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산책을 통해 내일의 방향성을 얻는 법 - 도서 ‘산책가의 노래’

산책가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글 입력 2022.06.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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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가의 노래_앞표지.jpg

 

 

책을 고르는 기준을 딱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가장 한 눈에 들어오는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이끌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산책가의 노래’를 펼치게 된 계기도 사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이끌림에 의해서였다. ‘산책’과 ‘노래’라니,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조합이지 않은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행복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하나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만큼 반짝거리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황홀한 행복’이라면, 나머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중 몇 번이고 우리를 찾아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내게는 산책과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계절 별로 담아둔 산책할 때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한 손엔 시원한 음료를 든 채 내가 좋아하는 낮은 빌딩과 주택가들로 이루어진 한산하면서도 평지 위주의 산책길을 거닐 때면 그것 만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척박하던 고등학교 수험 시절, 나의 일상을 버티게 해준 조그마한 숨구멍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산책가’로 표명하는 작가가 산책을 하며 듣고, 보고, 느낀 작지만 어쩌면 그 무엇보다 위대할 자연의 이야기들과, 그것으로부터 얻은 사색의 결정체가 담긴 한 권의 에세이는 단순히 기록물이라기 보다는 내게 누군가가 열심히 닦아 놓은 산책길, 혹은 산책 지침서로 다가왔던 것 같다.

 

 

 

휴대폰 꺼놓고, 잠시 멈출래


 


 

‘커피 한잔이 너무나 필요해

저기 벤치에 앉아서

햇살을 맞을래요

아무생각없이 멍때리게

 

휴대폰 꺼놓고, 잠시 잊을래

아무 생각 말자 생각 말자 잠시 멈출래

바보처럼 잠시 멈출래’

 

공기남- '잠시 멈출래' 中

 


노래의 가사말이 공감되면 그 노래에 정이 가곤 한다. 최근 그렇게 빠진 노래가 ‘공기남-잠시멈출래’이다. 해야 할 일들로 꽉 찬 일정들, 왜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움직이다 보면 잠시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멈춰서 ‘고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물길의 방향을 정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내게는 산책하는 시간이 항상 그런 시간이곤 했다.


그렇기에 내게 산책의 시간은 그동안 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했던 주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관찰과 성찰이 이루어지고 나면 늘 똑같다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에서도 새로운 즐거움이나 깨달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산책을 통해 일종의 ‘관찰자’가 되어 주변을 관찰하고 세심하게 살피면서 일상의 즐거움을 낚아내곤 한다.


 

조용히 

숨을 멈추고

귀 기울이면 

들리는 울음소리

 

산책가의 노래 ‘작은 새’ 中

 

 

한 아이가 옆에서 

바다다!

라고 말했다.

 

산책가의 노래 ‘호수에서’ 中

 


저자가 산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세심한지 알 수 있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들리는 소리들에 관심을 가지고, 보통은 시답지 않다고 넘길 수 있는 모르는 아이의 표현 법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곤 한다. 그러게, 바다와 호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툭 내 뱉은 한 마디의 말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오지 않을 것 같던 이 순간이

드디어 내게도 온 걸까

벚꽃을 봐도 더 이상 슬프지 않은 날이

 

산책가의 노래 ‘벚꽃’ 中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커다란 슬픔이 남아 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온다. 

이토록 찬란한 순간에.

 

산책가의 노래 ‘이토록 찬란한 순간’ 中

 

 

그런가하면 산책은 때로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내거나, 나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무언가를 건드리기도 한다. 저자는 잊고 있던 시간의 흐름을 어느새 피어 만개한 벚꽃을 보며 인지하고, 그 시절의 누군가와의 그리운 추억을 새삼 상기하고는 그것이 이전만큼 슬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때로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신이 삶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에 슬퍼한다.


