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곳의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여 겪은 경험, 배경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좋은 경영자가 거쳐야 할 고민들이 담긴 각 챕터 중에서 인상 깊었던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리 미술관
일본 도쿄, 모리타워 52층과 53층에 위치하는 모리 미술관은 2023년 10월 개관 이해 여러 차례 연간 최다 관람객 수를 갱신하는 인기 미술관이다. 땅값이 비싼 롯본기에 위치하며, 초고층까지 작품을 운반하는 데에 어려움, 무엇보다 상설 전시관이 없다는 점에서 ‘잘될 수가 없는‘ 모리 미술관은 어떻게 위의 제약사항들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빌림의 미학‘이다. 모리타워의 야경을 빌리고, 미술관 선진국의 노하우를 빌리기 위해 영국인 미술행정가를 초대 관장으로 영입하고, 지상층의 일부를 빌려 생활권에 예술을 녹이고자 했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과감한 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택시회사와 협업하여 베테랑 기사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해 관람하도록 하고 자연스럽게 손님들에게 홍보하게 하는, 이른 바 ‘구전 마케팅‘을 시도했다. 저자 역시 그 택시기사의 동료에게 이야기를 듣고 모리 미술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소비자의 요구가 단순했다. 따라서 기업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내부의 기술과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소비자의 니즈는 복잡해지고 기업은 외부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빌리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잘 빌리는 사람들의 시대’에서 필요한 건 기존의 틀에 과감함 질문을 던지는 열린 조직의 자세 아닐까. 유명한 걸작 하나 없이도 안정적으로 관람객을 유치하는 모리 미술관의 전략은 수많은 경영가들에게 영감을 준다.
대영 박물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어떻게’ 일할까? 그 힌트는 “전 세계 각국의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예술품들을 전시한” 대영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힘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귀한 유산들을 빼앗아 와 소장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현대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의 제국주의적 성과물에 대한 혐오를 잠시 내려두고,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이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알 수 있다.
“영국은 어쩌면 전시물 자체가 아니라, 전시품을 전시할 수 있었던 자신들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어느 학자의 말이 있다. 피지배 국가들로부터 꾸준히 문화재 반환이 요구받으면서도 영국은 무기한 장기 대여의 형태로 빌려줄 뿐 되돌려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완고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외교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뤄나가는 정치력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력 덕분이다.
철의 여인으로 물리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당신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면 항상 타협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항상 적정선에서 타협만 하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영은 단순히 매출과 수익 등의 성과를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기업 활동은 상대와의 타협, 협상, 배려와 관용 같은 고도의 정치적인 행동이 수반된다. 대영 박물관 역시 영국인 특유의 정치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양의 수장품들을 관리하며 세계 최고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닐까?
폴디 페촐리 미술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폴디 페촐리 미술관은 조금 생소할 수 있으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한 번을 보여주더라도 폼 나게 보여주는 폴디 페촐리 미술관은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 도심에 있지만 초기에 부실한 전시물 관리와 운영으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맞은 뒤, 일부 소장품이 파손되거나 완전히 유실되고 나서였다.
중구난방으로 어질러진 전시품들을 재배치하고 관리체계를 갖추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게 됐다.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다르게 귀족의 저택과 같은 공간의 특징을 십분 활용하였다. 파시스트에 맞서 싸운 외교관이자 예술품 수집가인 ‘비스콘티 베노스타의 방’을 비롯해 ‘무라노 유리의 방’, ‘프란치니의 방‘ 등의 전시관을 만들어 이른바 부활 스토리를 쓰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서사에서 우리는 기업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어느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의 생활고가 대중에게 알려지자 한 라면 회사가 대량의 라면을 보내주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업의 CSR 활동은 곧바로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질리도록 먹은 그 라면을 또 먹고 싶겠냐‘며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그와 상충하는 선의를 베푸는 활동을 함에 있어서는 어떤 세심함과 센스가 필요하다. 폴디 페촐리 미술관이 부유한 귀족이 자랑하기 위해 단순히 미술품을 모아둔 곳에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은 곳이 된 것은 돈을 버는 과정과 행위에서부터 CSR 활동이 되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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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인재는 못 되지만 부족한 어떤 것을 얻고자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것이 위로인지, 용기인지, 더 거창하게는 삶의 통찰력인진 알 수 없지만 맡겨 놓은 것처럼 자연스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 수많은 수장품들이 있었다.
인정을 받지 못해 불만이던 때,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함을 알면서도 행동은 더뎌지고 고민은 늘기만 하던 때였다. 빛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사유의 방’에 반가사유상을 그때 처음 보았다. 큰 굴 같은 공간 속 타원의 조명 아래 두 반가사유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무 말 없는 사유상을 나 역시 말을 잃은 채 가만히 바라보면서, 문득 ‘덜어냄‘을 떠올렸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 이 외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나머지는 절로 내게 오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든 것이다.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자 그에 대한 결과는 물론, 걱정하던 것들은 결코 실체화되지 않음을 경험했다. 과감한 덜어냄은 경영 전략으로도 쓰인다고 배웠는데 이는 삶에 적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단지 아름다운 형태만을 보러 가는 건 아니지만 비즈니스적인 사고 또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책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경영을 하면서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인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유명한 인재들이 미술관에서 그 힌트를 어떻게 얻었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