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끔따끔 피어나는 다정한 세상! (2) [드라마/예능]

<나의 첫 심부름>과 <만달로리안>에 교집합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글 입력 2023.01.03 14: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Opinion] 따끔따끔 피어나는 다정한 세상! (1)"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따끔따끔 피어나지!



[크기변환]Ypcn66vg893sVHLk5a4k9b.jpeg

 
 

(오타쿠의 욕망을 간신히 거세하고,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사족 없이) <만달로리안>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해 보자면, 만달로어인-스타워즈 세계관 속 유명한 전투집단-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고독한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이 포획 대상이었던 아이 그로구에게 감겨 기꺼이 다정해지기를 선택하는 뽀짝무구한 육아물이자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명성이 높은 그는 어느 날 신원미상의 어떤 이(50세)를 생포(혹은 그 과정에서 사망한다면 증거를 가져오는)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포획 대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딘 자린은 현상금 드로이드 IG-11와 조력하여 그 대상을 발견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하게 된 건 포대기에 싸인 조그마한 아이(그로구, 50세)다. 자신의 예상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포획 대상에 놀라기도 잠시, 현상금 드로이드 IG-11이 아이를 사살하려 한다.

 

 

[크기변환]Mandalorian-meets-Grogu-on-Arvala-7-740x416.png

 

 

딘 자린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에게 총구를 겨눈 IG-11의 머리를 날린다. 어쨌거나 아이를 살려서 의뢰인에게 데려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의뢰인에게 돌아가는 과정 또한 녹록지 않다. 아이를 뒤쫓는 강도들을 상대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자와족-스타워즈 세계관 속 고물상 같은 존재-에게 자가용 우주선을 털린 후 부품들을 되찾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한다. 이때 그로구의 알 수 없는 능력(포스)으로 목숨을 건지고, 딘 자린과 그로구 사이에 미묘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딘 자린은 의뢰인에게 그로구를 데려가 엄청난 보상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조그마한 아이가 눈에 걸린다. 전쟁고아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그는 이례적으로 의뢰인과 현상금 사냥 길드장에게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묻지만, (이는 현상금 사냥 길드의 규칙에 위반된다.) 돌아오는 답은 없다. 모든 걸 잊고 다음 의뢰를 받아 떠나려 하지만 우주선에 옅게 남아있던 아이의 흔적을 발견하고서, 종국에는 아이를 구출한다. 그렇게 <만달로리안>의 이야기-육아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에 딘 자린은 그저 아이를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게만 돕고 떠나려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이를 뒤쫓는 잔당이 등장하고, 그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 은하계를 누비게 된다. 아이의 동족, 혹은 적절한 양육자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딘 자린은 점점 변한다. 그의 메말랐던 감정이 채워지며,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절대로 믿지 않았던 드로이드의 도움을 받고, 자신이 속한 만달로어인 집단-딘 자린이 속한 집단은 주류 집단이 아니라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는 집단임.-의 계율 '진정한 만달로어인은 헬맷을 벗지 않음'을 깨기까지 한다.


이러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 건 딘 자린이 그로구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딘 자린은 전쟁고아였다.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을을 전멸시킨 드로이드에 의해 사살당하려는 찰나, 한 만달로어인에 의해 구출되고 파운들링-만달로어 태생이 아닌 고아. 만달로어인의 계율에 따라 이들은 나이가 차거나 자기 종족에게 돌아갈 때까지 만달로어인에 의해 돌보아지며, 만달로어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으로서 살게 된다.


그로구 또한 전쟁에 휘말려, (그의 능력을 탐내는 어둠의 세력을 피해) 홀로 외롭게 숨어서 살아남았다. 그러다가 딘 자린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로구 또한 드로이드에 의해 사살당하려는 찰나 딘 자린에 의해 구해진다. 그렇게 딘 자린은 자신을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기로 선택한다. 함께 은하계를 유영하는 과정에서 그로구는 딘 자린을 종종 곤경에 빠트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딘 자린은 그로구를 버리고 다시 고독한 총잡이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둘은 서로를 가족으로 선택했으며, 서로를 돌보는 존재로 이어져 돈독한 유대와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시즌1 피날레에서 그로구는 정식으로 딘 자린의 파운들링이 된다.)

 

 

[크기변환]31hu9u6m66661.jpg

 

 

스타워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서사는 언제나 '부모와 자식'이었던 것 같다. 아마 <만달로리안>도 동일한 방식으로, '부모 되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딘 자린과 그로구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만달로리안>을 '어른 되는' 이야기로 읽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건, 딘 자린이 처음부터 완성된 '다정한 어른', '따뜻한 어른'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만달로리안>에는 <나의 첫 심부름>처럼 완성된 '다정한 어른', '따뜻한 어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로구의 강력한 능력-포스-과 상관없이 그로구를 아이로서 대하고 보살피는 어른들 말이다.)


