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끔따끔 피어나는 다정한 세상! (1) [드라마/예능]

<나의 첫 심부름>과 <만달로리안>에 교집합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글 입력 2023.01.0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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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문자에 다소 영혼이 없어 보이나 당시 토익 학원 숙제에 영혼을 빼앗긴 상태이었음을 감안해 달라.

 

 

스무 번이 넘는 생일을 맞이한 후, 나의 세계에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나와 '어린이'라는 존재가 그다지 큰 접점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자의적으로 그려낸 경계선 안으로 가장 자주 침입했던 이가 있다면 띠동갑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무도한 5촌 조카-편의상 동생이라고 부르겠다-다.

 

휴대폰을 산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고, 가끔은 전화까지 해서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깜찍함을 지녔다. 최선을 다해 문자와 전화에 답을 해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리의 대화에는 도통 맥락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소재 전환과, 한 치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그냥 웃겨서 'ㅋㅋㅋㅋ'를 보냈는데, 동생은 그걸 '비웃음'이라고 생각해서 사과를 요구한다거나. 그래서 한동안 동생에게 의성어 'ㅋ'을 쓰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나와 동생의 가장 큰 다름이라면 어른-어린이로 구별되는 무언가일 테다. 그래서인지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떠올림이 필요하다. 그건 나도 언젠가는 어린이였다는 떠올림이다. 그렇기에 동생과 대화를 하다 보면 늘 끝에는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나도 저랬나?" 혼자 궁금해하다가 엄마 아빠에게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본가에 유물처럼 모셔져 있는 어린 시절의 일기와 편지,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며 저 나이 때 나는 어땠는지 곰곰이 반추해보기도 한다.

물론 백 퍼센트의 온전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막연하게나마 어린 시절의 희로애락애오욕을 더듬어 보다 보면 (예를 들어, 아빠인 줄 알고 낯선 삼촌의 등짝에 달려들었다가 주변 어른들의 반응-웃음-에 그 실수를 깨달은 적이 있다. 밀려오는 수치스러움에 그 등짝의 주인이 사실 누구인지 알았던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의연한 척을 했다던가.. 이렇게 어린 시절의 강렬한 감정은 어른이 된 누구에게나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생의 행동이나 감정, 생각들을 살풋 짐작-물론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당신의 말을 직접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하게 된다.


나와 동생을 각각 구성하는 다층적이고도 어지러운 요소들 덕분에 두 사람이 가진 주파수의 대역폭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겹침이 발생하거나 혹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신기하게도 이 따끔따끔한 상호작용의 요인은, '가장 큰 다름'이라고 생각했던 '어른-어린이로 구별되는 무언가'다. 멀리서 보면 가장 큰 다름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 다름은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가장 큰 다름'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더 큰 다정함이 피어오른다고 믿는 편인데, 2022년에는 나의 이 믿음에 부합하는 콘텐츠 두 편을 만났다. 일본 리얼리티 쇼 <나의 첫 심부름>과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스타워즈의 스핀오프인 <만달로리안>이다. 두 개의 프로그램에는 모두 '어린이'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물론 어린이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지만, 유난히 내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건 <나의 첫 심부름>에서 보여지는 다정함과 그런 다정함을 피워내는 <만달로리안> 속 실천들이다.




다정한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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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얼리티 쇼 <나의 첫 심부름>은 난생처음 혼자서 심부름을 하러 가는 어린이의 모습을 담아낸다. 저마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면, 왜 이 프로그램이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았고 또 사랑받았는지 백분 이해하게 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다 다른 수고와 애틋함으로 가득한데, 모든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안전'이다.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모험의 성공을 위해서는 '안전함'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프로그램 제작진의 어떠한 개입과 준비라는 맥락에서 이를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지지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안전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모든 이들이 이를 느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어른들이 등장한다. 부모이기도, 친인척이기도, 아이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주변인이기도 한 이 어른들은 (앞서 말했듯 어린이들의 모험을 지지하는) 이 모험의 조력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중에서도 예상치 못한 프레임 밖의 존재-어쩌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존재는 <나의 첫 심부름> 8화(넷플릭스 기준)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내보인다. 해당 화의 주인공은 '소타'다. 소타는 집이 위치한 언덕을 쭉 내려가서 생선 가게에서 회를 떠 달라고 하고, 오는 길에 동생 이유식에 쓸 사과랑 분유를 사 와야 한다. 소타의 심부름을 그 누구보다 고대한 소타의 아빠는 회를 뜰 생선을 직접 잡아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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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 심부름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던 걸까. 소타의 심부름은 순탄치 않다.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리막길에서 심부름 거리를 담은 바구니의 끈이 끊어진다. 생선과 얼음이 길바닥에 나뒹군다. 어찌어찌 미끈미끈한 생선을 주워 담았지만, 끊어진 끈을 다시 동여 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게 혼자 고군분투하던 소타의 시선에 (스태프가 아닌) 풀 베는 아저씨가 맺힌다. 소타는 아저씨에게 총총 다가가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한다. "저기요, 끈을 못 묶겠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골칫덩어리이던 끈도 해결했겠다.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 보였을까?) 소타는 생선 가게로 향하던 길에서 마주친 한송이의 민들레도 야무지게 챙긴다. 그렇게 모든 과정이 순탄해 보였을 때, 다시 한번 끈이 끊어진다. 소타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생선의 꼬리가 아닌 몸통을 잡아 들어 올리고, 끈은 포기하고 바구니 자체를 들어 올린다. (뒤에서 "성장한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 내레이터의 말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다.)


