입하는 제작비에 비해 각본 검수에 지나치게 게으르다는 것.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 중 배우의 캐스팅, CG나 미술 등 주로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는 분야에서 부족함이 두드러졌던 작품은 없었다. 문제는 오직 각본이었다. 그 많은 대중들이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다고 평가하는 결말이니, 각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조언해줄 몇 명만 있었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됐던 것 같다. 수백억의 제작비와 수백 명의 스태프를 들여 놓고, 각본 하나 때문에 ‘볼 가치가 없는 작품’으로 격하되는 모습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힘겨루기만 하다 스토리는 뒷전


 

결말만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OTT가 바꿔놓은 한국 방송의 생태계에는, 그보다도 더 납득하기 어려운 형태의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신선한 망작’이다. 괴수나 좀비, 우주, 디스토피아처럼 신선한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까 보면 스토리는 총체적 난국인 콘텐츠들 말이다. 영화도 많지만 드라마로 한정하자면 <보건교사 안은영>,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방과 후 전쟁활동>, <택배기사> 정도가 있겠다.

 

‘기획’ 단계에서 이 작품들의 IP는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을 테다. 하나같이 팬덤층이 두터운 원작을 가지고 있고, 세계관도 신선하고, 도전적인 CG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가. 그러나 막상 OTT에 공개되고 나서 이들은 신랄한 혹평을 면치 못했다. ‘한국형 OO물’이 되려는 의욕은 요란했으나, 정작 결과물은 부실한 이야기들로 점철된 시간 아까운 콘텐츠로 낙인찍힐 뿐이었다. 하물며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그야, 나쁜 짓을 할 거잖아”는 가히 2022년 최악의 드라마 대사로 기억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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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방송사에서 만든 드라마는 ‘윗선의 개입’ 같은 핑계라도 댈 수 있겠지만, 넷플릭스 등 OTT는 창작자의 자유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걸로 유명하다. 결국 이 콘텐츠들의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와 감독에게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스케일이 크다는 이점이 작품의 수많은 결점을 덮어줄 것이라는 안이한 착각을, 이제는 버려야만 한다. OTT로의 유입을 유도할 대작 ‘킬링 콘텐츠’를 만들겠답시고 개연성과 원작의 매력까지 죽여 버리면 안 될 일이다.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기로 유명한 픽사에서는, 시나리오가 구상되기 시작하면 모든 직원들이 복도에 자신만의 스토리보드를 스케치해 붙인다고 한다. 픽사의 명작들은 그렇게 생겨난 각자의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치열하게 합치면서 만들어졌다. 이런 일화를 듣고 나서 고민 없이 짜여진 흔적이 묻어나는 몇몇 한국 대작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은 부끄러움까지 들곤 한다. 제작 여건상 픽사의 정신을 그대로 따라갈 순 없더라도, ‘모든 장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라는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한 노력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관객은 변했는데, 영화는 그대로


 

문제에 직면한 것이 비단 드라마뿐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영화계의 문제는 일단 흥행이라도 잘 되는 드라마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한 해가 벌써 절반 가까이 지나갔는데도, 2023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 실패를 마냥 외면할 순 없는 건,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차례로 국내 개봉 일본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티켓값이 아무리 비싸도, 재밌는 영화는 알아서 찾아본다는 뜻이다.

 

이와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는 흐름으로는 ‘속편 전성시대’가 있다. 2022년 한국에서 개봉한 상위 10개 영화 중 8편은 속편이었다. 기왕 비싼 값 주고 가는 영화관이라면 ‘검증된 재미’, ‘아는 맛’이 중요하다는 거다. 게다가 <아바타: 물의 길>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오히려 비싼 특별관의 인기가 일반관보다 높았음을 고려한다면, 이제 관객들이 영화관에 요구하는 것은 OTT를 넘어선 ‘특별한 체험’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마주하는 한국 영화들의 태도는 어땠는가? 2022년에 가장 주목받은 실패작을 꼽으라면 단연 <외계+인 1부>와 <비상선언>이다. 초호화 배우진, 검증된 감독, 수백억의 제작비까지, 이 영화들이 실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극장에 올라가자 전자는 어설프게 외국 영화들을 따라한 듯한 조잡한 스토리라인으로, 후자는 질릴 대로 질린 한국형 신파와 억지스러운 교훈 주입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그러니까, ‘이름값’은 이제 영화의 흥행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돌고 돌아 결국 ‘재미’ 외에는 믿을 구석이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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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콘텐츠의 성과는 우리 모두의 것이면서,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만의 독특한 정서와 수준 높은 스태프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맞지만, 동시에 콘텐츠의 성공에 대한 결정적인 공은 감독 개개인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나 자본주의의 씁쓸함을 다뤄온 봉준호 감독이었기에 <기생충>을 만들 수 있었고, 언제나 잔인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납득시켜 온 박찬욱 감독이었기에 <헤어질 결심>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거장들을 필두로 한국 영화계가 힘겹게 일궈낸 성과의 열매를, 혁신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낼름 삼키려고만 한다면 외려 독배가 될 것임을 말하고 싶다.

 

 

 

‘콘텐츠’이기 전에 ‘이야기’


 

‘망한 대작’의 연쇄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한국 콘텐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했던 그때의 치열함을,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많은 제작비를 쏟아붓더라도, ‘이 정도 스토리면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는 이제 그 어떤 관객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고언은 콘텐츠에 몰입하고 싶어하는 우리 관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텐츠로 수익을 내야만 하는 제작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K-콘텐츠의 힘은 언제나 이야기로부터 나왔다.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 <기생충>에서는 세계인들의 마음에 깊숙이 배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이, <헤어질 결심>에서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청록빛 미결의 사랑이, <오징어 게임>에서는 오락성 넘치는 설정과 빠른 호흡의 몰입감이 사람들을 매료시킨 동력이었다. 이 콘텐츠들은 연출도 촬영도 미술도 훌륭하지만, 그에 앞서 관객들을 사로잡을 잘 짜여진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대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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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디 한국 콘텐츠가 영상에 들이는 노력만큼, 서사에도 고심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영상물은 종합예술로서의 ‘콘텐츠’이기 이전에, 누군가 끄적인 글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바꿔 말하면, 이야기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을 때 콘텐츠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그 어떤 화려한 타이틀에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설 수 있는 이야기를 위한 처절한 노력이야말로, 한국 콘텐츠의 질적인 전성기를 다시금 이끌어낼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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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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