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쁜 어른들이라는 말이 불쾌하신가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10.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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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2학년의 힘이다. 이 나쁜 어른들아"

 

출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들은 말이다. 평소 같으면 고요했을 출근길이 그날따라 시끌벅적했다. 현장 학습을 떠나는 중학교 아이들이 이미 객차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마치 교실인 양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출근길이 아이들로 인해 더욱 혼잡했다.

 

매일같이 경험하는 지옥철이기에 꽉 차 있는 열차에 사람들이 밀려드는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난생처음 겪는 짓눌림에 당황했는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었다. 평화로워도 지치는 출근길이 아이들의 고성과 아우성으로 한층 더 피곤해졌다.

 

'나쁜 어른'이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불쾌했다. 냉혹한 사회 현실을 마주하는 어른이 된 것 - 그니까 나이 든 것도 - 서러운데, 아침 댓바람부터 나쁘다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좁은 객차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올라타는 어른들의 고단한 삶을 아냐며 따지고도 싶었다. 중학생과 싸우는 옹졸하고 유치한 어른이 될 뻔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어쩌면 이름 모를 학생이 말했던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보는 뉴스에는 각종 범죄와 환경 오염, 전쟁에 대한 기사들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SNS나 OTT 플랫폼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과 영상들이 즐비했다. 어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가.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놀고 배우며 성장한다. 우리가 만든 세상은 어떤가.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일상이 계속되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보들로 가득하다. 추악한 욕설이 점차 다양해지고, 폭력의 수법은 극악무도해졌다. 남녀 간 대립과 세대 간 갈등은 극에 달아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서로를 혐오한다.

 

예능에서는 웃음을 명목으로 성차별적인 발언과 비하 섞인 농담, 가학적인 벌칙을 행하고,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마약과 문란한 성문화를 노골적으로 다룬다. SNS에는 사람들의 은밀한 욕구를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기업의 마케팅이 반영된 알고리즘은 편향된 시각과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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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들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다. 외출 대신 집콕을 하며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댓글이 많은 글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거짓 정보가 실린 게시물에 친구들을 태그한다. 친구들을 강자와 약자로 분류하고, 강자가 되기 위해 욕설과 폭력을 배우고 약자에게는 비하와 혐오를 가한다.

 

아이들의 일탈은 음주와 흡연을 넘어 마약과 도박이 되고, 데이트 장소는 침대가 있는 룸카페가 된다. 예쁘고 멋진 스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끝없는 자기 비하에 빠지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안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그 변화가 바람직하지만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 용기와 질리도록 먹은 고기가 환경 오염을 악화시킨다는 사실도, 차마 '좋아요'를 누르지 못하는 사진과 영상을 시청하기만 해도 유사한 콘텐츠 생성에 이바지한다는 점도,

 

약자들에게 무관심하고 강자가 되기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각박하게 만드는지도, 왕따와 괴롭힘은 학교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버젓이 일어난다는 것도,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며 불편한 농담을 웃어넘기는 태도가, 유해한 콘텐츠로 넘쳐나는 OTT 플랫폼을 방관하는 태도가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른들은 달라질 수 없다. 변화를 조장하는 행위가 편하고, 유쾌하고, 재밌고, 단순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와 안일함이 결코 나쁜 습관들을 끊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철 좀 들으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나쁘다. 나 또한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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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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