산책을 통해 느낀 이런 감정들은 비록 거대한 슬픔을 안겨 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인지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의식과 방향성 있는 일상을 살아갈 지침표를 얻는 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내 주변의 것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 것인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만큼 놓치기 쉬운 것들은 산책의 시간을 통해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이치는 멀리 있지 않아



산책의 또다른 묘미는 길을 걷다 만나는 우연한 풍경들에 문득,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이다. 그저 이론 상으로만 알고 있거나 교과서나 어느 철학가의 구절을 통해서는 전혀 와 닿지 않았던 자연의 법칙이나 삶의 이치는 그 우연한 풍경으로 인해 한순간 이해되곤 한다. 산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자연과 그 안에 살아가는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담담하게 떨어진 나뭇잎은

저마다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태어나기 위해.

 

산책가의 노래-‘봄을 기다리며’ 中

 

 

이 거미에게도 이 사냥의 순간이 생존을 위한 소중한 기회일 텐데

함부로 방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먹이를 빼앗긴 사마귀 한 마리가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앞발을 치켜세우고 거미를 노려본다.

 

산책가의 노래-‘방아깨비와 거미와 사마귀’ 中

 

 

저자는 거센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주목하다가 문득 그들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쓸쓸해 보였던 가을의 풍경은 어쩌면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을 위한 숭고한 준비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교과서에서나 익히던 먹이 사슬의 현장을 직관하기도 한다. 방아깨비에서 거미, 사마귀로 이어지는 이 먹이 사슬은 이들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방아깨비를 구하고자 했던 짧은 생각을 반성하게 만든다.


어쩌면 삶의 이치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산책을 통해 마주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에 조금쯤 더 감각을 기울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가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철학가로 변모할 수 있다. ‘아’ 하는 깨달음의 순간은 그렇게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끊임 없이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책을 기록한다는 것



이 책이 유독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이유는 저자가 산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그저 흘려 보내지 않고 ‘기록’ 했으며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고 나서 여태까지 나는 왜 산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기록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담담한 글귀들을 통해서도 저자는 산책을 통해 그가 얻은 보물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을 자극한 것은 단연 글귀 옆에 그려진 삽화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형체가 없고, 또 그렇기에 내 마음껏 저자가 본 풍경의 나의 방식대로 눈 앞에 재현할 수 있었다. 특히나 그중 인상 깊었던 삽화 몇 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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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위에는 하늘과 햇빛과 나무 그림자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다가

물고기가 뛰어오르자 흔들리며 희미한 추상화가 되었다

 

산책가의 노래-‘아름다운 것을 보면’ 中

 

 

처음 삽화만 접했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법하다. 초록색 물감이 탁하게 번진 듯하고, 군데 군데 점점이 밝은 연두색이 박혀 있는 이 그림은 언뜻 보면 추상화 같다. 저자가 의도한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보며 들었던 의문점은 글귀와 함께 조합해 보면 선연히 눈앞에 그 상황이 나타나곤 한다. 물고기의 급작한 움직임 후 바닥에 있던 부유물들이 개울을 뒤덮고 나면, 그림과 같은 뿌연 녹조만이 표면에 가득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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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워 바라보다 울고 말았네

 

산책가의 노래-‘꽃길’ 中

 

 

꽃길이라는 제목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삽화와 이 그림은 분명히 거리가 있다. 언뜻 보면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보이는 꽃밭의 풍경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그림 또한 글귀를 보는 순간 ‘아’하고 깨닫게 된다. 만약 내가 저자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한 순간 벅차오르는 마음에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한 방울 씩 맺히고, 그 눈물을 통해 비치는 꽃길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삽화의 꽃들처럼 이리저리 번지고 뿌옇게 보여 한데 뭉쳐진 풍경이지 않을까?


이렇듯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풀어내는 소소한 산책의 이야기들은 그만의 담담하고도 색체가 담긴 표현을 통해 나에게 흘러 들어오고, 그것은 내 안의 감각을 일깨워 마치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산책길을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동네 토박이 친구와 거니는 듯한 포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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