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간다는 것 [문화 전반]

나상현씨밴드의 '생'과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로 본 생(生)의 의미
글 입력 2022.10.2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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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잘 보고 잘 듣지만, 쓰지 못했다. 어떤 슬픔이 나를 뒤덮어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가지를 빼고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너무 추하거나 구질구질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나에게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니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오늘이 평일인지 주말인지 헷갈렸다. 나는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백수니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설정하고 노래를 들었다.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노래 중에 낯선 곡이 있었다.

 

나는 그 곡의 이름을 봤다.



생.jpg

생 – 나상현씨밴드 

 

 

옥천에서 만난 한 언니가 추천해준 밴드의 노래였다.

 

나상현씨밴드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하는 라디오도 듣고, 모든 노래와 그들의 말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언니의 열성적인 덕질을 듣다 보니, 나도 무해하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다. (나는 방금 잃어버렸지만) 용기도 필요하다.

 

 

 

 

 

생(生)



베이글.jpg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사진


 

“살아간다는 것

슬픔을 마주하는 것

작은 기쁨들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

 

- 나상현씨 밴드 '생' 가사 

 

 

살아가는 것, 어떤 의미일까?

 

Everything is nothing.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악당 조부 투바키가 삶의 모든 걸 흡수하는 ‘어둠의 베이글’을 만들었다. 그는 모든 세계관의 모든 내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니까,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결국 돌이 되기도 한다.

 

나도 삶이 너무 버거울 때, 저 멀리 이름도 모르는 행성에서 나를 바라보면 나는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일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했다. 결국 나는 지금도, 과거도, 미래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이미 어둠의 베이글 속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처럼 모든 무의미를 겪었음에도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리고 딸인 조부 투바키를 붙잡는다. 다른 곳 다른 내가 아닌 지금 여기의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삶은 아마도 선택의 연속이고, 영화처럼 수많은 가능성이 나도 모르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과거를 두고 후회를 자주 하는 사람이다. 친구들과 ‘만약에’ 게임을 하면서 무의미한 과거를 혹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만약에...”라는 마법같은 단어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후회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안다.

 

 

 

Be kind


 

가족.jpg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사진

 

 
“오늘을 버텨내는 것”

 

- 나상현씨 밴드 '생' 가사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은 이어진다. 매초 매분 매시간 나는 살아있다. 그럼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영화 속 웨이먼드는 자신의 비결을 알려준다. “Be kind” 처음에 듣고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라서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에블린이 Be Kind 공법으로 적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보니까 어쩌면 저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다정함에 동참할 수 있겠다. 아니 동참하고 싶다. 삶은 여전히 괴롭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살만하다고 믿고 싶다.

 

어떤 마음이 묻어나지않게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는데 여전히 어렵다. 이미 온통 내 글을 한 곳을 향해있으니까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다시 붙잡게 해준 것도 음악과 영화였다. 내가 다시 쓰고싶게 만든 것도 문화예술이다. 나는 또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것이다.

 

이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jpg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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