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말 타는 계집 처음 봐?" - 규방 부인 정탐기 [도서]

조선시대 여성 경찰 '박순애'의 사건 일지
글 입력 2022.11.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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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각종 사극을 보면 여성 인물이 밋밋한 경우가 많다. 인물의 감정선이나 서사가 밋밋하다는 것이 아니다. 해당 인물이 사회에서 '오롯이 홀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는 뜻이다. 보통 남성 인물을 활용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남성 인물에게 간택당함으로써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밋밋한 여주인공'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시대 고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조선 시대 여성들은 애초에 관직 진출 ─ 그러니까, 제일 명예로운 '취직' ─ 이 불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었는가? 조선에는 열네 살에 남장을 하고 전국일주를 한 여성도 있었다.바로 김금원이다. 심지어 전국 일주를 다녀온 뒤 양반의 첩이 된 그는 같은 처지의 여인들을 모아 용산 삼호정에 ‘삼호정 시사’라는 조선 최초의 여류문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일생에 영감을 얻어 소설 《규방 부인 정탐기》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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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는 김금원의 삼호정 시사에 미스터리 컨셉을 첨가했다. 낮에는 시를 읊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클럽’으로 말이다. 이 탐정 클럽은 삼호정 시사의 리더이자 브레인을 맡고 있는 김금원과 다모 박순애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모는 공식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에 현장을 수사하는 역할을 했고, 김금원을 비롯한 ‘삼호정 시사’ 구성원들은 다모에게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 책 소개 참고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여성 인권을 전면에 강조하면서도 꽤 괜찮은 형식과 개연성을 갖춘 추리 스크린플레이"다. 나는 평소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 예술의, 특히 문학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입장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게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창작된 작품들은 이상하리만치 문학적인 완성도─사용하는 어휘라든지, 서사의 개연성이라든지 구조라든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물론 완성도와 정치적 목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작품도 있다.

 

《규방 부인 정탐기》 역시 여성 인권을 어느 정도 강조하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애초에 주인공 박순애가 초장부터 "말 타는 계집 처음 봐?"10p 라고 소리치며 등장한데다 "앞뒤가 꽉 막힌 종사관은 박순애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백안시했다."11p, "어찌 여인네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겠나. 가서 직접 물어보게."13p 등 조선 사회의 여성 차별을 꼬집는 문장들이 소설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 소설은 '범인 잡는 추리극'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매우 충실하다. 셜록 홈즈 시리즈처럼 엄청나게 치밀한 복선이 지뢰처럼 깔린 대 반전극은 아닐지라도, 일정 퀄리티 이상의 인과관계를 통해 서사가 흘러간다. 그리고 독자가 사건 전개 내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결론이 김금원의 입에서 도출된다. 심지어 25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에 두 개의 사건이 들어차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자랑한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스크린플레이, 즉 영화 각본에 가까운 느낌이난다는 것이다. 작품 초반에는 박순애가 전임 다모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해당 장면의 묘사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어색한데, 막상 다시 읽어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원인은 간단했다. 묘사가 꽤나 자세한데, 그것이 소설의 묘사라기보다는 영상의 묘사에 더 가까운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약간의 추상이 가미된 그림과 같은 문장을 구사한다면, 《규방 부인 정탐기》는 4K사진에 가까운 문장을 구사한다. 《규방 부인 정탐기》는 출간되기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 산하 행사인 "2022 ACFM 부산스토리마켓"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사실 내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김금원'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은은한 조력자1 정도로 등장할 뿐이다. 212쪽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대부분 포도청 소속 다모 '박순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체력조건을 충족해야만 될 수 있었다는 조선의 여성 경찰 '다모'조선 시대의 관비이지만, 여성과 관련된 사건이 생기면 포도청 업무를 겸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 주인공인 덕에 좀 더 드라마틱한 전개(몸싸움을 하는 장면이라든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 속의 사건들은 실제로 조선에서 일어났던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각종 어휘 표현과 배경 묘사도 철저한 고증이 느껴진다. 각주 없이 조선에서 사용하던 어휘들을 마주하려니 조금 어지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완성도를 위한 작가의 진심이 느껴져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당신이 추리극에 관심이 있다면, 조선의 여성 경찰로 기능했던 '다모'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기생들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조선시대 여성의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부디 망설임없이 《규방 부인 정탐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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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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