처음 딘 자린의 모습은 서부극에 흔히 등장하는 고독한 총잡이다. 하지만 <만달로리안>은 고독한 총잡이의 환상(판타지)을 유지하고 강화하지 않는다. 딘 자린의 '고독한 총잡이'라는 설정은 그가 그로구와 만난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다. 앞서 딘 자린이 점점 변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성장'이기도 하다. 고독한 존재에서 벗어나 다정함을 받고, 또 건넬 수 있는 어른으로의 성장 말이다. (그리고 이 다정한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 시즌3을 그 누구보다도 기다리게 만든다. '다정한 세상이 따끔따끔 피어난다'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딘 자린이 그로구에게 보여준 다정함은 태생적이라기보다는 선택적이고, 선택의 이유(동기)는 딘 자린이 그로구에게서 자신과의 어떤 닮음 혹은 이어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사를 차지한 주인공들의 '운명'이라는 말로 둘을 묶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 딘 자린에게 그로구는 '예상치 못한 프레임 밖의 존재'였을 거다. 신원미상 50세의 현상금을 노리고 갔는데, 웬 아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딘 자린이 그로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발견했더라도 아이에게 다정해지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여전히 딘 자린은 고독한 총잡이로 남았을 거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로구는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거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의 프레임 밖에 있던 존재들이 보여주는 (선택된) 선의와 다정의 힘은 어떠한가? 그 힘은 현상금 사냥꾼과 포획 대상처럼 가장 큰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 같은 프레임 안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동력이 된다. 동시에 우리가 <나의 첫 심부름>에서 소타를 위해 사과를 구해낸 어른에게 감동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프레임 밖에서 나타난 어른 A는 왜 (그에게 낯선 어린이인) 소타에게 사과를 건네주고 홀연히 사라졌을까? 그건 아마도, 그 어른도 소타를 보며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곤란이나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떠올렸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어른 A는 기꺼이 (자신과 전혀 무관한 존재인, 하지만 실낱같은 이어짐이 있는) 소타에게 사과를 주워주길 선택했다. 나는 어린이에게 다정한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자신의 프레임 밖 존재(이지만 언제든 서로의 프레임에 머무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에게서 자신을 떠올리는 것, 그렇기에 기꺼이 다정해짐을 선택하는 것.


 

 

Be kind!



[크기변환]KakaoTalk_20221230_000503877_02.png

 

 

맨 처음에 말했듯, 우리 개개인이 그려낸 자신만의 경계선은 자의적이다. 접점이 있든 없든 문득, 불쑥, 예기치 않게, 어떤 방식으로든 어린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그저 차를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한 아이의 사과가 차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다거나.) 대학 시절, 학교 근처 다이소에서 한창 쇼핑을 하고 있는데 엄마와 같이 온 한 어린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 적이 있다. 왜 그러나 싶어서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니, 그 자그만 손으로 옆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영차 여는 것이다. 그러더니 자신의 가방 안에 소중히 지니고 다니던 사탕-미니 츄파츕스였다.- 하나를 내게 건넸다. 아이의 엄마와 나는 동시에 빵 터졌고, 덕분에 몽글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 공간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애는 왜 나에게 사탕을 건네었을까? 나도 저랬나?

     

대화 소리보다 노트북 타자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대학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앞으로 "아빠 빨리 와!"를 외치며 뛰어가는 한 어린이가 지나간다.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보다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바닥 위에서 뛰는 아이가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고 아이의 신난 발걸음을 눈으로 좇길 선택해 본다. (어린 시절 박물관 특유의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돌다가 넘어진 전적이 있으므로.. 제주도 테디베어뮤지엄에서 혼자 넘어지고 혼자 울고 혼자 극복하던 모습이 무려 영상으로 남아있다. 왜 그때 내 곁에는 다정한 어른은 없고 영상을 찍는 아빠만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떤 이어짐을 발견하기에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어른이 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지금의 어린이를 목격하고,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린다. 그 과정을 통해 실낱같은 이어짐을 느낀다. 내가 거쳐온 시간을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다정해지기를 선택하고 싶다.

 

오늘의 글에서는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에 대해서만 실컷 떠들었지만, 사실 이 선택된 다정함의 법칙은 세상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좀 더 큰 꿈에 대해서도 적어본다. "개개인의 존재가 선택한 다정함이 모여 더 크고 다양한 다정함이 피어오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정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가망 없는 희망사항인가 싶다가도, 처음부터 완성된 다정함은 없으며 오직 따끔따끔 피어오를 뿐임을 되새겨본다. 그러니 희망을 잃을 순 없다.

 

 

추신 1.

 

[크기변환]문자2.png

2020년의 어느 날, 나와 동생의 문자 中 

 

 

2020년의 어느 날, 아직 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 어쨋든 훌륭한사람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를 받은 이후 오래도록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말인데, 오늘은 조금 변형해서 마음에 꼭꼭 새겨본다. 그래, 언니가 어쨌든 다정한 사람은 되어볼게.

 

 

추신 2.

 

[크기변환]common.jpg

 

 

선택된 다정함의 힘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더 딥하게 맛볼 수 있음.

 

 

 

20201231173442_odvpzfke.jpg

 

 

[최은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