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나에게는 우리만의 바디랭귀지가 있는데 ‘너무 좋은 것’, ‘형언할 수 없는 것’에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허!’를 내뱉는 듯한 (혹은 실제로 내뱉고서는)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Mathis Picard 트리오의 첫 음악을 듣자마자 얼굴을 마주치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번 ‘허…?’, ‘허..!’가 우리 사이에서 오갔다. 그 연주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고요함이 있었다. 언뜻 FKJ의 "Ylang Ylang"
시간이 지나고 공연이 진행 될수록, 공연을 듣기 전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쳐보고 아리송했던 것이 무색하게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고, 아니 너무 제대로 되었다고, 무언가 아주 원초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혹은 ‘원초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의 특징일까?-
그의 음악이 주는 ‘원초적으로 아름답다’는 인상은 명상, 유년시절, 엄마를 다루는 그의 주제의식과 그럼에도 즐거움과 사색과 슬픔이 베어있는 복잡성이 생의 복잡성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음악이 풍기는 분위기는 흙이나 자궁, 숨 같은 이미지를 곱씹게 했다. 그리고 미지근한 호수로 침잠하는 듯한 고요함. 어린 인간에겐 친숙하고 호의적으로 구는 듯한 물결과 바람 같은 것들을. ‘Hello’와 같은 곡에서 ‘Prana’같은 곡 까지를 듣고 나면 하나의 서사시를 마친 기분이다.
천진난만했고 바빴던 것이 어느새 지나가고 고요함에 혹은 다시 즐거움의 귀로에 서기까지.
프랑스와 마다가스카르라는 Mathis Picard의 배경 때문인지 그의 재즈는 어쩐지 미국적이지 않았다. 동양적이라고 하면 세상을 너무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 될 것 같고.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이름을 붙여야만 할 것 같다.
‘깊이 있게 창의적으로 연주한다’(The Times)고 말하는 언뜻 보면 상투적인 평이 사실은 정말 좋은 설명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와 마다가스카르,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경험에서인지, 클래식 피아노와 컨템포러리 재즈를 오가는 자유로움에서인지 그가 가지는 음악적 요소들을 짧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Mathis Picard는 종종 ‘스트라이드 피아노’(Stride Piano)라는 연주법을 사용하는데 이 때 ‘Stride’는 성큼성큼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왼쪽 손은 껑충껑충 옥타브 간격의 음을 연주한다. 그가 직접 설명하길 스트라이드 연주법으로 피아노는 그 자체로 하나의 타악기가 된다. 피아노는 베이스, 작은 북, 빅밴드의 샤웃코러스, 트럼펫과 같은 소리들을 모방한다. 스트라이드 피아노는 할렘 레그타임(Rag time) 파티에서 연주되는, 춤을 추기에 적합한 음악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특유의 섬세함과 천진난만함이 합쳐져 Mathis Picard의 스트라이드 피아노는 신나고, 춤을 추기 좋은 음악에서 몇 뼘 더 나아간다. 마치 나비의 춤을 보는듯 여리다.
이 좋은 것을,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다 비슷한 마음으로 느끼고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다 같은 마음이였는지 사인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 음악을 좋아해도 그 음악가라는 인격을 좋아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도 어쩐지 꼭 그들의 사인을 받고 싶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인을 꼭 받아가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한번 만에 이렇게 팬이 될 수 있다니, 사인을 받기 위해 줄에 서 있는 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들의 팬이였던 것처럼 마음이 떨렸다.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이 사랑은 나의 짧고 성급한 호들갑일지. 집에서 오디오로 그의 음악을 들었다면 이렇게 팬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은 결국 'Mathis Picard'라고 하는 그 인격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음악과 인격 사이를 느끼는 방법은 직접 그 둘이 하나의 개체에서 발현됨을 목도하는 것 밖에는 없으니. 오랜만에 어떤 시공간에, 그때 그 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으레 여운이 진한 영화를 보고나면 그러듯 Mathis Picard 트리오의 공연을 보고나서는 헛헛한 마음에 유튜브를 계속 떠돌았다. Mathis는 건반을 누르고 팔을 곧장 다시 몸으로 가져오는 몸짓을 취한다. 마치 그 건반을 누르면 어떤 음이 들리는지 보자는듯한, 매 번의 건반에 숙고를 하는듯한 몸짓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칠 수 있지만 결국 그가 택하고 연주해나가는 세계, 이렇게 연주된 건반에 이렇게 들려오는 선율이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이렇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닫히고 우리의 세계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