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른 마음을 잘 구워내면 쿠키가 될까. - 흉터 쿠키

시를 사랑하기에 미워하고 아파하는 어느 한 시인의 담담한 고백
글 입력 2022.11.15 08:5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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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와 '쿠키'라는 단어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은 좀처럼 익숙지 않다.

 

제목에 물음표를 던지고는 시집을 펴들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고 단어와 단어 사이 여백에서 피어나는 의미를 짐작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우습게도 '흉터'와 '쿠키'의 공통점을 알 것도 같았다.


'쿠키'라고 하면, 우리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쿠키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에 좀 더 시선을 두었다.

 

우리가 좀체 조명하지 않는 부분을 들춰내는 시인의 시선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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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쿠키를 위해 떼어진 남은 반죽은 어쩐지 조금 서글프다.

 

'잘 구워진 무언가'가 되기 위해 푹 파일 정도로 깊은 상처까지 냈건만, 잔해는 결국 잔해로 남을 뿐이다. 알맞은 테두리를 위해 도려내진 잔해는 결국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채 흉터가 된다.

 

시인은 '시는 상처보다 흉터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상처는 생동하는 날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상처의 통증으로부터 흘러나와 조금 더 단단해진 흔적을 품는다. 그러니까 시는 통증으로부터, 아픔으로부터 빠져나와 과거가 된 기억의 파편들을 글자로 풀어 놓는 것.

 

결국 시는 아픔이라는 원천이 없으면 쓸 수 없지만, 으레 흉터라는 것이 그렇듯 시인의 시는 담백하고 덤덤했다. 물론 견고한 글자 사이사이에는 흉터가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을 거친 이의 무른 마음이 녹아 있겠지만 말이다.

 

*

 

시집의 끝자락에는 시인이 직접 쓴 에세이도 있었다.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이혜미 시인이 미처 원고를 마감하지 못한 채 이소라 콘서트를 다녀온 경험이 짧게 적혀 있었다. 콘서트에서 시인은 가슴 깊숙이 새겨질 이소라의 짧고 묵직한 고백을 듣게 된다.

 

-제가요, 앨범을 내면요, 사람들이 막, 이제 변했다, 이소라 별로네, 옛날만 못하네, 아니면 그냥 그렇다, 이런 말들 듣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나는 되어가는 중인데, 이건 과정인데, 매번 내가 내는 작업마다 단면을 잘라 계속 평가한다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왜 계속 이걸 하냐면...

 

시인은 무대 위에서 옹송그린 채 갈라지는 목소리로 힘겹게 노래를 부르던 이소라의 다음 말을 찬찬히 기다렸다. 이소라는 다음 말을 내뱉기까지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즈음 떠밀리듯 말했다.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시인은 이소라의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말에서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있는 힘을 다해 이 세계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 의지'를 발견한다.

 

아무리 내가 속한 세계가 막연하고, 평가의 잣대가 되는 모든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다 해도, 두려워도, 어리숙하고 온전하지 못해도, 잊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지고 또 다지면서 나아가는 일. 그런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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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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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윤은비
    • 겪었던 과거의 아픔이 흉터가 되어서야 드러낼 수 있는 시가 된다는 내용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을 흉터에 비유한 것이 특별하면서도 깊이 이해되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 1 0
  •  
  • 강과 바다
    • 시와 쿠키와 흉터, 아,, 저렇게도 생각할수 있구나,,,라고 한수 배웠습니다. 참신하네요.잘 읽고 갑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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