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울어진 미술관을 다시 뒤집다 - 도서 '기울어진 미술관'

미술로 보는 아쉬운 시대에 대한 이유리 작가의 고발
글 입력 2022.10.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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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에 숨은 '선량한 차별주의자'


 

우리가 아는 명작을 그려낸 화가들은 사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새 시대와 권력의 영향으로 차별주의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려낸 화가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전 작인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 이어 이유리 작가는 그림을 통해 나타난 사회의 모순을 설명한다. 이전에는 남성 화가에게 가려진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 [기울어진 미술관]에서는 더 넓은 차원에서 숨겨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의가 아닌 차별은 사실 만연하다. 나 스스로도 모른 채, 사회와 권력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해오고 있는 차별주의적 행동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단지 그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차별은 좀 더 일상적이고, 복합적이다. 내가 가하는 것일 수도 내가 피해자일 수도 있다. 다만 권력이라는 것은 본인이 쥐고 있음을 잘 모를 때에도 존재하니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용어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작가의 말 중 마음 깊숙이 박힌 건

 

 

'예술이 돈과 권력을 떠나 독립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예로부터 화가가 자신을 후원해 주는 권력자와 그림을 구입해 주는 재력가들의 도움을 외면한다는 것은, 직업 화가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중략) 그래서일까. 화가들은 대체로 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앞으로 읽으면서 통감하겠지만, 이미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림의 힘은 강하다. 그러나 권력은 그 이상이다. 현시대의 관점에서 과거의 작품들을 비판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역사 속 그림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맞닿아 있는 부분을 발견한다면? 당대의 문화적 편협함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는 이데올로기를 체감하는 순간 그 불공평보다 큰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이유리 작가가 계속해 '마이너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이다. 권력에 가려져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당대 관념들의 허점들을 고발하고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는 게 그것이다.

 

 

 

시대에 대한 고발과 소수자들의 해방


 

2부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에서 '모던 걸 수난사, 단발 여성은 100년째 전쟁 중'

 

시대의 한계가 드러난 작품들을 분석하고 최근에 국내에서 드러난 잘 아는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 '안산'의 숏컷 헤어에 대한 이슈에 대한 언급은 더욱이 최근 일이라 단발 여성의 오랜 전쟁을 증명하는 안석주의 <모던걸의 장신 운동>의 그림이 확 와닿게 느껴지기도 했다. 1928년에 그려진 그림이 2022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돌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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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같이' 머리를 한 여성들을 의심하고 멋대로 판단을 내리는 식의 반응은 현존한다. 여성의 삶과 사회적 역할의 변화(해방에 가까운)에 따른 편의를 깨달은 탓에 등장한 헤어스타일일 뿐이다. 단지 편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수많은 질문들과 눈초리를 받아야 만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그림 속 모던 걸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는 것이 현주소이다.

 

3부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에서는 어린이 혐오, 노인 혐오, 전염병에서 비롯된 혐오 등에 대해 다룬다. 이 중에서도 '값싼 노동력이거나 말 잘 들어야 하는 '어린이다움''에서는 어린이를 미완성의 인간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은 코르셋이나 양복 등 어른의 옷을 입고 있다. 당시에 '아동'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새로우면서도 안타깝다. 어린이들은 덜 자란 인간으로 취급해 의지를 속박당하고 창조적 활동에 제약이 걸리거나 작은 성인 취급을 받으며 어른스러운 행동을 강요받기도 했다.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에서 노동을 제공하도록 강요받은 것이 일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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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답게'란 무엇일까? 어른이 정한 테두리 안에 있으라는 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어수룩할 정도의 순진함을 기대하는데, 그 기대의 테두리를 넘어서면 당장 '어린이스럽지 않다'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대체로 어른은 어린이를 독립 개체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 눈에 비친 어린이는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에는 미숙한 존재이고, 어른의 소유물이며, 과도기의 인간일 뿐이다.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다. 아이라는 존재는 '일종의 익명 상태'로, 하층계급의 많지 않은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기에 아이들을 애지중지 여기지 않았던 사회적 인식이 그것이다. 아이가 죽어도 그리 슬퍼하지 않아 보면서도 의아했었던 동화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돌봄 알바를 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너무 아이 취급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지나갔다.

 

나 또한 어릴 적 알게 모르게 아쉬웠던 점들을 이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왔던 태도였다.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의 빛 한 줄기를 찾아서



"역사는 잘못 지어진 콘서트홀과 같아서 음악이 들리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이유리 작가는 미국의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말을 인용한다. 이 사각지대를 비추는 빛은 현시대에서 과거 작품들을 비판적 눈빛으로 관찰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이 그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을 것이다. 여성, 인종, 어린이, 노인, 그리고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동물권, 환경 문제, 투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그림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다. 다각적으로 현실의 부조리함을 바로 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는 인지에서부터 온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미술관이 기울어져 있음을 깨달은 듯하다. 이제는 모든 그림을 마음 편히 감상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드는 건 오히려 그림들에 가까이 다가가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의 접점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자들의 시선으로 기울어져 있던 미술관을 바로 볼 수 있게 도와준 책 [기울어진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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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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