생선 가게에서 회 떠오기 심부름을 성공한 소타는, 가뿐해진 몸으로 언덕을 더 내려가 과일 가게와 드럭스토어로 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심부름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울트라맨 주스 두 캔을 사기도 했고, 귤도 두 개나 더 사버렸고, 300그램이면 되는 분유도 1.6킬로나 사버리긴 했다. 짐이 예정보다 2.5킬로나 무거워진 것이다. 그래도 꼭 해야 했던 것들을 해냈으니 대견할 뿐이다. 이제 소타는 다시 언덕을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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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지고, 자욱이 깔린 안개를 넘어 언덕 절반을 올라온 시점. 잠깐 짐을 내려놓고 앉아서 쉬는 그 찰나의 순간에 사과 두 개가 통통-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길 한가운데라 위험하기 때문에 스태프가 먼저 사과를 쫓아 가는데, 다행히도 사과 하나는 길 끝에, 다른 하나는 도로 옆 꽃밭에 안착한다. 안전하게 사과 두 개를 되찾은 소타는 다시 한번 언덕을 오른다.


드디어 소타에게 심부름의 끝이 보인다. 심기일전하여 엄마와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도착하기 위해, 소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쉰다. 그러나 이 무슨 에리스-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황금 사과를 하객들 사이로 던져버린 전적이 있다.-의 농간일까? 또다시 사과 두 개가 제자리를 벗어나 도로로 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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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과가 내리막길을 따라 돌돌돌 굴러 떨어지는 돌발의 순간, 프로그램의 스태프가 아닌 '어떤' 아저씨(어른 A라고 부르겠다.)가 차에서 내려서 소타를 돕는다. 굴러 떨어진 사과를 잽싸게 주워 소타에게 건네준 어른 A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자신의 차로 돌아간다. 덕분에 소타는 이제 큰 어려움 없이 집까지 향한다. 힘차게 엄마를 부르며, 마침내 심부름을 끝낸 소타는 엄마에게 "엄마 선물이에요"라며 울트라맨 주스 한 캔과 (플라스틱 빨대에 정성스레 꽂은) 민들레 한 송이를 건넨다. 애틋함과 감동 한 스푼이 첨가된 소타의 모험은 이렇게 끝이 난다.


소타의 이야기를 비롯해 <나의 첫 심부름>의 모든 에피소드가 그렇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프로그램이 담아낸 세상이 안전하고 따뜻하기 때문일 거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철저하게 기획된 세상이라고 냉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소타에게 사과를 건네준 어른 A처럼. 프로그램과 아무 접점도 없는 어떤 어른이, 아이와 일면식도 없는 어떤 어른이, 그러니까 완전히 프레임 밖의 존재였던 어떤 어른이 기꺼이 다정해지길 선택하는 것을 보고서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그 자체가 우리 또한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데 말이다.


물론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나의 첫 심부름>이 보여주는 건 완결된 다정한 세상-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이들은, 어쨌건 완성된 '다정한 어른', '따뜻한 어른' 등으로 등장한다.-이다. "모두가 지켜봐 줄 거예요. 그러니 더 힘낼 수 있어요. 마을이 아이를 키워내고 마을이 아이를 지켜 줍니다." (<나의 첫 심부름> 12화 中, 넷플릭스 기준)라는 내레이션이 이를 잘 드러낸다.


나는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너무나 탐나고 부럽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믿음을 가지고, 어린이에게 다정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좀 더 디테일한 질문을 던져보자. 프레임 밖에서 나타난 어른 A는 왜 (그에게 낯선 어린이인) 소타에게 사과를 건네주고 홀연히 사라졌을까? 단순히 만유인력에 끌려버린 걸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만달로리안>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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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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