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궁만이 간직하는 특별한 아름다움 [공간]

글 입력 2022.04.15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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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궁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천천히 고궁을 자세히 훑어보며 구경하는 것도 좋고, 그와 관련한 쏠쏠한 역사와 예술 지식을 얻는 것도 좋다. 그런데 막상 내 의지로 혼자서 고궁을 산책해본 적은 없었다. 단지 고궁 하나만 보겠다는 이유로 밖을 나갔다 오기에는 내가 너무 ‘집순이’였던 탓이었을까.


대학로를 오가는 길에 창덕궁을 자주 지나치게 된다. 경복궁에 비해 창덕궁은 거의 가본 적이 없었고, 예전에 공연을 보러 잠시 갔던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과제를 하러 제대로 구경조차 못 하고 돌아왔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꼭 다시 창덕궁을 오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 창밖으로 창덕궁 돈화문을 빤히 바라보니, 여느 서울 풍경과 달리 저 너머로 높은 빌딩들이 안 보이는 것이 답답한 숨통을 조금 트이게 하는 것 같았다. 마침 봄이 되어 홍매화가 예쁘게 피었다고 하니, 한 번 창덕궁 산책이나 가볼까, 문득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궁을 다니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인 것 같다. 5월까지는 오후 5시에 입장이 마감되어 특정 요일에는 수업을 끝내고 가기에는 빠듯한 시간대였다. 그래서 수업이 일찍 끝나는 요일로 계획을 잡아 바로 버스를 타고 창덕궁으로 떠났다.


반대로 고궁을 다니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이 드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몇천 원만 내고도 다닐 수 있고, 게다가 만 24세까지는 무료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 할인이 젊음을 누리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고궁을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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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창덕궁의 원경을 굉장히 좋아한다. 우선 서울 내에서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점이 제일 쾌적하다. 대신 첩첩이 이어진 기와지붕이 나를 매료시킨다. 그리고 더 멀리 내다보면 북악산의 장엄한 모습이 보이는데, 사진으로는 그 장엄함을 담을 수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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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구석구석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와 풀도 창덕궁의 풍경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준다. 봄에 피는 벚꽃이나 개나리, 매화도 좋지만 나무와 풀의 푸른색이 푸른 하늘, 검은 기와지붕, 붉은 벽, 화려한 단청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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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하나하나 훑어봐도 즐겁다. 특히 기와지붕과 단청이 고궁의 가장 예술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물마다 지붕을 자세히 보면 모양이 다 다른 것이 신기하고, 또 그 위에 달린 잡상 근처로 까치가 자연스럽게 서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여러 배치로 겹겹이 이어지는 지붕의 곡선은 햇빛과 맞닿았을 때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햇빛으로 지는 그림자가 때로는 지붕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지붕 사이로 그늘이 지며 그 틈새로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도 보여주며 햇빛과 그림자도 고궁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단청의 화려한 색깔과 선은 또 어떠한가. 지붕 밑으로 지는 그늘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고, 지붕 밑으로 들어가 위를 올려다보면 그 화려함이 두 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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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건물의 내부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도 꽤 인상적이다. 특히 인정전 내부는 경복궁의 근정전 내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천장에는 용 대신 봉황이 있고, 건물 내부의 색감도 더 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곳곳에 달린 커튼과 전등이 서양식의 인상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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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건물의 전경이나 내부 쪽이 아닌 창문 쪽으로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어서 왜 그러는 것일까, 하고 슬쩍 쳐다보았더니 앞쪽의 창문에 이어 뒤쪽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궁궐의 풍경이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 지나가며 ‘액자식 구성 같네’라고 말했던 것이 재치 있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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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봄에 꼭 가야 하는 명소로 알려진 창덕궁 후원 입구 쪽의 홍매화도 정말 아름답다. 사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 보면 홍매화 주위로 펜스가 처져 있고, 또 그 주위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 있어 적어도 홍매화를 찾으려고 길을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홍매화가 조금씩 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아름답고, 또 그 뒤로 이어지는 낙선재의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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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입구 바로 옆에 함양문이 있어 그곳을 통해 창경궁으로도 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창덕궁으로 가는 길에 창경궁 홍화문도 슬쩍 보였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옥천교 주위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서 창경궁에 먼저 갈까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다행히도 창덕궁과 창경궁이 연결되어 있어 함께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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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들어서는 길목으로 가면 아래로 궁궐 전경이 펼쳐짐과 동시에 그 너머로 빌딩들이 펼쳐져 있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남산 타워도 함께 보여 꽤 상징적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창덕궁 후원은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어서 후원까지 가보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 외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아 날씨가 좋을 때, 시간이 조금 더 여유 있을 때 다시 창덕궁에서 천천히 산책하고 싶다.


고즈넉한 풍경과 자연이 어우러지며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곳과 색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고궁의 매력인 것 같다. 이렇듯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궁궐을 배치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이 고궁을 문화재로 보존하고자 그 주위로는 높은 건물이 세워지지 않으니, 이 풍경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일인가!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아도 아름다운 이 고궁들을 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담고 싶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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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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