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발칵 뒤집은 천재 사진가의 유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했던 비비안 마이어
글 입력 2022.08.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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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15만 장의 사진을 남겼음에도 세상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미스터리한 사진가. 그의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 사후 시카고의 경매장에서 발견된 사진들은 단숨에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정식 사진 교육도 받지 않은 보모가 찍은 사진은 당대 거장들과 견줄 정도로 작품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일까. 왜 자신을 숨기며 사람들과 깊은 관계도 맺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베일에 싸인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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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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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그녀는 180이 넘는 큰 키와 마른 체형에 헐렁한 남자 셔츠, 구식 블라우스, 중간 길이 치마를 입고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걸어 다녔다. 또한 챙이 달린 펠트 모자를 자주 썼다. 그것은 그녀의 눈빛을 가려주는 요소가 되었다. 그는 강인함과 당당함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생을 가정부와 보모로 살았으며, 틈날 때마다 사진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50년 이상 쉼 없이 셔터를 눌렀으며, 롤라이플렉스로 시선에 닿는 모든 것들을 담았다. 그는 사진부터 영상까지 끊임없이 기록한 기록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2009년 죽는 순간까지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익명의 개인을 무대 위 주인공으로


 

비비안 마이어는 미국 거리(스트릿) 사진을 주로 찍었다. 높은 빌딩과 양복을 입은 채 분주히 걸어 다니는 사진들은 산업화된 도시와 아메리칸 드림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인물들의 살아있는 표정, 순간을 포착하여 거리에 와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그녀는 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화려한 도시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유토피아에 가려진 사람들. 가난과 노동의 고통, 비참함과 어두운 운명을 화려한 상류층의 모습과 함께 담아내었다. 비참함과 쓸쓸한 모습을 기록하면서도 그 속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며 휴머니즘을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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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1955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거리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리고 수많은 것들이 교차한다. 거리는 만나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장소이다.

 

거리를 교차하는 그들은 같은 거리를 지나가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익명과 익명의 사람이 오가는 것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거리는 붐비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개인화된 거리의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카메라 셔터 한 번으로 거리는 무대가 됐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진에 담기고 나서야 개인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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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960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거리는 다른 목적을 위해 지나치는 곳이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거리의 사람들'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남들과 달랐다. 그녀는 우주비행사 귀환을 보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우주비행사보다 준비과정, 구경꾼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당시의 거리와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 덕분에 우린 주목받지 못한 곳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세상이 내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곳 같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세상은 내게 큰 공연이었다.

 

-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인물 사진이 아름다운 몇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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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매력적인 이유는 상상력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녀는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찍거나 시선이 어딘가 향하고 있는 인물을 찍었다. 사진을 보는 동안 우리는 사진가가 만든 무대 위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무대 위의 저 인물은 어떤 사람일지, 인물의 시선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비비안 마이어는 인물들을 늘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제한된 인간관계를 가져왔던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그들과 정직하게 직면을 하며 안전한 거리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은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시선을 유지한 채로 사진가와 대면했다. 그녀가 늘 목에 걸고 다니던 롤라이플렉스 사진기는 카메라를 눈앞에 대지 않고도 촬영이 가능했다. 펠트 모자를 쓴 그녀가 시선을 잠시 아래로 내려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는 동안 인물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인물들은 가공되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사진에 담길 수 있었다.


낮은 곳에서 위를 찍은 로우앵글과 정사각형 화면을 가득 채운 상반신 프레이밍은 모델이 가진 존재의 힘을 극대화했다. 또한 이것은 모델의 위상을 높이는 심리적 장치가 되었다. 부유한 상류층과 가난한 소외층을 동등하게 담아내어, 존재가 가진 힘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줬다.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했던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포토스팟 세 곳을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포토스팟에서는 그녀의 사진 촬영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녀의 자화상과 동일한 구조로 카메라 앞뒤에 거울을 배치했고 롤라이플렉스를 통해 나만의 셀피를 찍을 수 있다.

 

사진기 앞에 서서 롤라이플렉스에 담긴 내 모습을 보니 그녀의 초상화가 오버랩되며 사진기 앞에 선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셀피를 남겼을까 잠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녀가 어떻게 거리에서 주위의 눈길을 끌지 않고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촬영 과정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남에게 보여주고자 사진을 찍는 것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사진을 찍은 비비안 마이어는, 이 시대에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본질을 중시했다. 사진을 통해 따라오는 경제적 이익이나 인정 같은 부차적인 것이 아닌 사진 그 자체에 집중했다. 사진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모든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철학대로 세상을 담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일이 생계와 연결된 직업이 아닌 취미였으니, 좋아하는 일을 부담 없이 평생 해왔던 그녀는 진정한 행복을 누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비비안 마이어는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는 소외된 개인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본인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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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미상, 날짜 미상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위 사진에서는 은색 물체에 비친 올곧고 당당하게 서있는 비비안마이어, 그리고 그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당당한 셀피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내세울 것 없고 정식 사진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하더라도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좋아하는 일을 유예하지 않고 지금 당장 하는 삶. 현대인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을 바라볼 수 있어서, 비비안 마이어라는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게 돼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전시 초반엔 사진의 아름다움에 빠졌다면, 전시 후반은 비비안 마이어의 당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생전에 사진 작업에 관해 단 한마디도 남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 사진을 찍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남겨진 것들로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에서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들어보길 바란다.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 비비안 마이어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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