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곳을 닮아간다. [사람]

글 입력 2022.09.07 00: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022389306_wpG5vMS4_5BED81ACEAB8B0EBB380ED99985Dpeople-g16033d050_1920.jpg

 

 

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 지 10일이 되었다. 아직 이 곳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낯선 곳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점점 익어가고 있다.

 

자주 지나는 길들은 이제 구글 맵 없이도 척척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길을 찾는 것에만 급하지 않아서 길가에 붙은 페스티벌 광고판이 보이기도 한다. 나의 눈이 한 곳을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생물들과 눈을 마주치며 즐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낯선 길을 걷다 보면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횡단보도에 설치되어 있는 버튼이다. 길을 건너고 싶다며 이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그러면 어느 순간 뚜두두두- 오디오와 함께 빨간 사람이 꺼지고 푸른 사람이 켜진다. 그럼 우리는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저 멀리서 초록 불로 바뀌고 잠시 후 빨간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이제 곧 빨간 불로 바뀐다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저 멀리서 힘들게 뛰어오지 말고 차분히 길을 건너면 된다.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장면이 있다. 디저트 가게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다. 어둠이 약간 내린 저녁이었고, 나는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나의 행선지를 체크하며 창밖을 보던 중, 한 남자가 버스를 내리면서 “Thanks men!”을 크게 외쳤다. 그의 시선과 몸은 기사님을 향했으며 정말 감사함을 가득 담은 인사말이었다.

 

과연 나는 한국에서 그 남자처럼 인사를 해본 적이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긴말도 아닌 감사하다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그동안 보낸 하루 속에 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런 영향은 좋다.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상황을 보고 반성을 했음에도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 남자처럼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외칠 용기도, 고맙다고 이야기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보며 스며들고 싶다. 나도 그들처럼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나도 그들처럼 아무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감상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이들의 여유를 닮아갈 것이다.

 

나는 친절한 낯선 이곳을 즐기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입꼬리를 한껏 올려주고, 지나가는 새에게도 함부로 손짓하지 않는 이곳을 점점 사랑하고 있다.

 

 

[황혜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