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급하게 면접장으로 뛰어들어왔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데다 여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에 바르고 성실하게 대답을 하는 것도 아니다. 급기야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상의를 들어올려 속옷을 내보이기까지 한다. 완벽하게 망친 면접 현장 같다.
여자는 최근 친구 '부'를 잃었다. 기니피그 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동업자이기도 했다. 부는 다른 여자와 잔 남자친구에게 죄책감을 안겨줄 심산이었지만 계획과 다른 사고가 나며 세상을 뜨고 만다.
주인공은 망하기 직전인 기니피그 카페를 홀로 운영하고 있는 와중 가게를 정리해야 하는 위기를 직면했고, 교제해온 남자친구는 그녀를 떠났다. 주인공은 그에 대한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지하철에서 만난 쥐를 닮은 남자와 가까이 지낸다. 단순한 친교와는 좀 다르다. 주인공은 그와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
연극 <플리백>은 이렇듯 사람을 사귀는 방식이 다소 뒤틀려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플리백(Fleabag)은 '지저분한 사람, 문제투성이, 누추한 곳' 등을 뜻하는데,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은 극 중 다수의 시간에 성적인 농담을 던지거나 이해해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며 '문제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문제투성이인 인물은 우리를 '왜'로 이끈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를 만났을까,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등으로 말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전에 사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몸을 촬영한 사진을 보낸다. (행동 자체에서 문제가 있지만) 그의 남자친구는 흥분해서 "더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그에 따르지만 주인공의 표정을 봤을 때 원하는 행동은 아니어 보인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성과 관련된 일들을 벌이는 것 또한 그렇다. 그녀는 음담패설을 던지거나 여러 인물과 했던 성관계에 대해 묘사하거나 밤이 다 가도록 음란물을 보며 혼자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 만족스러운 행위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순간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직면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하게 되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우스꽝스러운 개그 같기도 하다.
그래서 주인공이 왜 그랬을까. 나는 그 왜가 주인공의 외로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극 내내 온전하게 의지할 곳이 없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둘뿐인 가족인 아빠와 언니랑 오랜 시간을 보내거나 가까이 지내는 것도 아니다. 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는 수차례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다. 전 남자친구는 이상한 성적 욕구를 해결해줄 것을 종용했다.
그런 배경 때문에 주인공의 모습이 단순 욕망 분출이 아니라 자기를 좀 봐달라는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그 몸부림으로 인해 비극이 이어졌음이 드러나는 지점이 있음에도, 그녀를 더는 '플리백'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6월 19일 첫 무대를 올린 한국 초연작 '플리백'은 90분 간 인물 하나가 극을 이끄는 여성 1인극이다. 이번 공연에는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 등 3인의 배우가 플리백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은 피비 월러브리지(각본을 쓰고 배우까지 했다)의 블랙 코미디 드라마(영국)라고 한다. 원작은 보지 않았으나 한국으로 들여오면서 로컬라이징을 어느 정도 했으리라 짐작한다.
연극 속 농담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어느 정도 의도한 설계인 것 같다), 주인공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왠지 이 연극은 그럼으로써 완성되는 것 같다. 많은 실수들이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결국은 문제투성이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의 여지를 남기고 작품은 막을 내린다. 주인공은 부에게 들은 사람이 실수를 하는 이유, 그리고 연필 뒤쪽에 지우개가 달린 이유까지. 지우개의 존재가 강조되는 이유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야기 외에도 1인극이다 보니 주변 인물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여러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