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러시아 피아니즘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열정이 빛났던 시간
글 입력 2022.09.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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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페예프_리사이틀_포스터 최종.jpg

 

 

지난 9월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올해 22살의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원래 올해 5월에 국립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공연을 불과 나흘 앞두고 말로페예프가 코로나19에 확진 판정을 받아 결국 무산됐다. 한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인 말로페예프이지만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개 이상의 콘서트가 취소됐다. 그런 와중 우여곡절 끝에 열리게 된 그의 국내 첫 내한은 피아니스트에게도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는 2014년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차이콥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피아노 신동'으로 전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뿐 아니라, 발레리 게르기예프, 리카르도 샤이, 미하일 플레트뇨프, 정명훈 등 저명한 지휘자들과 함께한 경력이 있다.

 

또한 2017년 그는 첫 '젊은 야마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으며 국제 영 피아니스트 그랜드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입상해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알렉산더 말로페예프 프로필 7.jpg

 

 

그의 연주는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로 포문을 열었다. 폭풍이라는 뜻의 이 곡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으로 폭풍의 다양한 얼굴들을 그려낸 것이다. 변화무쌍한 폭풍이 부는 풍경처럼 변화무쌍한 전개가 두드러지는 이 곡은 말로페예프의 손에서 겹겹이 쌓이는 바람의 결이 되어 폭풍의 기운을 나타내는 듯했다. 강렬하게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그보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메트너의 '피아노 소나타 사 단조, 작품 번호 22'를 시작으로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이 이어졌다. 처음 만난 한국의 관객들에게 자신의 태생적, 음악적 뿌리인 러시아의 피아니즘을 소개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니콜라이 메트너는 당대 함께 활동했던 모던한 작곡가들과 달리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끝까지 러시아 전통 낭만주의 음악을 고수한 작곡가로 특히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복잡한 화성과 독창적 멜로디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곡에서는 말로페예프의 힘 있는 타건과 그에 대비되는 섬세한 테크닉이 두드러졌다.


2부는 러시아의 신비주의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작품 번호 16'으로 시작했다. 스크리아빈은 처음에는 쇼팽, 리스트 등의 영향으로 프렐류드와 같은 낭만적 음악을 많이 작곡해 '러시아의 쇼팽'이라 불렸으나 니체와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등과 같은 철학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음악과 철합의 융합이라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확립하여 신비주의적 음악이라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창조했다.

 

말로페예프는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와 '두 개의 즉흥곡, 작품 번호 12'에서 그의 순수성에 집중해 맑은 소리로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짚었다. 강한 힘과 부드러운 테크닉의 조화는 이번 곡들에서도 드러났으며 특히 즉흥곡의 풍부한 멜로디와 엇박자 리듬이 그의 섬세한 연주를 통해 매력이 극대화되었다.


마지막 곡으로는 말로페예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작품 번호 33'이 대미를 장식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는 전통 낭만주의를 고수한 인물로 화려하고 높은 난이도의 기교에 풍부한 서정성을 갖춘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그의 '회화적 연습곡'은 총 두 권으로, 기교적 테크닉과 음에 대한 회화적 표현을 요구하는 여러 개의 짧은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곡마다 분명한 캐릭터를 지녀 다양한 심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자연 풍경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가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던 종소리 음형을 각 곡마다 표현하여 풍부하게 울려 퍼지는 음향이 곳곳에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로페예프의 라흐마니노프는 특히나 정서적 표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짧은 곡들로 이루어져 있고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복잡하고 화려한 기교가 두드러지는 작품인데 그보다는 곡의 진행에 따른 감정적 동요가 내면에 깊은 파도를 일으켰다. 맑은 음색으로 몰아치는 그의 연주는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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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말로페예프는 몇 번이고 다시 나와 무려 6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플레트뇨프의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 메이', 메트너의 '회상 소나타' 등 말로페예프는 앙코르까지도 손끝에 혼을 담아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빛나는 열정은 홀을 넘치게 매웠고 관객들은 연신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 정도면 첫 한국 내한에서 말로페예프가 러시아 피아니즘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말로페예프의 다음 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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