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미술관에는 누울 자리가 필요하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9.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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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큐멘타는 어디인가?


 

대책 없이 결제한 유럽행 비행기. 5년에 한 번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를 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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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독일의 카셀(Kassel)이라는 도시가 전부 미술관으로 바뀐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고 있는 도큐멘타는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가장 동시대적이며 현대적인 예술을 선보인다.

 

올해는 공동체를 뜻하는 ‘룸붕’을 주제로 하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곳이다. 한강의 1/4 정도 되는 강이 흐르고 있는 고요하지만 활발한 도시이다.

 

도시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 교회를 비롯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물관 등에서는 한쪽에 유물을 전시해둔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고, 특별전이나 이동 통로 중간중간에 도큐멘타 작품을 설치해둔다.

 

가장 흥미로웠던 전시 공간은 바로 지하차도와 공원 한 가운데, 창고 같은 곳이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저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그곳을 지나가고 거니는 사람들과 경계 없이 섞여 있었다.

 

이러한 카셀 도큐멘타가 열리는 2022년은 예술계에 있어서 특히나 흔치 않은 해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 열려 홀수 연도마다 열리지만, 코로나로 인해 1년 미뤄졌다. 그리고 카셀 도큐멘타는 5년에 한 번 열려 베니스 비엔날레와 10년에 한 번, 홀수 연도에 겹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두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비행기 값이 비싸져도, 내 일상생활에 무리가 가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미술관에는 누울 자리가 필요하다.


 

오늘 오피니언의 핵심 주제는 카셀 도큐멘타 15를 관람하기 위해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었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도큐멘타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 곳곳에는 간단한 의자부터 리클라이너, 소파, 침대, 빈백까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해두고 있었다. 미술관에는 누울 자리가 필요했다. 왜 도큐멘타는 관람객의 ‘누울 자리’에 그토록 신경 썼을까?

 

전시장 내에 사람이 많아질 경우 ‘누울 자리’는 특히나 도움이 되는 편은 아니다. 관람객 순환에 집중하여 더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고자 했다면, 굳이 필요한 장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큐멘타는 그 누구보다도 휴식 공간에 정성을 다했다. 도큐멘타에 왜 누울 자리가 필요했으며, 나아가 무슨 이유로 그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였는가?

 

도큐멘타 15는 특히 영상설치 작품이 많았다. 최근 영상 작품이 매우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회화와 조각 작품 등 어느 정도 스펙트럼이 다양했던 베니스 비엔날레에 비해 영상 설치 작품의 비중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도큐멘타 15의 특징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판받았던 지점이기도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단순 모션이 반복되는 영상이 아니라 스토리를 담은 작품은 관람객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로서 누울 자리를 마련한 공간이 많았다. 불편한 의자가 아니라 정말 편한 의자와 소파, 빈백을 두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관람객은 해당 영상 앞에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관람객과 작가 간의 상호작용성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영상 작품에 지루함을 느끼는 나조차도, 몸이 편안하니 영상 내용에 집중하게 되었다. 즉, 작가의 작품과 예술관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효과로는 관람객이 오랜 시간 걸으며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음 문단에서 이야기할 내용과 연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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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물집이 잡혀가며, 전시 개관 시간인 10시부터 마감 시간인 8시까지 쉴 틈 없이 걸어 다녔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라는 것은, 도시 전체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카셀의 경우 트램과 버스 등 대중교통 시스템이 매우 잘 마련되어 있고, 미술관 간의 거리도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다. 약 15분 정도 걸으면 다른 미술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전시장 내에서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몸에 점점 피로가 쌓이고, 전시에 대한 집중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진다.

 

카셀 도큐멘타를 관람하는 데에는 체력 소모가 매우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하루에 1~2개의 전시만 관람할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체력 안배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머무르는 일자가 적은 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무리하기도 한다.

 

카셀에 방문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넉넉한 스케줄을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곳곳에 마련된 ‘누울 자리’가 정말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이러한 지점에서 카셀 도큐멘타 15는 관람객이자 카셀의 관광객이자 방문객의 특성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감상에는 누울 자리 외에도 몇 가지 포인트가 영향을 주었다. ‘ART MOVES YOU’라는 슬로건을 지닌 공공 자전거가 있다. 카셀 기간에는 해당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또한, 필자가 방문했던 기간에는 카셀 도큐멘타 티켓을 보유하고 있으면 버스와 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곳의 전시장에서 무료 짐 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다. 관람객의 신체적 피로도를 고려한 도큐멘타 및 카셀이라는 도시의 운영 메커니즘이 정말 흥미로웠다.

 

도큐멘타의 관람객 나이 비율을 고려해보아도, 도큐멘타의 ‘누울 자리’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도큐멘타 15를 관람하여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노인 관람객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다. 노년층 관람객의 신체적 피로도를 고려하면 더더욱 관람객의 휴식을 고려한 공간 구성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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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공간을 일괄적으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연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영상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전시 도록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그냥 쉴 수 있는 빈백 자체가 작품인 곳도 있었으며, 작품을 보는 것에 지친 이들을 위해 아예 오로지 쉴 수 있는 곳으로만 만든 곳도 있었다.

 

자유롭게 앉아 이야기하는 곳을 마련해두기도 했다. 규모가 큰 전시장 밖에는 푸드트럭과 바를 준비해두어 사람들이 편한 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휴식을 즐기도록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바와 푸드트럭에 메뉴의 다양성과 퀄리티를 신경 쓴 것이 눈에 띄었다. 카셀 도큐멘타는 그 어떤 예술 행사보다도 관람객이 최우선이 되며 주인공이 되는 공간이다.

 

카셀 도큐멘타 15는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를 지향하고 있다. 공동체, 즉 룸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경계선은 지워져 있다. 그 과정에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다양하고 세심하게 도시의 운영 시스템을 연출한 카셀 도큐멘타 15는 많은 미술관과 예술 행사에 관객들을 위한 ‘누울 자리’가 필요하다고 시사한다.

 

 

[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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