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상 멋진 부부로부터 온 초대장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글 입력 2023.03.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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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봄이라기엔 다소 쌀쌀한 어느 날. 오랜만에 전시회 나들이를 다녀왔다. 전시가 개최되고 바로 다음 날이어서 그런지 매표소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나의 기대감 역시 고조되었다. 전시회를 다 보고 온 지금, 그래서 기대만큼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쩌면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할지도 모르겠다. 작품보다 기억에 남는 한 부부가 있었다고 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은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된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전시이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쾰른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 피카소, 달리를 비롯해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 등의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세 번째 규모의 피카소 컬렉션과 세계 최고 수준의 팝아트 컬렉션은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예술 사조와 거장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부터 러시안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격변의 시대에서 태동한 예술운동의 배경과 서양 미술사의 발자취를 그려내고, 이에 영향을 받은 현 세기의 독일 예술도 조망한다.

 

하지만 역시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등 소위 말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전시명에도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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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도착한 전시장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다름 아닌 모딜리아니의 그림이었다.

 

작품 명이 '모로코 여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유의 긴 얼굴과 목만으로도 모딜리아니의 그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부분은 그림의 테두리였다.

 

그림의 테두리를 검은 물감으로 강조해두었는데, 전반적으로 어두운 채색의 그림에 윤곽을 불어넣어 주면서 그림의 입체감이 살아나는 것이, 실제 사람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자아냈다. 한참을 그림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빠져 그림 앞을 서성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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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그림도 흥미로웠다. 액션페인팅의 선구자인 폴록의 그림이 항상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말로만 듣던 액션페인팅의 결과물을 실제로 보니, 확실히 생동감이 남달랐다.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물감들의 파편이 우연적으로 만들어낸 흔적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한 번쯤 두 눈으로 경험해 봄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전쟁 이후를 그린 그림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려낸 그림들이 뇌리에 박혔다. 전쟁의 기억은 나라를, 그리고 시대를 불문하고 막강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 전쟁의 참혹한 현장, 그리고 전쟁 이후의 공허를 그려낸 그림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충분히 슬펐다. 그저 그림에 눈을 맞췄을 뿐인데, 그림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

 

미술관 소장품들을 가지고 구성한 전시인 만큼,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가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공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전시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의 분명한 특이점이라 생각한다. 다만 큐레이션 구성이 다소 복잡해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예술 사조보다는 작품의 주제에 따른 방식을 채택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끝으로,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이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루드비히 부부를 소개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사업으로 큰 부를 이룬 후 적극적으로 현대 미술품을 수집했다는 두 사람. 더욱 대단한 것은 그렇게 어렵게 수집한 작품들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미술품 수집을 투자 또는 투기의 용도로 생각한 적 없다는 말에서 진정 미술품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미술품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기꺼이 대중들과 공유하기로 선택한 부부의 결심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내가 앞서 작품보다 부부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이유이다.

 

세상 멋진 부부 덕분에 이 귀한 미술품들을 한자리에서, 실물로 만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 말할 수밖에. 전시장을 나서며 나 또한 부를 일군다면, 그 부를 후세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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