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그의 피부 속에 살아있다.

옅어진들 지워지진 않을 우리의 한 시절
글 입력 2022.07.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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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은 네 개의 타투를 가지고 있다. 오른쪽 팔뚝에는 아빠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을 새겼고, 손가락에는 할아버지의 성을 새겼으며, 발목에는 언니의 이니셜을, 손목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그려줬던 꽃을 새겼다.

 

이처럼 L의 몸에 새겨진 모든 타투는 그의 가족을 상징한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타투의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너에 대한 타투는 없냐고 묻자 ‘언젠가’라며 시니컬하게 말했다.

 

파리의 교환학생으로 만난 우리는 4개월 동안 붙어 다녔다. 같은 기숙사 같은 층을 썼기 때문에 같은 공용주방을 썼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넷 중 매 끼니를 챙겨 먹는 사람도 우리 둘뿐이었기에 우리는 늘 밥을 같이 먹었다. L은 스페인식, 나는 한국식. 어떨 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L식과 내식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의 원래 저녁 시간은 11시, 나는 7시였다. 우리는 항상 그 중간인 9시에 함께 먹었다. 매일 밥을 함께 먹으며 우리는 식구 食口가 되었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나누고 배우고 궁금해했다.

 

어느 날 L은 한국어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어 몇 개를 알려주자 흥미로워하며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라우라

 

너의 이름을 한국어로 쓰면 라우라야. 글자가 귀엽다며 마음에 들어 하는 라우라에게 한국인인 내가 봐도 귀여운 글자라고 말해줬다. ‘라’의 대칭과 중간에 균형을 잘 잡아주는 ‘우’ 글자가 조화로워서 그렇게 보이는 듯하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스위스’라는 글자가 두 개의 산 사이에서 창을 들고 있는 병사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잘 나타낸 스위스의 한국식 표기를 좋아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우리들은 못 보는 것을 그들은 볼 수 있다. ‘모른’다는 이유로 ‘아는’ 것이다.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이토록 신비로운 경험이다. 나 또한 라우라와 함께 지내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우린 정말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그 덕분에 내가 살아보지 않은 방식을 많이 알게 되었고, 또 내 방식을 도전하고 좋아하는 라우라를 보는 것도 기뻤다.

 

라우라는 그새 고향 친구들에게 자신의 한글 이름을 자랑한 것인지 생경한 이름들을 보내며 한국식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라우라의 애인 이름, 그 애인의 친구 이름, 친구의 친구 이름… 꽤 여러 개의 이름을 주고받았지만 라우라는 자기 이름이 제일 예쁘다며 으스댔다. 내가 봐도 그랬다. 그의 이름인 Laura는 영어 발음으로 하면 [로라]인데, 스페인 발음이라 [라우라]가 된 것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

 

종강 후 먼저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던 라우라와 눈물의 이별식을 한지 정확히 3일 후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친구와 함께 카페에 있던 나는 라우라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라우라1.jpg

 

 

라우라가 보낸 사진에는 ‘라우라’가 있었다. 말 그대로 ‘라우라’. 스페인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의 손목에 ‘라우라’라는 글자를 타투한 것이다. 너무 놀란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이거 진짜냐고, 너 정말 타투한 거냐고 물었다. 그는 뭘 놀라냐는 듯 ‘I told you(내가 말했잖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 라우라에게 한국식 표기를 알려줬을 때 너무 귀여워서 타투하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만큼 마음에 든다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짜 할 줄은 몰랐지! 흥분한 나에게 라우라는 이렇게 답했다.

 

‘You will be on my skin forever. haha’ (너는 평생 내 피부 위에 존재할 거야. 하하)

 

*

 

한국으로 돌아온 후, 라우라에게 종종 타투를 보고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이 온다. 레파토리는 항상 같다. 한국어를 잘 아는 외국인이 라우라의 타투를 보고 ‘네 타투, 한국어 맞지?’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왜’. 어쩌다 한글 타투를 했냐는 낯선 이들의 물음에 라우라는 항상 나로 대답한다고 한다.

 

'나에게 특별한 우정을 나눈 한국인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알려줬어.'

 

어쩌면 더 길었을 그 대화를, 이미 너무 많이 반복한 라우라는 So I talked about you (그래서 너에 대해 말했어) 로 짧게 줄여 말하고 넘어가지만, 나는 늘 그 말에서 쉬이 넘어가지 못한다.

 

가족과 관련된 타투를 소개할 때마다 자랑스럽게 설명하던, 언젠가 자신에 대한 타투를 할 거라던 라우라는 이제 자신의 타투를 설명할 때 내 이야기를 한다. 그의 다정한 피부에 한 자리 차지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비롭고 믿기지 않는다.

 

시차도 공간도 한참 다른 그곳에 내가 살아있다. 옅어진들 지워지진 않을 우리의 한 시절이 살아있다.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낯선 이와 대화하는 라우라의 이야기 속에, 그의 오른 손목의 피부 속에 살아있다.

 

 

 

컬쳐김지은.jpg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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