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아하는 마음이 탄생시킨 것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글 입력 2022.12.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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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는 팬심이었다. 아이돌그룹을 좋아하게 되면서 라디오의 매력에 빠졌고,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궁금해졌다. 동시에 무언가에 이끌리듯 초등학생 때까지 받은 상들을 모아놓은 앨범을 들여다봤다. 다른 상에 비해 글짓기상이 더 많은 것을 보면서 갑자기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하고,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꿈을 찾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꿈을 찾아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또는 재능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최근 이런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모든 것이 담긴 전시회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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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한 전시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인 맥스 달튼의 ‘영화의 순간들 63’이다. 맥스 달튼의 개인전이며, 영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맥스 달튼은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를 그린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중문화를 좋아해서 음악, 영화, 책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대로 영화가 주인공이었다. 영화 덕후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요소가 있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추천한다. 23년 10월 29일까지 개최하므로 영화 덕후라면, 한번 보길 바란다.


전시 ‘영화의 순간들 63’은 1막 영화의 순간들, 2막 웨스 앤더슨 컬렉션, 3막 맥스의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2막이 끝나면 전망대를 지나 3막으로 넘어간다. 전망대의 창에는 영화 속 캐릭터 그림이 있어서 마치 영화의 순간들이 현실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발아래에 펼쳐진 서울의 모습과 작품들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63아트만의 특별함을 누릴 수 있었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음악을 제공한 점이었다. 휴대폰으로 큐알코드를 인식하면, 지니앱으로 영화 OST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니앱으로만 들을 수 있어서 평소 그 앱을 사용하지 않아 설치하고, 가입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도 꿋꿋이 앱도 깔고 가입까지 했지만, 요금제 회원이 아니어서인지 1분 미리듣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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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의 작품들은 빈티지한 색감과 유머러스한 디테일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특징이 유독 잘 드러난 전시였다. 곳곳에 숨은 포인트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몇몇의 작품들은 영화 속 명대사가 적혀 있었는데, 그 글귀들이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영화 ‘아멜리에’를 담은 ‘아멜리 폴랭의 멋진 운명’은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글귀가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글귀가 주는 묵직함과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가 만나 울림이 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여운이 길었던 작품이다.


본 영화가 많지 않았지만, 몇몇 아는 영화 속 장면들을 그림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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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한국 영화의 순간들이 맥스 달튼에 의해 그림으로 재탄생해서 매우 기뻤다. 모든 작품을 애정 어린 눈길로 봤지만, 한국영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볼 때 더 커지는 애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까지 한국 영화의 순간들을 센스 있게 그림에 담았다. 특히 영화 ‘마더’를 담은 작품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엇’하고 놀라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림 하나로 영화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거나 상상하게끔 만든 그의 실력을 체감했다. ‘설국열차’도 마찬가지였다. 


[열차의 기다란 형태를 살려 18칸의 장면을 나열했습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전진하는 방향으로 관람하면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본 것 같은 감상이 가능합니다. 열차의 단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각 칸의 테마와 스토리를 발견해보세요.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시에서]


‘설국열차’를 보진 않았지만, 열차의 형태로 나열한 그림을 보면서 영화 속 여러 장면이 상상됐다.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칸마다 채워진 그림을 감상하고 나니 한 편의 영화를 빠르게 본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전시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여운이 길었다.


‘기생충’은 슬픔, 무섭고 두려움, 착잡함, 아픔의 감정이 들었던 영화였다. 그래서인지 그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잿빛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런데 맥스 달튼이 그린 ‘기생충’의 인물들을 보면서 다양한 면을 보게 되었다. 하나의 색으로만 보이던 그들이 여러 색으로,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같은 영화를 봐도 느낀 점이나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대화나 리뷰 글로 확인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림이라서 특이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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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맥스의 순간들에서는 영화 외에 음악, 오래된 책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맥스 달튼은 어릴 적 꿈이 뮤지션일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음악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며,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여러 개의 LP 앨범 커버들이 전시된 것을 보면서 그의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깃든 손길로 선을 그리고, 색을 칠했을 그의 작업 모습이 떠오르면서 괜스레 내 마음이 설레었다.


유명한 화가들의 작업실 풍경을 담은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는 여섯 거장의 작가들을 향한 존경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3막의 섹션 구성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LP 앨범 커버와 작가들의 작업실을 한 곳에서 본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 음악, 유명 화가들, 오래된 책 등 그의 취향이 담긴 모든 것을 감상하면서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마음과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3막 설명문 중 ‘작가의 서재나 작업실을 탐방하는 것 같기도 한 특별한 체험’이라는 문구에 크게 공감했다.


이번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주제인 전시를 봤으니 다음에는 음악이나 오래된 책 등 다른 문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중점적으로 보여준 전시를 관람하고 싶다. 특히 음악을 향한 작가의 마음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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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에 사랑이 가득해서 관람 내내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맥스 달튼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또는 그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그의 재능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을 탄생시키고,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려주는 전시였다.


전시 제목은 ‘영화의 순간들 63’이지만, 나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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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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