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래하자. 작고 소중한 것들로부터 - 산책가의 노래

가민히 귀 기울이면 들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이고, 가만히 느끼면 알 수 있는 것들
글 입력 2022.06.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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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 속에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퇴근길 꽉 막힌 도로, 곧 터져버릴 듯한 노트북, 늘 시끄러운 SNS.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나 감정이 정리되거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로부터 위안을 얻기도 한다.


때론 행복으로 때론 슬픔으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걷는 산책을 통해 우린 어느샌가 새로이 다짐하고 있고,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텨보기로 한다.



산책가의 노래_앞표지.jpg


 

지난 13일 출간된 책 <산책가의 노래>는, 작가 이고은이 산책을 통해 얻은 위안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첫 에세이집이다.


어느 여름날, 작가에겐 갑작스럽게 커다란 슬픔이 찾아왔다. 그리고 매정한 세상은 연이어 또 다른 슬픔을 작가에게 안겨줬다. 슬퍼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녀는 무작정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지친 마음과 몸을 그저 햇빛과 바람에 맡긴 채 말이다.


처음엔 자신의 마음과 달리 밝고, 평화로운 것들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쓸쓸히 걸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에게 보이는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빨리 걸으면 풍경이 보이지만

천천히 걸으면 그 풍경 안에 숨은

작고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천천히 걷는 산책' 중

 

 

"마치 이곳에

계속 존재해 온듯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레 섞여 있구나"

 

-'작은 숲' 중

 

 

그럴 때가 있다. 화나거나 슬픈 일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보다, 물음 없이 대답 없이, 그저 위로만 받고 싶을 때가.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힘이 없는,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날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지만 누군간 옆에 있길 바라는 그럴 때가.


그럴 때, 산책 중 마주친 물고기와 나비는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고, 그렇게 계속해서 위안을 얻다 보면, 아무 일 없단 듯 매정해 보이는 파란 하늘과 호수가 조금 섭섭하지만 나를 현실로 데려와준다.

 

세상은 매정하니까. 그저 살아가야 하니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잎이 자라고

가을이 되면 마르기 시작하여

겨울이 되면 다시 잠든다.

언젠가부터

계절의 흐름에 맡긴 채

그저 살아가고 있다.

...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고 

설레지도 들뜨지도 않고

봄이 오면 묵묵히 피어나는

저 나뭇가지의 꽃처럼

가만히 이 자리에서 

다만 살아가고 있다.

 

-'다시,봄' 중

 

 

작가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마주함으로써 결국 자기 마음 또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조금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는 걸,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마침내 작가는 세 번째 여름을 떠나보내면서 자신의 슬픔도 함께 떠나보내었다.


 

“하얀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작아지는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나비 한 마리가 비틀비틀 날아가고

개 두 마리를 산책 시키는 아주머니가 지나가자,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여름이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길을 건넌다.

 

-'안녕, 여름' 중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어도, 또다시 슬픔에 빠지곤 한다. 늘 그렇듯, 분명 갑작스럽게 그것이 찾아와 우릴 괴롭힐 것이다. 때론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를 집어삼킬 때가 올 것이다.


 

“하늘에 있는 그리운 이들이 생각났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커다란 슬픔이 남아 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온다. 

이토록 찬란한 순간에.”

 

-'이토록 찬란한 순간' 중


 

“마치 멈춘 듯 보였던

고요하고 투명한 강물은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만들어 낸 파동으로

작게 일렁이기 시작하고,

깜짝 놀란 물고기가 돌멩이 틈을 파고들면서

가라앉은 모래를 일으켜

어느새 뿌예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음'

 

 

하지만 또 늘 그렇듯, 우린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자. 그들이 힘이 되는 위로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어쩌면 좋은 답을, 줄지도 모르니.

 

 

“개구리가 불쌍해 급히 눈을 돌렸다. 하지만 배고픈 뱀이 무슨 잘못이랴. 작은 것들도 더 살고 싶어 저리 구슬피 우는데 가을바람이 쓸쓸하다고 울 일인가. 하루하루 숨을 쉬고 살아감에 그저 감사할 일이다.”

 

-'작은 것들도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중

 

 

"장미는 장미대로 들꽃은 들꽃대로

저마다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아름답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꽃' 중

 


이 얼마나 작고 소중한가.

 


IMG_8268.jpg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 책에 아주 섬세하게 묘사해두었다. 그렇게 묘사해둔 한줄 한줄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다 보면, 다음 페이지에 그 그림이 나온다. 수채화 그림 특유의 번짐이 희미한 상상 그대로다.


 

꿈속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눈물에 번진 사진 같기도 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늦여름' 중

 

 

IMG_8267.jpg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이들 또한 저마다 소중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산책가의 노래>를 냈다. 행복은 아주 작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온전히 바라봐 주기만 한다면 반드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행복은 멀리 있어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4계절 가장 아름다울 때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한 감정, 눈앞에 놓인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무해한 것들은 꾸밈없이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산책가가 본 것은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되었다.

 

 

“하얀 아카시아 꽃이 콧노래 부르고

바람에 흩날리며 나를 둘러싸고


자, 이제 나의 노래를 부를게

 

-'산책가의 노래' 중

 

 

[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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