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음악]

글 입력 2022.11.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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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귀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때는 언제인가요



유투브에 "What song are you listening to?"라고 치면 세계 곳곳에서 낯선 행인에게 "지금 무슨 노래를 듣고 계세요?"라고 묻는 동영상이 뜬다 (최근에 다시 유행하면서 1년이 채 안된 동영상들이 보이는데 그보다 10년 정도 된 동영상들을 추천한다. 디지털 컨텐츠도 오래 묵으면 콤콤한 것이 감칠맛이 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뉴욕, 쌀쌀해지는 날씨의 초저녁, 코트를 입고 볼이 발그레해진 여성이 거리를 걷는 모습.

"What song are you listening to?" 

여자는 멋드러지게 씩 웃으며

"Best is yet to come, by Frank Sinatra"

대답하고는 곧 화려해질 뉴욕거리를 유유히 가로지른다.

그녀를 보며 떠오르는 말은 장미빛 인생. 또각또각 걸어가는 길, 삶이 필연적으로 내놓을 풍파에도 불구하고, '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낭만적 강인함. 이 완벽한 타인에게 아는 한가지 사실은, "She is feeling the life(music) right now!" 


그런데 헛도는 나사처럼 이상하게 음악이 헛도는 날도 있다. 음악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환원되고, 알앤비와 소울은 어색하게 신나있고 클래식은 왠지 화를 돋군다. 그럴때면 높은 가능성으로 삶 내지는 삶에 대한 감각도 헛돌고 있다. 삶은 어딘가 손에 잡히지가 않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듯, 생을 맞는 예리함과 총명은 둔화되어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악이 삶을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 음악을 아무리 문대어 보아도 소생하지 않는 마음. 


그래서 음악이 귀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날, 멜로디와 가사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벗은 심장에 온전히, 착 달라붙는 날은 더욱 소중해진다. 락은 락대로, 보사노바는 보사노바대로, 재즈는 재즈대로 나름의 세계가 열리고 멜로디의 입자들은 하늘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한편, 음악이 귀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신기한 사다리도 있다. 노스탤지어가 그것이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첫소절을 듣자마자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노래들이 있다. 가령 수많은 캐롤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나 Wham의 "Last Christmas" (캐롤을 듣기 좋은 계절이 시작되었다). 멜로디가 시작되면 숨을 잠깐 들이마신 후 노스탤지어에 몸을 맡긴다. 별안간 형광등이 켜진 방에 낭만 같은 눈발이 내린다.


내게 노스탤지어가 찾아오는 노래 중 하나는 스티비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이다. 정겨운 멜로디가 깔리고 어딘가 기계음이 섞인것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멜랑콜릭한 안개가 자욱하게 퍼지는것만 같다. 이 노래에 특별하다고 할 만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새해도 아니고, 초콜렛을 줄 날도 아니고, 봄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꽃이 피기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당신에게 그냥 전화를 걸었어요.

 

문득 다른 사람도 이런 노스탤지어를 공유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니 한번 들어봐주시라!

 

 




음악의 기능 내지 효과 중 하나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노스탤지어에는 "실제로 경험해 본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언젠가 조금 더 어렸을 당신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음악들이 있지 않나? 가령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즈음 바다가 있는 습한 도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꼬불꼬불 작은 산길을 통과하는 버스에서 머리를 내밀고 주구장창 십센치의  '4am', 'talk' 같은 노래를 들었다. 날씨가 이정도 습한 걸로 봐서 이번 여행은 망했다는 생각에 설렘은 가라앉고 유쾌만했던! 아직도 이 노래들을 들으면 버스가 지나는 길 어귀에 서서 축축해진 머리를 내놓은 고등학생 나를 보는것만 같다. 아직은 더 날것이였던 십센치와 마찬가지로 날것이였던 바다 도시 여행.


한편, 노스탤지어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공간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유투브 댓글이나 영화의 평을 보면 종종 보이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 감정을 '아네모이아'(Anemoia) 라는 단어로 부른다고 한다. 어반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 따르면 아네모이아는 '당신이 결코 알지 못하는 (혹은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for a time you have never known)로 정의된다.

 

 


<과거는 외국. There is an old saying,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액체근대로 유명한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이런 노스탤지어는 현실에 대한 결핍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삶과 역사적 격변의 리듬이 가속화된 이 시대의 방어기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가상인간 등이 등장한 현재, 우리는 인간의 인간성에 대해 되묻고 미래에 과연 지금과 같은 인간성이 존재하게 될까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현실속에서 개인은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의 것-특히 전통적 의미에서 '인간성' (그것이 미화된 것이라 하더라도)을 보여주는 과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즉 인간인 자신과 지극히 인간이 였던 과거의 인간, 현재와 현재를 정당화하는 과거 사이의 연속성에 집중함으로서 스스로의 주체를 구성하고 존재를 확신해 나간다는 것이다. 


바우만의 말처럼 노스탤지어가 얼마나 의도적인 방어기제로 작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로부터, 특히 이제는 결코 만날수도 없을 사람들의 모습으로부터 나와 현재를 포함한 이 인류사의 지속성을 예감할 수는 있다. 흑백 다큐멘터리에 보이는 사람들의 웃고 울고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이 가지는 불변의(혹은 불변할 것만 같은) '인간성' 같은 것에 한 차례 위안을 얻게 한다. 스티비 원더가 말하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그냥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전화하는 그 감정이 세대에서 세대로 영원할 것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채 이 노스탤지어를 담지할 수 있는 것은 충만한 일이 아닌가 잠깐 자문해보았다. 


신기한 것은 이 노스탤지어라는 것은 개인적인만큼 집단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 같이 경험해보지 못한것을 다같이 그리워한다. 또 근본적으로 노스탤지어란 다른 누군가의 기억에 내 존재를 감상이라는 방법으로 편승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참으로 엉성하고 멀면서도 가깝다. 한편, 뒤집어 생각하여 누군가의 기억이 내 아네모이아가 될 수 있다면, 혹은 내 기억이 누군가의 아네모이아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느슨하게 얽힌 관계에서도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볼 동기부여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노스탤지어의 만남이 잦은 삶이 위태롭기보다는 풍요로워 보인다. 현재라고 부르는 이 성긴 범위도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순간이 된다면 음악을 책갈피로 써야지, 읊조렸다.

 

*이하림, 2020, "생경한 그리움: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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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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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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