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름다운 슈미, 죽다 - 연극 '슈미'

권총 두자루에 얽힌 두 죽음은 아름다웠을까?
글 입력 2023.03.20 11: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슈미 포스터.jpg

 

 

슈미, 포스터에서부터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던 그녀에게서 처음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딘가 처연해 보이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모순적인 표정의 그녀는 포스터 속에서 세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정면이 아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는 세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쩐지 그 속에 갇힌 듯 보이는 슈미는 날개가 꺾인 새장 속 카나리아 같았달까


133년 전 사회로부터 고립된 여성의 삶을 살았지만 그에 반하는 과감한 선택으로 세상에 도전했던 고전 [헤다 가블러]의 이야기를 2023년 현재의 무대 위로 불러오면서 연극 [슈미]는 '완전한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비롯되는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 그 성립되기 어려운 과제 속에서 출렁이던 슈미가 결국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 처럼 보였던 '죽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삶의 이유를 종결 짓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 스스로 아름다워


 

슈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감에 찬 표정, 당연한 듯 남편 경만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을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매력을 넘어 절대적 '신'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움, 그것은 슈미의 주위를 마치 띠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그녀를 이토록 신비롭게 만들고, 모두가 그녀의 말에 따르지 못해 안달이 나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극이 절정을 향해 치달을 수록 슈미를 둘러싸고 있던 그 아름다움은 점차 색을 잃어가는 듯 했다. 슈미는 지나칠 정도로, 그러니까 촌스러울 정도로 매사에 진지했다. 슈미의 주변 인물들, 경만, 도규, 애경, 심지어 유완까지도 점차 그녀의 장난끼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실행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완과 애경이 함께 완성한 그들의 '아기'와도 같은 소설의 녹음 테잎을 갈아 없애 버린다던가,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권총 두 자루를 머리에 겨누는 행동들의 그 예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슈미는 고립되어 있다. 그녀의 매사에 권태롭고 자조적인 태도, 주인공이라는 위치에 무색하게 주변 인물들을 한발짝 뒤에서 그저 관조하는 모습들은 이런 따분한 세상 속에서 아름다울 의지를 잃은 듯 해 보인다. 어쩌면 슈미는 너무 지친 나머지 그런 세상과 타협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경만과의 결혼도 그러한 타협의 결과물 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새장 과 같은 거실 속에 갇힌 그녀는 매사가 따분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과거 정신적 동지였던 유완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어느새부턴가 미덕이 아니게 된 자기 긍정, 슈미를 보며 내심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던 이유는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 자기 긍정과 멀어져 그 대척점에 있는 부정과 가까워 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아름답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을 슈미의 변화로부터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앎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척박하다.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


 

유완을 시험해보던 슈미의 행동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만처럼 반응할 것이다. 알콜중독자였던 유완에게 술을 권하고, 그를 유혹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슈미는 급기야 유완이 애써 완성한 소설의 결과물을 없애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 초반 무엇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던 슈미는 이런 행동을 하며 가장 즐겁고 활기차 보인다. 


어쩌면 그녀는 유완의 파멸을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동지였던 유완이 어떠한 유혹 속에서도 당당히 그것을 즐기면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녀가 그토록 집착했던 '디오니소스의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장식하고 아폴론처럼 아름답게' 돌아올 유완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철학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언뜻 물과 기름처럼 느껴지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두 가지 명재는 슈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으로 가기 위한 길인 듯 하다. 사실 그 누구라도 책임보다는 자유를 택하고 싶어할 것이다. 황홀한 해방감을 주는 자유와 달리 책임은 무겁고 지켜내기 힘들다. 그러나 자유를 택하고자 한다면 그로부터 파생된 책임을 모른척 할 수는 없는 것, 슈미는 그렇기에 유완을 통해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질 수 있음을, 그것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모습임을 증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왜 죽는가에서 이어진 왜 사는가


 

그러나 유완의 죽음은 아름답지 못했다. 슈미는 자신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권총까지 동원하였지만 아름다움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권총 한 자루를 통해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촌스럽게도 진지한 슈미는 유완이 이루지 못했던 '아름다운 죽음'을 자신이 지고자 한다. 그렇게 암전 후 총성이 울리고, 극은 막을 내렸다. 


'그래서 도대체 왜 죽었는데?'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결말을 마주하고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슈미의 죽음은 언뜻 충동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솔직히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녀에게 '아름다움'의 철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생을 끝내면서까지 증명해내려고 했던 걸까? 죽음이란 결국 아름다움을 더이상 추구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끝'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점들은 공연장을 나선 후, 프로그램북을 찬찬히 다시 읽으며 조금쯤 정리가 되었던 듯 하다. 하수민 연출은 슈미를 대표하는 '긍정'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반대되는 '부정'과 '삶(생명)'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죽음은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에 '왜 죽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슈미에게는 더이상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완을 통한 아름다움의 시험이 끝나고,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을 부정하는 세상 속에 갇혀 지루한 일상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심지어 권총을 출처를 두고 슈미를 협박하면서 좌지우지 하고자 하는 도규로 인해 그녀의 앞으로의 삶은 더더욱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그렇기에 책임질 것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슈미는 그런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마지막 책임'을 지고 삶을 끝내는 것이 아름다움을 증명할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사실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답변을 내지 못한 채 그것을 회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왜 사는가?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라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연극 [슈미]를 통해 그동안 마주하기 어려웠던 주제에 대해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답을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 책임을 지는 삶에 대한 고찰, 스스로 아름답기 위한 노력들은 삶의 본질을 이루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 없이 마주하고자 했을때 비로서 우리는 세상 속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